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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May 18. 2019

지혜로운 공주의 비극

성경 속 여성 읽기

나는 다윗 왕의 딸, 다말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공주고 부러워하지요.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온실 속 화초라고 생각하지요. 아버지는 이스라엘 최고의 성군으로 명성이 자자하니 분명 따스한 사랑을 받으리라 생각하지요. 그러나 그건 겉만 보고 내리는 섣부른 판단입니다. 


나는 공주로서 날마다 궁중의 예절과 법도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엄격하여서 요구하는 것이 많아요. 나의 지성과 이해력은 따지지 않고 무조건 외우고 받아들이라고만 하지요. 물론 우리 선조들이 신앙생활을 어떻게 했고,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는지 배우는 것도 나쁘진 않아요. 그렇지만 나도 다른 여자 아이들처럼 들판을 뛰어다니며 들국화 향기를 맡고 싶고, 언덕배기에 누워 구름을 보며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펴고 싶어요. 공주는 자유가 없어요. 날마다 따라다니는 시녀들은 연신 잔소리를 하지요. “공주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공주님 품위를 지키세요.” 그 덕분에 나는 예루살렘에서 제일 아름답고 지혜롭고 품위 있는 공주라는 칭찬을 받고 있지요. 


나이가 들어 혼기가 되니 여기저기 혼담도 들어온답니다. 그때마다 나는 가슴 설레고 어떤 왕자가 나의 남편이 될까? 궁금하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한답니다. 이제 곧 결혼하면, 자녀를 낳아 양육하고, 남편을 돌보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답니다. 사실 나도 다른 처녀들과 똑같이 행복을 꿈꾼답니다. 


그런데 인생은 꿈꾸고 생각한 데로 흘러가지 않나 봅니다. 아니 엄청난 수치와 고통과 비극이 내 앞에 기다릴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아버지 다윗 왕이 총애하는 이복 오빠 암논은 야망도 크고 지도력이 뛰어나지만, 정략적이고 냉정한 면이 있어요. 그런 오빠가 나에게 흑심을 품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어느 날 몸져누워있는 오빠(암논)를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위문하라는 아버지 다윗 왕의 명령이 있었지요. 


상황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명령이기에 순종하였습니다. 아픈 오빠를 위하여 원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무화과 열매로 만든 과자와 석류로 만든 음료를 준비하여서 들어갔습니다. 누워 있던 오빠는 벌떡 일어나 나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아프다는 말은 다 거짓이었습니다. 오빠는 다짜고짜 나를 안으려 했습니다. 


“나의 누이여 나와 동침하자” 평상시 암논은 나를 누이라고 부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사실 난 오빠 얼굴을 본 적도 거의 없답니다. 그런데 “나의 누이여”하면서 손을 잡고 끌어안는데 나는 너무나 당황하여 그의 손을 뿌리치고 벗어나려 했습니다. “오라버니! 나를 욕되게 하지 말아 주세요.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 이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마세요.”


암논은 육욕에 불타올라 이성을 잃고 덤벼들었어요. 율법 선생님은 일찍이 가르쳤지요. “누구든지 그의 자매 곧 그의 아버지의 딸이나 그의 어머니의 딸을 데려다가 그 여자의 하체를 보고 여자는 그 남자의 하체를 보면 부끄러운 일이라 그들의 민족 앞에서 그들이 끊어질지니 그가 자기의 자매 하체를 범하였은즉 그가 그의 죄를 담당하리라”(레 20:17).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제멋대로 통치하던 사울 왕이 죽고 아버지 다윗은 백성 앞에서 서원했지요. 이제부터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주야로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실천하겠다고 하였지요. 그런데 왕세자인 오빠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파괴하는 것이요, 이스라엘 공동체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자칫하면 다윗 왕조를 무너뜨릴 수 있는 큰 사건이 될 거예요. 그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그래도 내가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눈 알이 빨개진 암논을 향하여 다시 간곡히 말했습니다. “정말 오빠가 나를 부인으로 맞이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아버지에게 말하십시오. 그러면 아버지는 정당한 절차를 거쳐 나를 오빠에게 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친족 혼에 대하여 엄격하게 금지하지는 않았어요. 아버지에게 부탁하면, 이스르엘 가문(암논의 가문)과 그술 왕가(다말의 가문)가 연대를 이루어 다윗 왕실은 더욱 공고하게 될 수 있지만, 지금 어리석은 짓을 하면 양가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할 것이 뻔하잖아요. 좋은 해결책이 있는데 나쁜 길을 선택하는 암논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말이 통하지 않는 암논은 힘으로 나를 억누르며 폭행했어요. 욕정에 불타오르면 판단력이 마비되는 것은 억지로라도 이해하려면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러나 사랑한다고 그렇게 소리치면서 나를 범했으면, 그 후에라도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대로 처리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 동침한 남자는 그 처녀의 아버지에게 은 오십 세겔을 주고 그 처녀를 아내로 삼을 것이라 그가 그 처녀를 욕보였은즉 평생에 그를 버리지 못하리라.”(신 22:29)


암논은 처음부터 순수한 마음이나 사랑은 없었습니다. 오직 나를 욕보이고, 나의 집안에 모욕을 주어, 나의 친오빠 압살롬의 기를 꺾으려는 심사였습니다. 그는 나에게 소리쳤습니다. “일어나 가라!” 누이라고 부르던 그는 나에 대해 그 어떤 호칭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건 나와 내 집안뿐만 아니라 다윗 왕가와 이스라엘 전체를 향한 모욕이요 모독입니다. 나는 다시 한번 말했습니다. 


“옳지 않습니다. 나를 쫓아 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합니다.”(삼하 13:16) 그러나 암논은 종들을 불러 다시 한번 크게 소리쳤습니다. “이 계집을 내게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나를 '이 계집'이라 부르다니 더는 대화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율법을 따라 재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채색 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크게 울부짖었습니다(신 22:23-29). 이제 나의 사건은 온 이스라엘이 다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공주가 꼬리를 쳐서 오빠가 그런 짓을 했다. 여자가 문제다. 이제 공주는 수치스러운 일을 당했으니 어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는가." 대부분 아무 잘못 없는 내가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남자들은 참 이상하지요. 여자들의 정절을 그렇게 강조하면서, 그것을 깨트리고 범하는 남자에 대해선 문제 삼지 않고, 피해자 여성에게만 모든 책임을 물으니 역설 중의 역설이지요. 


오빠 압살롬도 나의 마음을 위로하고 어떻게 하면 다시 정상적인 삶을 살게 할까 고민하지 않고 ‘복수’만 외쳤지요. 어쩌면 이번 기회에 왕세자 암논을 처리하고 자기가 왕의 자리에 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정치적 야심을 가진 듯도 해요. 아버지 다윗도 정말 실망스러웠어요. 이 사건을 해결할 모든 힘과 지혜를 가졌음에도 아버지는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지요. 아들을 너무 사랑해서 딸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내 주변에 남자는 모두 남성 위주의 사고방식에 빠져 피해자인 여성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은 어떻게 하면 자기 권세와 위치를 유지할까만 관심이 있지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면서 약자와 가난한 자와 과부와 나그네를 보살피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는 공동체가 과연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을까요? 


나는 이스라엘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당한 수치로 이스라엘이 교훈을 얻었으면 합니다. 내가 받은 능욕이 반복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약한 여자이기 때문에 받은 모든 멸시와 고난과 아픔을 계기로 이스라엘 공동체가 회복된다면 그보다 더 다행스러운 일은 없겠지요. 그런데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날까요?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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