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가일 이야기 1
다윗의 세 번째 부인은 아비가일이다. 아비가일은 원래 나발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죽자 곧바로 다윗의 아내가 된 인물이다. 성경은 나발을 어리석고 완고한 남자로 아비가일은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자로 묘사한다. 사무엘상 25장은 나발, 아비가일, 다윗의 삼각관계를 보여준다. 우리가 평소 생각하는 대로 과연 나발은 어리석은 자이고, 아비가일은 지혜로운 여인이고 다윗은 바른 행동을 하였을까? 성경을 조금만 자세히 읽어보면 우리의 성경 읽기가 얼마나 단순한지를 깨닫게 된다.
성경은 나발의 이름을 소개하기 전에 그가 얼마나 부자인지 소개한다.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의 양 털을 깎고 있었으니”(삼상 25:2)
구약학자 브루그만은 이런 방법의 소개는 나발의 소유가 그의 인격보다 우선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Brueggemann,267). 실제로 성경은 곧이어 나발이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다”(삼상 25:3)고 평하였다. 히브리어로 ‘나발’은 어리석다는 말이다. 그러나 유대인은 누구도 아이에게 이런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아마도 나발은 그의 실제 이름이 아니라 그의 성격을 표시하는바, 무지나 경멸을 상징하는 별명으로 간주된다”(강사문, 647).
정확히 말하자면 나발은 ‘위대한 사람’이다. 나발을 부자라고 소개하는 히브리어 “하이쉬 가돌 메오드”는 모세(출 11:3), 바르실래(삼하 19:32-33), 나아만(왕하 5:5,9), 욥(1:3)을 소개할 때 썼던 말이다(유연희, 103). KJV은 단순히 부자로 번역하지 않고 ‘위대한 사람’(the man was very great)으로, 제네바 성경은 ‘매우 강력한 사람’(the man was exceedingly mighty)으로 번역하였다.
나발은 단순히 어리석은 부자가 아니라 갈렙 가문의 유력자로서 구약학자 레벤슨(Levenson, J.D.)과 핼펀(B.Halpern)은 나발이 갈렙 가문의 우두머리였을 것으로 추측하였다(유연희, 103). 그는 갈렙 가문의 유력자로서 사울과 다윗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다윗의 부하들에게 하는 말을 보면, 그는 분명 사울에 속한 사람이었다. 당시 부자로서 유력자가 되었다는 것은 정치 실세인 사울 왕과 밀접한 관련을 맺지 않고선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간과하는 것 중 하나는 사울이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다스렸다는 사실이다. 그 정도면 장기 집권이라 할 수 있고, 생각 이상으로 사울이 이스라엘 백성의 지지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사울이 죽은 후에도 북이스라엘은 쉽사리 다윗 편에 서지 않았음을 통해서 사울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나발은 요즘 정치 감각으로 말하자면 보수 우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자기 입장이 분명한 사람이었고, 사울에게 줄을 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삼상 25:10)라고 말한 것은 정말 다윗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일부러 다윗을 무시한 처사라 할 수 있다. 오히려 그는 사울과 다윗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다윗이 사울 왕에게 등 돌린 사건을 슬쩍 비꼬면서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삼상25:10)”라고 하였다. 나발을 어리석다고 표현한 것은 그가 미련하고 지능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다윗 편에서 볼 때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삼상 25:3)기 때문이다. 나발은 오히려 달변가요 능변가였다.
그의 정치적 입장은 분명하였다. 그는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 집안이 다윗 편에 섰다가 사울에게 몰살당한 사건(삼상 22:9-19)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다윗을 거절한 것은 그의 정치적 입장을 고려할 때 현명한 처사라 할 수 있다. 나발은 다윗이 자신의 양 떼를 지켜주는 것이 싫었고, 다윗과 얽혀서 사울에게 미움받는 것은 더욱 싫었다. 나발은 갈렙 지파의 우두머리요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삼상 25:2)나 되는 부자이므로 당연히 종들도 많았다. 아브라함은 318명의 종이 있었는데 나발 역시도 수백 명의 종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는 다윗의 도움이 없어도 자기 종들의 힘으로도 얼마든지 재산을 보호할 수 있으며, 설령 다윗이 자신을 공격해도 막아낼 힘과 자신이 있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다윗이 원치도 않는 서비스(양 떼 보호)를 제공한 빌미로 대가를 요구할 때 거절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나발은 위험보다는 안정을 선택한 사람이고, 가정을 지키기 위하여 나름의 노력을 한 사람이다. 그를 악하고 어리석다 비난하는 것은 그가 역사를 읽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하나님은 사울이 아니라 다윗을 사랑하셨다)을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정치 실세인 사울 편에 선 것이 어리석은 나발이란 오명을 쓰게 되었다. 이는 마치 예레미야 시대 거짓 선지자들이 시대와 세상을 바로 읽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곡해하여 '심판'을 외쳐야 할 자리에서 '평화'만을 외쳤던 것과 같다. 우리도 역사 속에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읽지 못하면 언제든 나발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의 부인 아비가일은 어떤 여자였을까? 아비가일은 정말 현명하고 현숙하였을까? 아비가일과 나발의 결혼 생활은 어떠했을까? 다음 글을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Brueggemann Walter, ’ 사무엘 상하’, 한미 공동 주석 편집 번역위원회 편, 서울 : 한국장로교출판사, 2000년
강사문,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사무엘상’,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2008년
유연희, ‘아비가일의 남자들 : 삼상 25장 다시 읽기’, 구약논단 제16권 1호 (통권 35집) 98-118, 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