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gos Brunch Jun 09. 2019

예언은 과거를 소환한다.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한국의 대표적 구약학자인 류호준 교수는 ‘아모스:시온에서 사자가 부르짖을 때’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예언하면 미래를 떠올리는가 아니면 과거를 떠올리는가? 만일 미래를 떠올린다면 예언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1) 선지자는 미래를 말하는 사람이라기 보다 오히려 과거를 소환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고통받던 노예들을 구원하여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다.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레26:12).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고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면서 그들이 세워야 할 공동체가 어떠해야 할지 자세히 가르치셨다. 아무것도 아닌 자들이었는데 이제 하나님 앞에서 의미있는 자로 서기 위해선 언약의 말씀을 늘 기억하고 실천해야 했다.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만들라고 한 공동체는 이룰 생각도 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 제국을 따라갔다. 여러 차례 기회를 주었고, 경고도 하였지만, 이스라엘은 듣지 않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려고 보낸 메신저가 바로 선지자다.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을 향하여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을 때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선지자가 말한다는 뜻은 이제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겠다는 뜻이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선지자는 과거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를 소환한다. 기억 속에 과거를 소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심리학자 아들러(Alfred W. Adler,  1870~1937)는 “기억이 중요한 이유는 그 해석과 현재 및 미래의 인생에 대해 갖는 관계 때문”이라고 하였다.2)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것은 기억력 때문이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시몬 비젠탈(Simon Wiesenthal, 1908~2005)은 ‘살인자들은 우리 가운데 있다’에서 나치 친위대가 한 말을 썼다. “이 전쟁이 어떤 식으로 끝나든지 간에 너희(포로)와의 전쟁에서 이긴 것은 우리다. 너희 중 아무도 살아남아 증언하지 못할 터이니까. 혹시 누군가 살아나간다 해도 세상이 그를 믿어 주질 않을 터이니까. 많은 사람이 연구하고 토론하겠으나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 터이니까. 우리가 그 증거들을 너희와 함께 묻어버릴 터이니까. 너희 중 누가 살아남아 증언하더라도 사람들은 너희가 말하는 사실을 믿기에 너무도 끔찍하다고 여길 터이니까. 오히려 이것을 부인하는 우리를 믿겠지. 수용소의 역사, 바로 그것을 쓰는 것은 너희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될 것이니까.”3)


아우슈비츠는 인간을 허무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다. 죄수는 이름 대신 번호로 불렸고,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는 상태로 만들었다. 인간의 기억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곳이 아우슈비츠였다.

나의 아버지는 치매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기억을 점점 잃어가시면서 자신이 결혼한 것도 잊어버렸고, 사랑하던 아들딸도 다 잊어버리고 마침내 자신도 잊어버렸다. 몸은 우리 곁에 있었지만, 마음과 정신은 급속도로 우리를 떠나셨다. 너무나 소중했던 관계가 다 파괴되었다. 기억 상실은 타인을 해체하고, 자신을 해체하고, 모든 관계를 해체한다.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는 사람이란 “자기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자기를 자기로 간주할 줄 아는 사유하는 지적 존재, 시간과 장소가 변해도 항상 동일한 사유(기억)를 하는 존재”라고 정의했다.4) 기억할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건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고, 그가 맺었던 모든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다. 선지자가 과거를 소환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억하고 회복하라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제 하나님께서 직접 행동하실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언이다.


예언은 과거를 소환하여 현재를 경고하고 미래를 예측하게 한다. 예언을 단지 미래에 대한 것으로만 이해한다면 그건 크게 오해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제자들은 ‘때’(미래)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그때 예수님은 미래에 대해 관심을 두지 말고 현재에 관심을 가지라고 하셨다.


구약의 예언서나, 신약의 요한 계시록은 현재적 책이다. 조엘 그린(Joel B. Green, 1956~)은 “모든 예언적 말씀은 그것이 말해진 당시의 시대를 가리키고 있다”고 하였다.5) “요한계시록의 메시지가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향한 것이라는 점은 요한이 그들에게 예언에 기록된 것을 지키라고 반복해서 권면한 사실로 알 수 있다. 게다가 요한은 그 책을 서신의 형태로 씀으로써, 자신이 독자들에게 말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나타내며, 또 그의 호소가 진지한 것임을 강조한다.”6)


사도 요한은 끊임없이 구약을 동원하여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전히 역사하고 계시고 우주의 주인이시며, 역사를 매듭짓는 분임을 선포하셨다. 요한 계시록의 목적은 그 당시 그리스도인을 위로하고 격려함으로써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이루는 일에 지치지 않도록 함에 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이나, 신약 교회 교인이나 동일하게 하나님의 하신 일과 언약을 기억해야 한다. 신앙은 기억이다.


시편 저자는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시143:5)한다고 하였다. 기억과 묵상은 쌍을 이룬다. 묵상은 단순히 기억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과거의 기억이 오늘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새기는 것이다. “신앙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하신 일을 새김질해서 그 의미를 아는 것이다.”7) 한스 큉(Hans Küng, 1928~)은 “그리스도교 - 그것은 기억의 활성화”라고 하였다. 8) 우리의 드리는 예배도, 성만찬도, 성경 읽기도 모두 기억의 활성화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돈독히 하고, 바르게 한다.


예언을 통하여 미래를 보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과거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라.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처녀는 막상 신랑이 왔을 때 오히려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치유하고 회복하기 위함이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헨리 나우웬(Henri J. M. Nouwen, 1932~1996)은 말하였다. “기억은 우리를 과거에 닻을 내리게 하고, 지금 여기에 현존하게 하며, 나아가 새로운 미래에 마음을 열게 한다.”9)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신약의 요한 계시록이나 예언은 미래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를 소환하여 현재를 돌아보게 하고 장차 오실 하나님을 준비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1) 류호준, ‘아모스’(크리스챤다이제스트 : 경기) 2003년, 27쪽

2) 알프레드 아들러, ‘오늘을 살아갈 용기 아들러 심리학’, 유진상 옮김 (스마트북 : 서울), 2015년, 38쪽

3) 이정배, ‘기억 없이 부활 없다’, 기독교사상 700, 2017. 4, 대한기독교서회, 85쪽

4) 줄리안 바지니, ‘에코 트릭’, 강혜정 옮김, (미래인 : 서울), 2012년, 70쪽

5) 조엘 그린, ’어떻게 예언서를 읽을 것인가’한화룡 옮김 (IVP : 서울) 1992년, 65쪽

6) 조엘 그린, 71쪽

7) 김정준, ‘시편 명상 5’, (한국신학연구소 : 서울) 1996년, 451쪽

8) 한스 큉, ‘왜 그리스도인인가?’, 정한교 옮김 (분도출판사 : 왜관) 1987년, 63쪽

9) 헨리 나우웬, ‘춤추시는 하나님’ 윤종석 옮김 (두란노 : 서울) 2014년, 92쪽


매거진의 이전글 성경 속 노마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