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gos Brunch Aug 10. 2020

펜데믹 : 나를 돌아보는 기회

로이드존스 설교 새롭게 읽기 

요즘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팬데믹(Pandemic) 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으며 “Pan”이라는 "All" 의 뜻과 “Demos”의 "People"이라는 두 개의 단어가 합해져 “Pandemic”이 되었습니다.

펜데믹 은 "어떠한 것이 국경과 관계없이 전 세계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는 뜻입니다.

사실 의료시설과 의약품이 충분히 개발되지 못했던 과거에 전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확산하였다는 것은 이해할 만합니다.

그리고 오래전 이야기이니까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과학과 의학산업이 발달한 지금 펜데믹이 왔다는 사실은 충격입니다.

현재 지구 상에 펜데믹으로 영향받지 않는 나라가 거의 없습니다. 

국가의 모든 부분, 이를테면 경제, 정치, 교육, 종교 등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세상은 펜데믹 이후 어떻게 변하게 될지 미리 준비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그럼 그리스도인은 펜데믹에서 배울 점은 뭐고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펜데믹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해석이 있는가 하면, 펜데믹을 통해서 주변에 고통받는 사람을 돌보고 사랑해줄 때라고 해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펜데믹 상황을 어떻게 보든 저는 이번 기회에 우리 인생 전체, 우리 사회 전체를 다시 한번 점검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1.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선택을 하십니까?

온라인으로라도 예배를 드릴까 말까?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인데 내 마음을 모으고, 자세를 바로 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볼까?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데 내가 어떤 자세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예배를 드리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

예배 영상을 틀어놓고 운전하는 것도 예배가 아닐까? 영상을 시청하지 않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제가 온라인 예배에 국한하여 말했지만,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이 선택의 연속입니다.


생뚱맞지만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하나 드리겠습니다.

지옥엔 누가 갈까요?

죄를 지은 사람이 갈까요?

아닙니다. 틀렸습니다.

만일 죄를 지은 사람이 지옥에 간다면 우리는 모두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믿는다고요?

아니요 믿는 사람도 죄를 짓습니다.

저는 지옥은 지옥을 선택한 사람이 가는 거라고 믿습니다.


설마 지옥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예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길, 은혜의 길, 행복의 길을 선택하라고 수없는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선 아끼실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를 지고 죽게 하시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십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행16:31)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하나님은 우리에게 행복의 길을 알려주십니다.


주위를 둘러 보십시요.

수많은 교회가 있고 목사님이 있습니다.

유튜브를 보십시요. 얼마나 많은 교회에서 말씀 영상을 올리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지옥 가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교회 십자가를 볼 때마다 얼른 고개를 외면해야 합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설교 영상이나 기독교 영상이 올라오면 얼른 채널을 바꾸어야 합니다.

혹시나 복음 전도자가 전도지를 나누어 주면 빨리 쓰레기통에 버려야 합니다.

지옥가려면 엄청난 선택을 해야 합니다.


나는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거야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긴 들어도 그대로 따라 살진 않을거야

나는 세상의 방송은 듣고, 세상의 영화는 봐도 온라인 예배는 안 드릴꺼야


성경은 언제나 우리에게 두 갈래 길이 있다고 말해줍니다.

하나는 행복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불행의 길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길입니다.

천국과 지옥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풍성한 먹거리와 꺼지지 않는 불구덩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잘못 생각하신 것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곳이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곳입니다.

지옥은 하나님이 안 계시는 곳이고,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지옥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을 거절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물론 성경에서는 지옥에서 겪는 고통을 상징적으로 표현했습니다만, 결론은 하나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2. 인생은 삶의 종합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현재만 보지 말고 미래를 보라고 충고합니다.

삶을 단편적으로 보지 말고 종합적으로 전체적으로 보라고 충고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현재만 봅니다.

지금 내가 평안한가? 지금 내가 행복한가? 지금 내가 만족한가? 지금 내가 기쁜가?

그것으로 자기를 평가합니다.

그래서 그의 캐치 프레이지는 “노새 노새 젊어노새 늙어지면 못노나니” 입니다.

현재를 즐기자는 것입니다.

이걸 좀 더 고상하게 말하면 까르페 디엠(carpe diem)이지요.

고대 로마 시인인 호라티우스의 시 한 구절에서 따온 말로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를 통해서 잘 알려진 말이지요.

현재를 붙잡아라. 현재에 충실하라. 현재를 즐겨라.

여러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좀 달리 말합니다.

인생에서 현재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만큼 과거와 미래도 의미가 있습니다.

