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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생각하며

by Logos Brunch

“사람은 언젠가 마지막에 죽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들 자신은 우선 죽음과 관계없는 것처럼 존속한다.”(Man stirbt am Ende auch einmal, aber zunachst bleibt man selbst unbetroffen.) - 하이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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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세상의 가치관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세상의 지배하에 살아간다.

세상 사람이 내리는 평가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따라가기에 바쁘다.

세상에 지배당하면, 자기 존재를 잃어버리고 삶도 죽음도 잊어버린다.

죽음을 생각하기 싫어 죽음을 가능한 생의 가장 끝자리에 밀어놓는다.

그러나 고대인은 죽음을 언제나 가깝게 생각하였다.

태어나면서 죽는 아이도 많았다.

자기 생명의 연한을 다 채우지 못하고 죽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잠 5:9).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전 7:4).

지혜자는 삶과 죽음을 하나로 연결하여 생각했다.

죽음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오직 자신이 직면해야 할 가장 분명한 삶의 결정적 자리다.


죽음을 인식하는 사람만이 자기를 온전히 되찾을 수 있다.

죽음을 인식한다는 말은 자신의 존재를 직시한다는 뜻이다.

그는 단순히 죽음(삶의 종말)을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다.

죽음이 머리를 덮을 때, 객관적으로 자기 평가가 내려질 때를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인간은 존재하는 한, 더 나은 내일을 기다리는 존재다. 그는 단순히 죽음을 향한 존재가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희망하는 존재다”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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