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처절한 인생을 살았던 재즈 보컬리스트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1915-1959)가 있다. 아버지는 16살 떠돌이 밴드 기타리스트였고 어머니는 13살 슬럼가 창녀였다. 아버지는 그녀를 버렸고 능력 없는 어머니는 아이를 외가에 맡겼다. 그곳에서 그녀는 학대를 받으며 성장하였고, 그녀의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백인에게 성폭력을 당했지만, 오히려 성폭력을 유도했다고 벌을 받아 감화원으로 보내졌다. 감화원에서 나온 15살 소녀 빌리 홀리데이는 슬럼가의 창녀가 되었다. 그녀는 매춘하다 경찰에 잡혀 다시 감옥으로 가게 되었다. 감옥에서 나온 뒤 백인 집 하녀 일을 하던 중 다시 대공황으로 일자리를 잃고 거리의 노숙자가 되었다. 오갈 데 없는 그녀는 나이트클럽 댄서가 되기 위하여 응모했지만, 그녀를 채용하는 곳은 없었다. 거지 같은 그녀를 눈여겨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이트클럽을 기웃거리던 그녀를 불쌍히 여긴 한 피아니스트가 한가한 시간에 그녀에게 노래나 한 번 불러보라고 하며 피아노를 쳐주었다. 그 순간 빌리 홀리데이는 아름답게 빛났다. 어수선한 나이트클럽은 정적에 휩싸였고, 흐느끼듯 부르는 그녀의 노래만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녀의 노래는 전 미국을 흔들었고, 흑인 여가수로는 최초로 밀리언셀러 앨범을 발매하였다. 재즈 평론가 존 부시는 “미국 팝 보컬의 예술을 영원히 바꾸어 놓은 여가수”라고 평하였다.
가수로는 성공하였지만, 그녀의 결혼생활은 최악이었다. 세 번 결혼한 그녀는 새로운 남자를 만날 때마다 더욱더 최악을 경험하였다. 첫 번째 남편 지미 먼로는 그녀에게 마약을 가르쳤고, 두 번째 남편 조 가이는 헤로인 공급책이었으며, 마지막 남편 루이 맥케이는 마피아 조직원이었다. 자기를 붙들어 줄 강한 남자를 찾았지만, 그녀는 참담한 결과를 맞이하였다. 그녀는 사랑을 갈구하였지만, 참다운 사랑을 만나지 못하였다.
그녀는 ‘Fine and mellow’에서 이렇게 노래하였다.
My man don’t love me. (내 남자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He treats me oh so mean. (그는 나를 매정하게 대해요.)
그녀에게 유일한 안식은 노래였고, 그 밖에 모든 것은 비참하였다. 술과 마약에 찌든 생활과 불행한 결혼 생활로 고통받던 그녀는 44살 나이에 간경화로 사망하였다. 사망 이후 그녀의 은행 통장에는 70센트만 있었다.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 'I’m a fool to want you'를 들으면서 나는 다윗의 첫 번째 부인 ‘미갈’을 떠올렸다. 구약 성경에 보면 남자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말이 가끔 나오지만,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고대 사회에서 여자는 인격체가 아니라 소유물이다. 가난한 아버지는 지참금을 받고 딸을 팔아넘기고, 부유한 아버지는 권력을 위하여 딸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였다. 그런 시대에 여자가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사울의 둘째 딸 미갈은 그런 시대 상황을 거부하였다. 여자도 자기 행복 추구권이 있고, 자기 의사 결정권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녀는 주체적으로 ‘다윗’을 사랑하였다(삼상 18:20,28). 블레셋의 골리앗과 싸워 이긴 다윗의 유대 최고의 인기 남이었다. 그러나 어느 여자도 사랑을 개인적으로 표현하지 못하였다. 오직 미갈만 자기 사랑을 정식으로 표현하였다.
사울은 아버지로서 딸의 마음이나 행복은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다윗을 제거하고 싶었던 사울은 둘째 딸 미갈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걸 정략적으로 이용하였다. 블레셋 남자의 포피를 100개 베어 오면 딸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삼상 18:21,25). 첫 번째 딸 메랍을 걸고 약속했지만, 응하지 않던 다윗이 둘째 딸 미갈을 걸었을 땐 응하였다. 짐작건대 메갈보다 미갈이 아름다웠던 듯하다.
아버지가 자신을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미갈의 사랑은 순수하고 헌신적이었다. 다윗을 죽이려고 체포령이 떨어졌을 때, 미갈은 온 힘을 다하여 저항하였다. 그녀의 오빠 요나단도 다윗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미갈만큼은 아니었다. 요나단은 그저 아버지 사울의 마음을 파악하여 다윗에게 정보를 알려주는 데 그쳤다. 그러나 미갈은 다윗을 창문 밖으로 피신시켰으며, 그가 병들어 침대에 누워 있는 것처럼 위장하였다. 세 번이나 찾아온 사울의 군대를 온갖 계략으로 물리쳐 다윗을 구하였다. 사울 왕의 분노로 보아 그것은 죽음을 무릅써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다윗은 미갈의 마음을 알고 사랑을 받아주었을까? 시골 베들레헴 마을의 목동 출신인 다윗은 사울 왕의 사위가 되어 정치적 입지를 굳히고 싶어 했다. 성경은 다윗이 미갈을 사랑했다고 기록하지 않았다. 다윗이 미갈을 정말 사랑했다면, 그가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할 때 미갈도 데려가야 했다. 미갈은 그의 조강지처가 아니었던가!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면서도 자기 가족은 철저하게 챙겼던 사람이다. 다윗은 두 번째 부인 아히노암, 세 번째 부인 아비가일을 언제나 데리고 다녔다. 블레셋으로 망명할 때도 그의 곁에 있었지만, 다윗은 첫 번째 부인 미갈은 찾지 않았다.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할 때 잠시 요나단을 만났지만, 미갈의 안부는 묻지 않았다. 그의 머리에 미갈은 존재하지 않았다.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 “My man don’t love me”는 곧 미갈의 노래였다. 자신을 찾지 않는 다윗을 미갈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나는 미갈이 다윗을 여전히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사울 왕을 피하여 이리저리 도망치면서도 다른 여자를 품에 안고 그 여자들을 데리고 다니는 다윗을 여전히 사모하고 기다리던 미갈의 모습을 어디에서 볼 수 있는가? 나는 아버지 사울 왕이 미갈을 라이스의 발디에게 주었다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라이스의 발디는 유명인이 아니었다. 딸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사울이 이름 없는 발디에게 주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건 다윗과 어떻게 해서든 떨어뜨리려는 생각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실 다윗은 사울의 딸 미갈을 사랑하지도 않았고 마음에 두지도 않았다. 떨어뜨리려고 했던 이유는 다윗 때문이 아니라 미갈 때문이었다. 미갈은 여전히 다윗을 잊지 못하고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미갈을 이스라엘 제일 북단 라이스로 보냈다는 사실이다. 라이스는 단 지파가 거주할 곳을 찾지 못하여 이스라엘 제일 북쪽에서 찾은 땅이었다. 사사기에 보면 라이스 백성은 염려 없이 거주하며 평온하게 살고 있었다(삿 18:7). 단 지파가 그곳에 쳐들어가 모조리 죽여버리고 그 땅을 차지하여 ‘단’이라 이름 하였다(삿 18:29). 사울은 가능한 한 미갈을 다윗에게서 멀리 떨어뜨리려고 이스라엘 제일 북쪽 라이스로 시집보낸 것이다.
그 후, 미갈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녀는 첫사랑 다윗을 잊지 못하고 계속 사랑하였을까?
그녀는 새로운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