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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Aug 16. 2019

사자와 어린양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어렸을 적 외할머니 무릎에 누워 옛날이야기를 해달라며 잠투정을 하였다. 할머니는 싫다 하지 아니하시고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하셨다. 할머니는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하셨다. 공포물, 우화, 판타지를 넘나드는 할머니의 이야기 실력에 나는 그만 스르륵 꿈나라로 가곤 했다.


C.S. 루이스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 ‘나니아 연대기’를 썼다. 그는 아이들을 환상의 세계로 초청하였다. “나니아 같은 나라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서는 인간이 되셨지만, 그 나라에서는 사자가 되셨다고 상상해보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보자”(McGrath, 104 재인용)


‘나니아 연대기’의 중심 캐릭터는 아슬란이란 사자다. 아슬란은 ‘나니아 연대기’에서 창조자, 구원자, 심판자인 그리스도 예수의 역할을 한다(McGrath, 115). C.S. 루이스는 계시록 5장 5절에 나오는 ‘유대 지파의 사자(Lion) 다윗의 뿌리’에서 영감을 얻어 아슬란을 창조하였다. 사도 요한은 C.S. 루이스처럼 문학작품을 쓰기 위하여 ‘사자’를 창조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환상을 통하여 ‘유대 지파의 사자’를 직접 보았다. 우리는 사도 요한이 사자를 보는 순간 느꼈을 감정을 짐작할 수 있을까?


옛날 어린이들은 ‘호랑이가 온다’는 말에 울음을 그쳤다. 그 시대는 그만큼 사람과 동물이 가까이 있었다. 14세기 팔레스타인에서 사자가 사라지기 전까지, 사자는 이스라엘에서 흔한 동물이었고, 무서운 동물이었다(류모세, 182). 구약을 보면 사자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한다(창 49:9, 삿 14:5-6, 삼상 17:34-35, 삼하 23:20, 단 6:22, 암 3:4,8, 나 2:13 단 6:22, 렘 4:7 등). 고대인들은 동물의 왕자인 사자가 포효하는 소리를 들으며 살았다.

사도 요한은 유대의 사자를 보면서 엄청난 위엄과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압도되었다. 능력과 권세를 가진 사자는 승리를 상징한다. 불의와 전쟁, 폭력과 사악함에 대하여 불타는 분노를 발하는 모습을 쉽게 연상할 수 있다. 놀라운 사실은 사자의 이미지는 순간에 사라지고 ‘죽임 당하신 어린양’의 모습이 등장한다(계 5:5,6). 예수님의 모습 중 이보다 더 모순되어 보이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Gariepy, 220).


사자는 하나님 나라가 영광 중에 나타나실 때, 그리스도께서 왕으로서 지니는 위엄의 상징이다(Goldsworthy, 30).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는 승리와 정복과 심판의 이미지를 가진다. 그러고 보면 사자가 그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와 너무나 잘 맞는다. 하나님께서 ‘유대 지파의 사자’ 이미지에서 ‘죽임 당하신 어린양’ 이미지로 순식간에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리처드 보함(Richard Bauckham)은 이 부분을 이렇게 해석한다. “사자와 어린 양의 서로 대조되는 이미지를 병행하고 있는 것은 그 당시 존재하던 유대 종말적 소망을 요한이 기독교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이필찬, 71 재인용).


혹시라도 ‘사자’라는 말을 듣고 세상을 심판하고 피의 복수를 연상할까 봐 재빨리 ‘어린양’의 이미지로 바꾸었다는 뜻이다. 분명 사자는 존귀와 영광과 승리를 상징하지만, 동시에 사자가 가지는 폭력성때문에 오해할 것을 염려하여 '죽임 당하신 어린양'으로 이미지 전환을 하였다.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종말은 많은 사람 특별히 유대인이나 세대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종말과 다르다. 휴거라는 책을 통해 보여주는 종말은 전쟁과 난리와 지진과 기근으로 공포 그 자체다. 세대주의자들이 그리는 종말은 파괴와 멸망 이야기로서 끔찍하다.


하나님께서 그리신 최후 승리는 사단이 즐겨 사용하는 폭력이 아니다. 칼과 창으로 피를 보면서 원수를 죽이며 얻은 승리가 아니다. “하나님의 승리는 어떤 전쟁터에서 일어난 것도 아니고, 용맹한 사자가 쟁취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자기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 준 어린양에 의해 이루어졌다”(Bartholomew&Goheen, 300). 요한계시록에서 요한은 예수님을 28번이나 어린양으로 묘사하였다. 죽임 당하신 어린양은 승리자로 하늘 보좌에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앉으신다. 이 이미지는 요한계시록 전체를 열어주는 해석의 열쇠이다(Gorman, 205).


요한계시록은 유대인들이나 세대주의자들이 상상하는 잔혹한 결말을 예고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구속 방법(십자가)이 효과적임을 입증한다. 결국 요한계시록 4장에서 24장로가 창조주 하나님에게 찬양하지만, 요한계시록 5장에서는 24 장로뿐만 아니라 네 생물과 만만과 천천의 천사들이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찬양하는 것으로 바뀐다(이필찬, 64). 요한계시록은 복음의 승리, 죽임 당하신 어린양의 승리를 찬양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요한계시록은 극심한 핍박 속에 사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환상과 묵시를 통하여 현실을 극복할 수 있게 하고, 믿음을 가지고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복음서이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는 초대 교인들이 얼마나 감격했을까? 나는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상상해본다.


1. McGrath Alister, 'C.S. 루이스와 점심을 먹는다면'(C.S.Lewis), 최요한 옮김, 서울 : 국제제자훈련원, 2015년

2. 류모세, ‘열린다 성경 동물 이야기’, 서울 : 두란노, 2010년

3. Gariepy Henry, ‘예수의 초상’(100 Portraits of Christ), 안윤근 옮김, 서울 : 기독지혜사, 1990년

4. Goldsworthy G., ‘복음과 요한계시록’(The Gospel in Revelation), 김영철 옮김, 서울 : 한국성서유니온, 1991년

5. 이필찬,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서울 : 성서유니온, 2012년

6. Bartholomew Graig G. & Goheen Michael W., ‘성경은 드라마다’(The Drama of Scripture), 김명희 옮김, 서울 : IVP, 2013년

7. Gorman Michael J., '요한계시록 바르게 읽기'(Reading Revelation Responsibility), 박규태 옮김, 서울 : 새물결플러스,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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