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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un 12. 2020

자유하게 하라

1992년 휘트니 휴스턴과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영화 보디가드가 개봉되었다.

휘트니 휴스턴이 누군지도 몰랐던 젊은 시절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았다.

감동에 휩싸인 둘은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흑인 여배우가 립싱크한 것이다. 아니다. 진짜다.

돌아와서 이리저리 조사해보고, 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남녀 배우 사이가 보기와 달리 너무 안 좋았다는 사실이다.

영화에서는 둘은 서로 사랑하여 키스하고, 자기 목숨을 던져가면서 상대방을 보호해주었는데.

영화 속 사랑은 완벽하였고, 깨끗하였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전혀.

카메라 조명이 꺼지는 순간 둘은 차갑게 돌아섰다.

28년 만에 케빈 코스트너는 고백하였다. 

보디가드의 포스터에 자신이 안고 있는 여배우는 휘트니 휴스턴이 아니라 다른 여성이었다고.

휘트니는 집으로 가버리고 하는 수 없이 대역을 썼다는 이야기다.

https://youtu.be/cjMm79rFhSQ

이건 영화 보디가드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어느새 이중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의사, 성직자, 변호사, 사회 복지사, 심리학자, 상담학자, 간호사 등, 남을 돕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마음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들의 실제 삶도 아름다울까?

그들의 개인적 세계는 치열한 갈등과 싸움으로 지쳐있고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사모는 목사님이 강대상에서 내려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강대상에서는 사랑과 은혜를 이야기하는 데, 가정에서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환대(hospitality)에 해당하는 네덜란드어는 ‘하스토레이하이트(gastorijheid)’이다. 

그건 손님의 자유라는 뜻이다. 

네덜란드에서 환대는 손님을 묶어 두지 않으면서 우애를 베풀고, 그들을 혼자 두지 않으면서도 자유를 주고자 하였다.

여기서 환대와 자유의 개념이 연결된다.


자녀를 부모 마음에 맞게 키우고 싶어서 틀 안에 가두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불행하게도 마음속 그 틀은 자녀에게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 마음의 틀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적용한다. 

목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교인들을 그 틀 속에 가두려고 한다.

그가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하나님 앞에 서도록 하지 않고 오직 내가 정한 틀 속에서만 움직이도록 강요한다. 그건 종교의 이름으로 누르는 억압이 될 수 있다. 

처음 기독교가 출발할 때는 굉장한 여유와 다양성과 포용성이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기독교는 속이 좁아져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교파와 교단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갈등하느니 차라리 헤어져 서로 얼굴 보지 말자는 뜻이다. 

나는 전통적 틀을 존중하지만, 그 틀 속에 얽매여 제한받는 것이 싫다.

내가 반항적으로 태어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나를 거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기꺼이 나 같은 반항적 사람도 사랑하시고 받아주신다.

자기 모습 그대로 솔직히 다가온다면 말이다.


환대는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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