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교회의 충돌

로이드존스 설교 새롭게 읽기

by Logos Brunch
로이드 존스의 설교집 [위기의 그리스도인] 제2장 '세상과 교회이 충돌'을 새롭게 읽은 것입니다. 로이드 존스가 처했던 상황과 초대교회의 상황과 오늘의 상황이 다르지만 받아야 할 교훈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 이글은 로고스 교회 신동수 목사의 글입니다.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고자 하더라.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행12:4-5)

https://www.youtube.com/watch?v=XMy2qOOaYEY&t=73s

사도행전 12장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주제는 ‘시련과 환난’입니다. 교회는 왜 박해를 받아야 할까요?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법을 준수하는 평화로운 시민이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헤롯 왕조나 로마 제국의 권력에 위협을 가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헤롯은 교회를 핍박하고,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가두었습니다.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교회는 왜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아야 할까요? 그 이유는 교회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충성하도록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권세자보다 더 높은 권세 곧 하나님이 계심을 믿습니다. 교회가 하나님께만 충성한다는 것을 세상의 지배자들은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교회가 세상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더욱 더 높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다는 사실이 싫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사탄은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을 먼저 공격하거나, 박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에 사탄은 상당히 못마땅했습니다. 예수님과 초대 교회가 핍박받은 이유는 같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교회가 하나님 편에 서 있다는 증거입니다. 교회가 하나님 말씀에 더욱 충실하게 살아갈수록 세상은 교회를 더욱 싫어합니다.


교회가 박해를 받을 때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회가 어려움에 부닥치면 세상과 싸워야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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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한 몸으로서 유기적인 연합체입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혀 고통받을 때, 온 교회가 그와 함께 고통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면 모든 그리스도인이 함께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사람의 신체로 비유했습니다. ‘나는 안전한 지역에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신다면, 잘못입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만날 수 없어도 우리는 한몸입니다. 교회는 베드로를 위하여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위하여 뜨겁게 기도해야 합니다. 함께 예배하지 못함에 대해, 세계적으로 모든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현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저 바깥 세계에서 고통받는 사람을 나와 한 몸으로 여겨야 합니다. 교회는 국제적이기보다는 초국가적입니다. 국경을 초월해서, 경계를 초월해서, 인종을 초월해서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그리스도인의 하나 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두번째로 교회가 세상과 싸워야 할 무기는 세상이 사용하는 무기와 같지 않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너무나 자주 세상이 사용하는 무기를 교회도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세상 권세와 타협하여 권력, 무력, 돈의 힘을 의지하려고 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을 의지해야 합니다. 마치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와 같이 교회에 필요한 무기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사울의 갑옷을 입고서는 싸울 수 없으며, 오직 자신에게 친숙하고, 또한 자신이 쉽게 쓸 수 있는 자신만의 무기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교회의 능력은 여호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교회의 생명력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교회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능력보다 세상 능력에 의지해 왔던 것이 아닌가 회개합니다.


현재 상황은 최악입니다. 헤롯은 교회를 향하여 칼을 들었습니다. 교회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앞날이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까지 예배당 문을 닫아야 할지, 흩어진 교인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현실만 보면 답답할 뿐입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을 보면 ‘희망의 실마리’가 보입니다. 헤롯은 베드로 한 명을 지키기 위하여 열여섯 명의 군사를 네 패로 나누어 지키게 하였습니다. 쇠사슬에 묶어 놓았고, 옥문 앞에는 파수꾼까지 배치했습니다.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 베드로가 정치적, 군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라면 이해가 됩니다. 베드로가 테러리스트라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단지 한 사람의 어부요, 교회는 군사적인 힘도 없습니다. 그런데 헤롯이 왜 이렇게 과민반응을 보일까요? 그건 사도행전 5장을 읽으면 알 수 있습니다. 그때도 베드로가 옥에 갇혔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옥에서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잊어버릴 수 있지만, 원수인 헤롯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베드로 뒤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민 반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헤롯만큼만이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한다면 우리는 더욱 큰 목소리로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해결해 주세요!”


두번째로 희망의 섬광은 5절에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빠져있지만,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는 헬라 원문 ‘데’를 번역하여 ‘but 그러나’가 쓰여있습니다. 희망은 바로 이것입니다. ‘베드로는 옥에 갇혔지만, 그러나 …’ ‘그러나’는 앞의 모든 핍박과 시련을 무력화시킵니다. ‘베드로는 옥에 갇혔지만, 그러나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순전히 세상의 눈으로, 상식의 눈으로, 육체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절망뿐이 가망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낙담과 절망을 뚫고 한 줄기 빛이 보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문제 가운데 계시고 그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면서 간절히 기도하는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그리스도인, 기도하는 교회는 희망의 섬광입니다. 교회가 하나님 편에 제대로 선다면 늦지 않았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이 상황은 얼마든지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교회가 답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엎드려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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