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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an 01. 2020

깨어진 미갈의 사랑

“안나 카레니나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그녀의 강박적인 감정을 톨스토이가 그려 주었기 때문에, 또 의미를 탐구하다가 아프리카의 정글에서 죽은 벨기에의 건축가 퀘리가 탈진한 사례를 그레이엄 그린이 잘 묘사했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의 소망을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고통 가운데로 그다지도 깊이 들어가서 거기에서부터 말할 수 있었던 용기 때문입니다. 키에르케고르나 사르트르, 까뮈, 하마슐드, 솔제니친이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글을 읽는 많은 사람은 자신의 개인적인 탐구를 계속할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고통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긍휼한 마음 그 고통을 만지는 사람은 치유와 새로운 힘을 가져옵니다. 치유가 시작되는 것은 고통에 대한 일치감을 맛볼 때라는 것은 사실 역설입니다. 우리는 살고 있는 해결지향적인 사회에서 고통을 함께 나누려 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덜어 주고자 하는 것은, 다칠 각오를 하지 않고 불난 집에서 아이를 구해 보려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깨닫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Nouwen,70).


미갈은 다윗을 뜨겁게 사랑했지만, 다윗은 미갈을 찾지도 않고 관심을 주지도 않았다. 하염없이 세월만 지나가고 있었다. 돌아오지 않을 줄 알면서도 미갈은 언제나 창문 밖 먼 산만 쳐다보았다. 그런 딸을 바라보는 아비 사울의 마음은 복잡 미묘하였다. 다윗도 미웠지만 그런 다윗을 사모하는 미갈이 더 미웠다. 


사울은 미갈을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속셈으로 이스라엘 제일 북단 라이스라는 마을의 이름도 없는 발디에게 시집 보내었다. 아무리 한 번 결혼한 여자라 할지라도 왕의 딸인데 이렇게 생각 없이 먼 곳으로 보내는 것은 뜻밖이다. 떠나버린 사랑 다윗을 잊지 못하고 멀리 국경 마을 라이스로 가는 미갈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였다.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아니 아직 십 대였을지도 모른다. 피지도 못한 꽃 미갈은 벌써 인생의 쓴맛이란 쓴맛은 다 본 사람처럼 눈동자엔 힘이 없었다. 누굴 만나 행복하게 살까? 누굴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온몸과 마음과 영혼까지 다 주었지만, 다윗은 미갈의 사랑을 애써 외면하였다. 원수의 딸이라서 그랬을까? 그랬다면 후일 미갈을 다시 찾아오지도 않았어야 한다. 다윗의 외면은 고의적인 방치였다. 사울에 대한 미움을 미갈에게 투사했던 것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 

순수한 사랑이 짓밟히고, 헌신과 봉사가 외면당하는 경험을 한 미갈은 스무 살도 채 안 되었지만, 마음은 육십을 넘어선 노인 같았다. 뛰지 않는 심장을 다시 뛰게 한 사람은 시골의 순박한 청년 ‘발디’였다.  삶을 포기한 듯한 미갈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아주었고, 사랑으로 품어주었다. 인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자기편이 되어준 사람을 만나지 못한 미갈에게 발디는 그녀의 편이 되어 주었다. 아비도 남편도 자신을 버렸지만 새로운 남편 발디는 그녀를 받아주었다. 결혼에 실패한 것을 탓하지 않았다. 그저 한없이 사랑하였다. 결혼해서 10년 넘게 아이를 낳지 못하는 미갈이었지만 그것마저도 싫다 하지 않았다.


여기서 잠깐 미갈의 나이를 생각해 보자.  미갈이 처음 다윗을 알고 만나게 되었을 때는 다윗이 골리앗을 죽여 유명해진 후였다. 그때 다윗의 나이는 18살 이하였다. 그보다 더 어렸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군대에 징집되지 않았고, 사울의 갑옷을 입을 수도 없을 만큼 작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갈의 나이도 다윗보다 적으면 적었지 많았을 리 없다.  


사울은 골리앗을 죽이면 자기 사위로 삼겠다고 공약하였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 포피를 베어와 사울의 사위가 되고 미갈을 부인으로 맞이한 것은 몇 살 때였을까? 성경에 정확히 나오지 않았지만, 대략 20살 내외였을 것이다. 신혼생활을 길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울은 떠오르는 인기 스타 다윗을 미워 죽이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신혼집에서 급히 도망친 다윗은 광야를 전전하다 블레셋으로 망명하였다. 


미갈이 몇 살 때 발디에게 보내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략 스무 살 내외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 후 세월은 흐르고 흘러 다윗이 다시 이스라엘의 왕이 될 때는 30살이었다(삼하 5:4). 그러나 아직 통일 왕국의 왕이 된 것은 아니고, 남쪽 유다를 칠 년 육 개월 동안 다스렸다. 그 후에야 이스라엘을 다시 통일하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다(삼하 5:5). 


그러니까 다윗이 미갈을 발디에게서 빼앗아 데려온 때는 대략 37살 때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미갈과 발디의 결혼생활은 대략 10~15년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때쯤 미갈의 나이도 30대 중반이었다. 당시 평균연령을 생각해보면 30대 중반은 할머니라고 할 수 있다. 이제와서...


미갈과 발디의 결혼 생활을 추측할 수 있는 말을 성경은 기록하였다.  

