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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an 21. 2020

아비가일은 현숙한 여인이었을까?

아비가일은 현숙한 여인이었을까? 국어사전에 '현숙하다’는 “여자의 마음이 어질고 정숙하다”는 뜻이다. 잠언에 '현숙하다'의 뜻은 조금 다르다(잠 31:10). 잠언에 등장하는 현숙한 여인은 가정의 주도권을 잡고 하인을 관리하고, 경제를 책임져 밭을 가꾸고 포도원을 일구며, 장사하여 많은 이익을 남기고, 양털과 삼을 구하여 남편 옷을 지어 입히고, 남편의 삼시 세끼를 잘 차려 먹이고, 궁핍한 자를 돌보며, 남편이 다른 사람 앞에서 멋지게 보이도록 최선을 다하는 여자다. 그럼 그 현숙한 아내의 남편은 어떤가. 그는 아내가 해준 멋진 옷을 입고 성문 앞에 나가서 온종일 노닥거린다. 사람들은 그런 남편을 보고 ‘아내를 참 잘 얻었다' 당신 아내는 정말 현숙한 여인이라고 칭찬한다.


아비가일은 남편을 보좌하여 하인들을 돌봤다. 혹시 남편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즉각 보고하도록 종들을 훈련하였다. 궁핍한 자나, 어려운 자를 홀대하지 않도록 매사에 관심을 가졌다. 아비가일은 어진 여인이었다.


그녀는 집안일만 살핀 것이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도 밝았다. 남편은 언제나 권력자인 사울 편에 서서 힘과 권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였고, 약한 자를 무시하였다. 그런 면에서 남편은 여당이었다.


반면에 아비가일은 약자 편에 섰다. 칼과 창으로 세도를 부리는 사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백성을 보살피려는 다윗을 지지하였다. 그런 면에서 아비가일은 야당이었다. 아비가일은 판단력이 뛰어난 여인이었다.


아비가일과 나발은 다윗을 바라보는 시각이 정반대였다. 나발은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하면서 다윗을 배신한 종으로 묘사하였다. 아비가일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줄 확신하였다(삼상 25:30).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 부은 후, 그가 왕이 될 것이라는 선언을 최초로 하였다. 어떤 성경학자는 이를 두고 아비가일의 예언적 지혜라고 하였다.


그녀의 지혜를 유진 피터슨은 잘 묘사하였다. 아비가일은 다윗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발을 죽이겠다고 400여 명의 용사와 함께 달려오던 다윗 앞에 혈혈단신으로 나아가 길을 막고 무릎을 꿇었다. 다윗은 분노와 적개심과 살의로 가득 차 있었다. 다윗은 이성을 잃었다. 그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렸고, 광야에서 배운 아름다운 거룩도 잃어버렸다.


전에 사울 왕이 악에 받쳐 자기를 죽이려고 할 때에도 하나님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기고 겸손히 물러날 줄 아는 다윗이었다. 그런 다윗이 지금은 핏발 선 눈으로 칼을 휘두르며 달려왔다. 나발의 어리석음과 야비함이 다윗을 자극하여 그도 나발처럼 야비하고 어리석어져 분노로 불타올랐다. 그런 다윗 앞에 아비가일은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다윗이여, 원수를 갚는 일은 당신이 할 일이 아닙니다.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고, 당신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당신이 여기 광야에 있는 것은,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시며 하나님 앞에서 당신이 누구인가를 발견하기 위해서입니다. 광야는 당신이 스스로를 시험해 보며 자신이 얼마나 강인하고 꼿꼿한지 알아보는 시험장이 아닙니다. 광야는 당신의 삶 속에서 그리고 당신의 삶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능력을 발견하는 곳입니다. 나발은 어리석은 자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당신도 어리석은 자가 되렵니까? 여기서 어리석은 자는 하나로 족합니다.”(Peterson, 105)


아비가일은 다윗을 일깨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게 하였다. 다윗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고 섬기는 종이 되도록 하였다. 다윗은 아비가일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였다. 겉보기에 아비가일이 무릎 꿇었지만, 영적으로는 다윗이 아비가일 앞에 무릎 꿇은 것이다. 아비가일은 믿음 좋은 여인이었다.

그럼 정말 아비가일은 현숙한 여인이었을까? ‘현숙’이 완성되려면 남편과의 관계를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 잠언에서 말하는 '현숙한 여인'은 남편이 하는 일 없이 성문 앞에 나갈지라도, 그의 품위가 떨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국어사전에는 조금 다르지만 ‘정숙’이란 단어를 사용해서 남편과의 바른 관계를 전제하였다.


아비가일은 남편을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그는 다른 남자 앞에서 자기 남편의 흠을 들추어내고 헐뜯었다.

“그 잔인한 사람 나발이 한 일에 마음 쓰지 마십시오. 그는 자기 이름처럼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나발은 바보라는 뜻입니다. 그에게서는 미련함이 흘러나옵니다”(삼상 25:25, 메시지)

아무리 자기 남편이 바보같이 행동하고 말했다 해도 이렇게 말해선 안 된다. 더욱이 다윗과 남편은 원수지간이 아닌가?


나발이 적으로 생각하는 다윗을 남편 몰래 찾아간 것도 결코 현숙한 여인이 할 짓은 아니다. 그녀가 현숙하지 않은 결정적 증거는 그녀가 다윗에게 한 마지막 말이다.

“하나님께서 내 주인님(다윗)을 위해 일이 잘되게 하시거든,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삼상 25:31, 메시지).

“야훼께서 나리(다윗)의 운을 터주시는 날 이 계집종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공동번역).

이건 거의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수준의 말이다.


그녀가 지혜가 있고, 신앙도 좋다 할지라도 그녀는 현숙한 여인은 아니었다. 나발이 죽은 후, 다윗은 즉시로 아비가일을 자기 부인으로 삼았다. 아비가일이 자기 남편 나발의 장례식이나 제대로 치르고 갔는지 모르겠다. 밧세바는 우리야가 죽은 후, 애도 기간을 지냈다고 성경은 기록하였다(삼하 11:26-27). 그러나 아비가일은 애도 기간을 지냈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유연희, 109).


그럼 아비가일이 다윗과 결혼하여 행복했을까? 다음 편을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Peterson Eugene H. ‘다윗 :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Leap Over a Wall), 이종태 옮김, 서울 : IVP, 2001년

유연희, ‘아비가일의 남자들 : 삼상 25장 다시 읽기’, 구약논단 제16권 1호 (통권 35집) 98-118,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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