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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쓰는 가면으로 괴로운가요?

by Logos Brunch

일본인은 속마음을 의미하는 혼내(本音)와 겉마음을 의미하는 다테마에(建前)를 가진다. 우리는 일본인이 겉과 속이 다르다고 비판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모두 여러 가지 마음을 가진다. 영어의 ‘인격(personality)’이라는 말은 ‘가면’을 뜻하는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에서 유래하였다. 라틴어 페르소나는 그것을 ‘통하여(per) 소리(sona)’를 낸다는 말의 합성어이다. 가면을 쓰고 가면에 어울리는 말을 한다는 뜻이다.


로마 시대 연극 배우는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였다. 가면을 쓰는 순간 그는 배역에 충실해야 했다. 자기 아이가 사고로 죽었다 할지라도 맡은 역할이 희극 배우라면, 그는 자기감정을 숨기고 웃음을 연기해야 했다. 훌륭한 배우는 가면을 쓰고 감정을 숨기고, 마음을 숨겨야 한다.


노예 출신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Epictetos, 55?~135?)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작가의 의지에 의해서 결정된 인물인 연극배우라는 것을 기억하라. 만일 그가 연극이 짧기를 바란다면 짧을 것이고, 만일 길기를 바란다면 길 것이다. 만일 그가 너에게 거지의 구실을 하기를 원한다면, 이 구실조차도 또한 능숙하게 연기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만일 그가 절름발이를, 공직 관리를, 평범한 사람의 구실을 하기를 원한다고 해도 이와 마찬가지이다”(엥케이리디온 ENCHEIRIDION).


인간관계는 복잡하여 여러 가지 가면을 필요로 한다. 아이는 자라면서 자기 역할에 따라 써야 하는 가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 둘 가면을 갖추기 시작한다. 이는 다중 인격 장애가 아니라 정상적인 인격의 특징이다. 괴테는 “우리의 가슴에는 두 개의 영혼이 있다”라고 하였다. 그는 말하였다. “원래 나는 이러저러하게 하고 싶어. 하지만 내 안의 다른 부분이 자꾸 다른 방향으로 가는 걸…”(Sellin, 218)

바울도 비슷한 고백을 하였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롬 7:19). 바울은 자신 안에서 속 사람과 겉 사람이 서로 싸운다고 하였다. 속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난 사람이고, 겉 사람은 거듭나기 전 세상의 방식대로 살던 사람이다(고후 4:16). 바울은 이중 인격자가 아니었다. 바울이 말하는 속 사람과 겉 사람은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오랫동안 닦아온 습관과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이 있다. 만일 특별한 일이 없었다면,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일이 없었다면, 그는 지금까지 살아온 방법대로 살았을 것이다. 예전 성격 그대로, 예전 스타일 그대로, 예전에 쓰던 가면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갖추기를 원한다면, 그는 갈등과 내적 싸움이 필연적으로 따르기 마련이다.


그리스도인은 늘 갈등하며 사는 사람이다. 속 사람과 겉 사람이 늘 치열하게 싸운다. 그 싸움은 쉽지 않은 싸움이다. 예수 믿는다고 고백하기만 하면 이기는 싸움이 아니다. 종교 생활에 열심을 낸다고 해서 이기는 싸움이 아니다. 그동안 습관처럼 만들어 온 옛사람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는다. 바울은 자기 "몸을 쳐 복종하게'한다고 하였다(고전 9:27). 바울 같은 사도도 그 싸움이 힘들고 고되다고 고백하였다.


이 싸움을 계속해서 싸우지 않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옛사람의 습관에 굴복하고 만다. 만일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매일같이 쓰던 익숙한 옛 가면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가면이 진짜 속 사람인 줄 착각하게 된다. 그러다 주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가면을 벗는 날 자신의 추악한 모습, 망가진 모습에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늘 속 사람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속 사람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는 사람이다.


오강남, ‘움켜쥔 손을 펴라’, 서울 : 위즈덤 하우스, 2008년

강신주, ‘철학이 필요한 시간’, 파주 : 사계절, 2012년

Sellin Rolf, ‘예민함이라는 무기’(Wenn die Haut zu dünn ist : Hochsensibiltät-vom) E-book, 유영미 옮김, 서울 : 나무생각,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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