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존스 설교 새롭게 읽기
팔복의 마지막은 박해를 받는 자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 5:10)
그런데 말씀을 잘 보면, “박해를 받은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렇게 과거형으로 쓸 것이 아니라 현재형이나 현재 진행형으로 써야 맞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 왜 이미 박해를 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썼을까요?
혹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이미 수많은 종류의 박해를 경험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요?
로마의 식민지 백성으로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로마에 저항했습니다.
특별히 갈리리 지역의 저항이 제일 극렬했습니다.
저항이 크면 탄압도 큰 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수백 년 동안 나라를 빼앗기고 온갖 핍박과 박해를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들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요?
박해받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어떨까요?
패배의식, 절망감, 부정적 사고방식, 극단적 사고 방식 등이 있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그러한 사람들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박해받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천국의 문이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눈물과 아픔과 고통과 박해받음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위로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을 초청하여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 박해나 다 복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라”(벧전4:15)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 잘못 때문이 아니라 “의를 위하여”받는 박해일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천국의 복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의를 위하여 받는 박해란 무엇일까요?
그건 예수님을 닮기 때문에 받는 박해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 15:18~19)
바울도 디모데에게 말하였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딤후 3:12)
세상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거절하였습니다.
어둠은 빛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빛을 끌 수는 없습니다.
정말 어둠을 위한다면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Christian이라 불렸지요.
오늘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이 말을 사용합니다.
교회만 다녀도 크리스천이라고 합니다.
그가 예수님 닮은 삶을 사는 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성도 여러분
하루하루 예수님을 닮아가며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주님을 닮은 이유로 세상에 박해가 있다고 해도, 기뻐하고 또 기뻐하십시오.
가장 큰 천국 시민의 복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 모두 천국을 소유하는 놀라운 복이 있으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