“다윗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전령들을 보내 이르되 내 처 미갈을 내게로 돌리라 그는 내가 전에 블레셋 사람의 포피 백 개로 나와 정혼한 자니라 하니 이스보셋이 사람을 보내 그의 남편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에게서 그를 빼앗아 오매 그의 남편이 그와 함께 오되 울며 바후림까지 따라왔더니 아브넬이 그에게 돌아가라 하매 돌아가니라”(삼하 3:14-16).


라이스에서 바후림(예루살렘 근처 마을)까지 거리는 대략 240km이다. 지금처럼 도로망이 잘 발달하지 않았기에 최소 일주일 이상 걸어와야 하는 거리다. 오는 내내 남편은 울었다. 남자의 울음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절대 권력 앞에서 저항할 수 없는 무력한 남편 발디의 울음은 어떠했을까? 지금까지 외면하던 다윗이 이제 와서 행복하게 잘 사는 가정을 깨트려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월터 브루그만은 이제 북쪽 이스라엘(10개 지파 반)과 남쪽 유다(1개 지파 반)를 통합하려는데 사울의 딸 미갈이 필요하였다고 추측한다. 북쪽 이스라엘의 지지를 받는 사울 집안의 딸을 데려다 자기가 사울의 사위였음을 공표함으로 통일 왕국의 왕으로 자격이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행위다(Brueggemann,340). 다윗은 처음 미갈과 결혼할 때도 다시 미갈을 데려올 때도 이런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난 그 이면에 다윗의 찌질함도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남심 탐구 여심탐구”를 쓴 이오타 다쓰나리는 자기 여자가 다른 남자와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에 남자는 패배감과 열등감을 느낀다고 하였다. “내 매력이 그 녀석보다 못한가 보네”하고 남자의 자존심이 처참히 무너진다(Tatsunari,92). 다윗은 상처 난 자존심, 패배감,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기를 떠난 여자(아니 자기가 버렸던 여자) 미갈을 더욱 미워하고 그녀에게 분노를 쏟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열왕기 저자는 철저하게 다윗의 편에 서서 미갈을 공격한다1). 많은 주석가들 역시 미갈을 공격한다. 이를테면 다윗을 도망치게 할 때 침대에 드라빔을 눕혀서 다윗이 병든 것처럼 꾸민 것을 두고, 미갈이 우상숭배하였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그건 미갈이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다윗이 비난받을 일이다. 왜냐하면 그 집은 명백히 다윗의 신혼집이었기 때문이다. 미갈이 사용했던 드라빔은 다윗만큼 컸기에 미갈이 숨겨놓고 혼자 우상숭배할 수 없었다. 따라서 드라빔은 최소한 다윗의 묵인 하에 다윗 집에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많은 주석학자는 다윗이 예루살렘에 법궤가 들어올 때 춤을 추다가 바지가 벗겨진 모습을 책망하는 미갈을 비난하였다(삼하6:20-24). 그러나 이 부분 역시 의견이 분분하지만, 열왕기 저자는 역시 다윗을 편들며 미갈을 정죄하였다. 미갈은 그 일로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미갈은 이미 발디와 결혼 생활을 10년 넘게 하면서도 아이가 없었다. 그러므로 다윗을 비난한 것 때문에 아이가 없었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다윗이 미갈과 잠자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2). 


다윗에게 버림받은 후 미갈은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발디를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정치적 목적으로 행복한 가정을 깨트리고 자신을 강제적으로 데려온 다윗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다윗을 향한 원망과 미움이 다윗의 춤출 때 그대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난 인간적인 면에서 미갈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미갈 이야기에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지 않으시고 지켜보고 계신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침묵하시거나 그림자처럼 숨어 계실 때 인생은 퍽퍽해진다. 미갈의 인생은 너무나 퍽퍽하였다. 


헨리 나우웬은 꼭 답이 없다할지라도 슬픔과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공감하는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난 미갈 이야기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공감 능력을 키웠으면 한다. 하나님은 아픈 자와 상처받은 자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에게 공감하시면서 그들을 이끌어주시는 분이시다.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는 공감자가 되기 위해선 그의 마음에 대해 ‘그’에게 물어야 한다. ... 그만이 아는 그의 마음에서 혼돈을 끝낼 그만의 길이 나온다. 당사자가 그것을 속속들이 느끼고 만질 수 있을 때까지 그의 손을 놓지 않는 것이 공감자의 일이고 그것이 치유다(정혜신,48%)."


1) 열왕기 저자는 미갈을 상황에 따라 '다윗의 아내'와 '사울의 딸'을 혼용하여 사용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사울의 딸'로 표현하므로서 다윗과 적대적인 관계임을 은연 중 암시하고 있다. 미갈의 호칭 부분을 연구하여 글을 써도 재미있는 글이 나올 듯 싶다. 

2) 젊은 여자를 좋아하는 다윗이 할머니가 된 미갈을 품고 자지 않았을 것이다. 다윗은 80 노인이 되어서도 처녀를 품고 잤다(왕상1:1-4). 


Nouwen Henri J.M., ‘영적 발돋움’(The Wounded Healer), 최원준 옮김, 서울 : 두란노, 1999년 

Brueggemann Walter, ’ 사무엘 상하’, 한미 공동 주석 편집 번역위원회 편, 서울 : 한국장로교출판사, 2000년

Iota Tatsunari, “남심 탐구 여심탐구’(Satsushinai Otoko, Setsumeishinai Onnna), 황소연 옮김, 서울 : 지식너머, 2016년 E-book

정혜신, ‘당신이 옳다’ E-book, 서울 : 해냄,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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