인생 전체를 종합적으로, 전체적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도 그렇게 보아야 합니다.

현재만 보지 말고, 과거와 미래를 보라는 말입니다.

삶은 출생하는 것이요 사는 것이요 또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평가하실 때 어느 한순간의 잘못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우리 삶 전체를 보고 평가하십니다.

얼마 전에 로고스 산책에서 자살하면 지옥 가나요?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저는 자살이 잘못이라는 점, 죄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삶의 마지막을 자살로 끝맺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고,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받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전 그리스도인도 때로 궁지에 몰릴 수 있고, 정신적 충격으로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도 때로 우울증에도 걸리고, 공화 장애도 걸립니다.

만일 그가 그런 정신적 문제로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면 지옥에 갈까요?

삶을 끝내는 마지막 순간에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가나요?

그 순간이 인생 전체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까요?

하나님은 순간을 보지 않고 우리 삶 전체를 본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순간의 행위를 보지 않고, 우리 삶 전체를 보시고 평가하십니다.


이걸 다른 말로 말하면 어느 한순간 내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라고 고백만 하면 천국에 가는 걸까요?

한순간이라 하니까 좀 과격한가요?

일 년에 서너 차례 교회에 다니고 헌금도 조금 하고, 봉사도 하면 천국에 가는 걸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믿겠다고 고백한 이후의 삶 전부를 보십니다.

말로만 믿노라 고백하고 실제로는 믿음의 삶을 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삶은 순간순간의 집합입니다.

순간이 우리의 영원을 결정짓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순간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삶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믿음의 삶을 사십시요.

펜데믹이 왔다고 흔들리지 마십시요.


3. 인생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누리십시요.

천국과 지옥이 선택인 것처럼 행복과 불행도 선택입니다.

행복은 로또가 당첨되는 것처럼 막혔던 문제가 풀어지고 해결되는 것으로 오지 않습니다.

로또 당첨된 사람 중에 행복한 결말을 짓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왜요?

행복은 상황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하나님을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귓전으로 듣고 무시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자기 영광, 자기만족을 위하여 살 뿐입니다.

그게 그들의 선택이고 그들의 즐거움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들의 중심 메시지는 “자기”입니다.


제가 한가지 예화를 말하면서 설교의 결론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20대의 꿈 많은 청년이 살았습니다.

그는 어느 날 심장마비에 걸려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습니다.

그는 좀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하나님께 이렇게 아뢰었습니다.

"하나님, 정말 너무 하십니다.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서 하필이면 저처럼 꿈이 많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젊은이를 이처럼 급하게 부르셨습니까?

게다가 하나님께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부르시면 제가 어떻게 준비를 하고 올 수가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항변을 들으시고 그에게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작정을 하셨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 저를 부르실 때는 제가 두말하지 않고 즉시 달려오겠습니다.

다만 저를 부르시기 전에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예고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제가 잘 준비하고 달려오도록 하겠습니다."

청년은 다시금 되살아났습니다.

그는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래서 성공했습니다.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결혼을 해서 아름다운 가정도 이루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도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손주도 여러 명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는 잠을 자는 가운데 다시금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는 또다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습니다.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지난번에 분명히 저를 부르시기 전에는 미리 예고해달라고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또다시 예고 없이 부르시면 제가 어떻게 준비를 합니까?"


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아니다, 나는 이미 너에게 여러 차례 예고를 주었다.

단지 네가 듣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자 그는 의아스러운 듯이 하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나님, 언제 저에게 예고하셨습니까?

제 기억으로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설명을 하셨습니다.

"그래, 너 한번 잘 생각을 해보아라.

너 나이 40세가 되면서 너의 몸이 예전과는 같지 않다고 느끼지 않았느냐?

네가 50줄에 접어들면서 눈이 침침해지고 어깨가 결리지 않았느냐?

그리고 네가 60줄에 접어들면서는 거울을 보면서 너 스스로 무엇이라고 말했느냐?

'나도 이제는 많이 늙었구나'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70줄에 접어들면서 네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 한 사람씩 두 사람씩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 네 스스로 무엇이라고 말했느냐?

'나도 이제는 갈 때가 되었나 보다!'

네가 네 입으로 갈 때가 가까웠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이만큼 너에게 예고를 해주었으면 되었지 무엇을 어떻게 더하란 말이냐?"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행복을 선택하고, 구원의 길을 선택하라고 충고하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선택하시렵니까?

행복을 선택하기를 소망합니다.


https://youtu.be/T2L_qv_C-g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