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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Aug 28. 2015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진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터키 이스탄불 성 소피아 성당안에서 촬영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논란이 많다. 가장 큰 논란은 동정녀 탄생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생물학자들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라고 한다. 독일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성령으로 잉태된 처녀 탄생 사건에서 남성성은 완전히 배제되었다.”고 하였다. 페미니스트들은 예수의 오심에서부터 성의 기득권을 무너뜨리는 변혁을 가져왔다고 좋아하였다. 나는 마리아의 다른 모습을 논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다만 "그녀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이다.


코란에서는 마리아를 매우 정숙한 여성으로 소개하고 있다. 4세기 신학자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5~373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교부)에 의하면 마리아는 순결한 처녀였을 뿐 아니라, 조화로운 성품을 가지고 있었고, 남자들의 눈에 띄기를 원치 않은 조숙한 처녀였다. 마리아는 언제나 집에 남아서 꿀벌처럼 일만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하나님께 나쁜 생각은 그 마음에 뿌리내리지 않도록 늘 기도했다. (예수, 하버드에 오다. 하비 콕스 지음, 문예출판사, 104쪽) 가톨릭은 아타나시우스의 생각을 더욱 발전시켰다. 마리아는 항상 처녀였으며, 무죄하시고, 승천하셨다고 가르친다. 반면에 개신교에서는 마리아에 대하여 놀랄 정도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


사실 마리아에 대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매우 적기 때문에 그녀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말하기가 몹시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마리아가 사촌 언니 엘리사벳을 찾아가서 부른 노래가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노래에 마리아의 생각이 묻어있음을 보게 된다. 그녀는 이렇게 노래한다.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공동번역 성경에서)


이 노래를 살펴보면 그녀는 경제 불균형에 대한 의식이 있었다. 그녀는 사회의 부조리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결코 조용히 집안에 앉아서 꿀벌처럼 일만 하던 여자는 아니었다. 그녀는 여자니까 순종해야 되고, 순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꿈이 있었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꿈이 있었다.


1955년 12월 1일 백화점에서 재단 일을 마친 40대 초반의 한 흑인 여성이 버스에 탔다. 그녀는 로자 파크스였다. 40을 조금 넘긴 그녀는 아주 평범한 중년 여자였다. 두 정거장이 지나자 버스는 만원을 이루었다. 당시 인종법에 의하면 버스에는 흑인 좌석이 따로 구분되어 있었다. 로자 파크스는 백인 좌석에 앉아 있었다. 운전기사는 백인을 위하여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명령하였지만, 그녀는 아주 짧게 대답하였다. “NO."

그녀는 훗날 고백한다.

내가 그날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이유가 너무 피곤해서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몸이 지친 것이 아니었다. 지치긴 했지만 여느 날 이상으로 지친 건 아니었다.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 당시의 나를 꽤 늙은 여자로 상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단지 마흔두살일 뿐이었다. 그렇다. 나는 지쳐 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내 인내심이 지쳐 있었다. 백인에게 끝없이 양보하고 굴복하는 것에 철저히 신물이 나 있었다.” (로자 파크스 나의 이야기. 짐 해스킨스, 문예출판사. 133쪽)


그렇게 해서 흑인 시민권 운동이 시작되었다. 부조리한 현실에 강력하게 저항하였던 한 이름없는 여자는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의 어머니가 되었다.


니체의 변신론에 낙타 이야기가 나온다.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받으며 사막 위를 묵묵히 걸어가는 낙타.

낙타는 아무리 무거운 짐을 짊어져도 불평하지 않는다. 낙타는 “아니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기 위해 수없이 무릎을 꿇어야 했다. 낙타의 무릎은 굳은살로 단단해졌다.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며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낙타는 인간의 굴종을 뜻한다.


찬송가에 이런 노래가 있다.

뜻 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요

운명에 맡겨 사는 그 생활 아니라

우리의 믿음 치솟아 독수리 날듯이

주 뜻 이뤄지이다. 외치며 사나니.


약한 자 힘주시고 강한 자 바르게

추한 자 정케함이 주님의 뜻이라.

해 아래 압박 있는 곳 주 거기 계셔서

그 팔로 막아 주시어 정의가 사나니."


마리아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비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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