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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19. 2015

호세아의 부인 고멜과 달리의 부인 갈라

고대 가나안 땅의 사람들은 풍요의 신 바알을 섬겼다. 바알(Baal)은 주인, 남편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비와 폭풍을 주관하는 농사의 신이며, 가축 떼를 주관하는 풍요와 다산의 신이다. 농사를 지을 때 비는 가장 증요한 요인이다. 비가 오지 않는 갈수기에 우리 선조들은 기우제를 드렸다. 바알 신을 섬기는 가나안 사람도 비가 오기를 원하여 해 뜨기 전에 바알에게 제사를 드렸다. 그것은 바알 신전에서 신전의 창기들과 음란한 의식을 거행하여 바알을 흥분케 하는 예식이다.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성적인 문란 행위를 바알이 보고 기뻐하여 하늘에서 비를 내려준다는 것이다. 그들은 바알의 정액이 곧 하늘의 비라고 생각하였다.

시리아에 남아 있는 바알의 신전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현재의 팔레스타인)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바알 신앙을 숭배하였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볼 때 바알 신앙은 곧 물질 숭배요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처녀들은 결혼 전에 바알 신전에 가서 풍요의 축복을 얻기 위해 처녀성을 버리는 습성이 있었다.(호세아서 주해 / 장일선 지음 / 전망사 / 20쪽)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못 할 짓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선지자들은 이익을 위해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따라 살라고 피 끓는 심정으로 설교하였다.  

바알신

승리를 위해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전쟁을 일삼고 이익을 위해서 남을 배신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전국 시대에 맹자가 살았다. 그도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이익을 위해서 살지 말고 인의도덕을 위해 살라고 외쳤다.

아무도 듣지 않지만, 맹자는 왕들을 찾아다니면서 설득하였다. 닭이 울면 일어나 부지런히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순임금 같은 훌륭한 사람들이요, 반대로 닭이 울면 일어나 부지런히 이익만 따지는 사람은 도둑의 무리다.”(진심 상 25) 눈만 뜨면 이익을 추구하는 전국 시대 왕들에게 맹자는 인의 도덕이야말로 왕의 길임을 설파하였다. 눈앞의 작은 이익을 위해서 목숨 바쳐가며 싸우는 세상에서 맹자는 순진한 이상주의자 같아 보인다.


중국의 전국시대와 같이 혼탁한 시대가 호세아(Hosea) 선지자가 살던 시대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이상한 명령을 받는다. 디블라임의 딸 고멜(Gomer)과 결혼하라는 것이다. 고멜은 그 당시 널리 알려진 창녀였다. 디블라임의 뜻은 무화과 떡 두 개라는 말이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떡 두 덩어리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싸구려 창녀로 해석하기도 한다.

18세기 러시아의 선지자 호세아 아이콘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로 살라고 가르쳐야 할 선지자로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명령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은 바알 앞에 모두 고개를 숙이며 자기 딸들의 처녀성까지도 바알에게 바치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명령은 극단적 교훈을 담고 있었다. 현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보다는 물질 앞에 머리 숙인 창녀와 같다는 뜻이다.


고멜과 결혼한 호세아는 두 아들과 딸을 낳는다. 첫째 아들 이스르엘 -  이스라엘의 멸망을 상징하는 저주의 이름이다. 둘째 딸 로루하마 - 다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셋째 아들 로암미 - 내 백성이 아니다는 뜻이다.


호세아의 자녀 이름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음란한 바알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는 경고였다. 고멜은 호세아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은 후 다시 남편을 저버리고 다른 남자를 따라 집을 떠난다. 일반적인 창녀는 남자가 자기를 찾아오기 바라지만 고멜은 자기가 연애하는 자를 따른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멜은 그저 단순한 창녀라기보다는 자유연애를 부르짖는 여자요, 성 해방론자인 것처럼 보인다. 고멜은 그렇게 이 남자 저 남자의 손을 거치면서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호세아는 인생 밑바닥에 떨어진 고멜을 다시 찾아간다. 그리고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을 치르고 고멜을 사온다. 당시 노예 한 사람의 값은 은 30 개였다. 그는 그렇게 끝까지 고멜을 사랑하였다.

달리와 갈라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고멜을 사랑한 호세아를 보면서 음란한 여인 갈라를 사랑한 달리가 생각난다. 갈라의 원래 이름은 엘레나 이바노브나 디아코노바(Elena Ivanovna Diakonova)였는데 자기가 사랑한 남자들의 이름을 따서 갈라 엘뤼아르 달리(Gala Eluard Dali, 1894~1982)라고 하며 일반적으로 갈라라고 부른다. 러시아 태생의 갈라는 조국의 혁명을 피해 스위스로 건너가서 우연히 프랑스의 시인 폴 엘뤼아르(Paul Eluard, 1895~1952)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때 그녀 나이 19살 때였다. 그녀는 성적 쾌락주의자였다. 어쩌면 현대판 고멜인지도 모르겠다. 1917년 폴 엘뤼아르와 결혼했으면서도 화가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1891~1976)와 3년 넘게 이중결혼 생활을 한다. 말만 결혼이지 그녀는 원하는 남자와 자유롭게 성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1929년 당시 25살 무명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를 만난다. 둘의 나이 차이는 무려 10년 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불타올랐고 1934년 40살의 갈라와 30살의 달리는 결혼한다.

왼쪽부터 달리, 갈라, 엘뤼아르, 누쉬라, 1931년

달리는 평생 다양한 공포증과 노이로제로 정서적 불안증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달리가 갈라를 만나면서 안정을 찾기 시작하고 초현실주의 거장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달리는 갈라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내 어머니보다, 내 아버지보다, 피카소보다도... 그리고 심지어, 돈보다 갈라를 더욱 사랑한다. 그녀가 나를 치유했다."

그렇다고 자유분방한 성 개념을 가진 갈라가 달리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살진 않았다. 그녀는 무수히 많은 남자들과 염문을 뿌리며 돌아다녔다. 연하남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달리의 그림을 선물로 주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갈라에 대한 달리의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그는 갈라를 위하여 스페인의 한 성을 사주기도 하였으며 갈라의 불륜을 다 알면서도 묵인하여 주었다. 갈라는 달리의 예술적 영감을 자극하는 뮤즈였으며, 연인이고, 친구고, 착취자이자 폭군이었다.

갈라의 삼종기도

호세아의 부인 고멜, 달리의 부인 갈라 이 두 여자는 끝없는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성적 문란함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갈라는 자기 남편 달리의 예술적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도와주었고, 정서적 불안증세를 치료하는 묘약이었지만, 고멜은 호세아에게 도움은커녕 아픔만 주는 천덕꾸러기였다.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이 그런 모습이었다.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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