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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Dec 08. 2020

예배는 답이 아닙니다.

요즘 펜데믹 상황에서 교회마다 논란이 있습니다.

어떤 환경과 상황이든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순교의 각오를 하고 모이기에 힘써야 한다.

예배는 일제치하에서도 6·25 전쟁 중에도 멈춘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요?


하나님께서는 예배라고 반드시 기뻐하시고 받아주실 것으로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의로운 제사가 아니라면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들을 역겨워하십니다.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외칩니다.

성전 문 닫을 자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중심을 더 원하십니다.

초대 교회가 성장한 요인은 결코 예배 때문이 아닙니다.

예배에 아름다운 성가대가 있어서도 아니고, 온갖 부대시설을 갖춘 화려한 예배당 때문도 아니고, 엄숙하고 경건한 예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처음 사도들이 전도할 때와 달리 기독교 핍박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교회는 외부인에게 개방하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 시대 소아시아에서 전해오는 문서에 따르면 집사는 교회 문 앞에서 불신자나 의심 가는 자가 오는 것을 경계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언제 로마 군인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의 예배는 비밀리에 진행하였습니다.

예배 장소도 자주 바꾸었고, 모임 시간도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점조직처럼 움직이면서 로마의 감시를 피하려고 했습니다.

시간을 맞추어서 예배를 드린다거나 공개적으로 드릴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오랫동안 예배를 드리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비밀 모임 때문에 불신자들은 기독교를 오해하여 온갖 안 좋은 소문을 퍼트렸습니다.

떡과 포도주를 먹는 성찬식을 오해해서 인육을 먹는다고 하였고, 신분을 구분하지 않고 서로 포옹하고, 입맞춤으로 인사한다고 해서 음란한 행위를 하는 집단이라고 오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은 결코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배는 성장의 걸림돌처럼 보일 때도 많았습니다..


초대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믿는 성도들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들은 입으로 전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삶으로 전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난을 대하는 태도, 환경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리스도인의 남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한마디로 입으로 고백하는 믿음이 아니라 삶으로 고백하는 믿음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불신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가졌습니다.

초대 교회 전도의 대부분은 불신자들과 가진 우정의 관계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불신자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죄를 범한다고 해서 손가락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사랑하였고, 그들이 어려운 처지에 빠지면 기꺼이 나서서 도와주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상부상조를 실천하면 궁핍한 사람을 돕는 공동 기금을 운영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리스도인 가족 하나가 굶주림에 처하면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모두 며칠간 금식을 하며 그 가족에게 필요한 음식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교인이 죽으면 격식을 갖춘 장례를 무료로 제공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들의 공동체는 말과 혀로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였습니다.


로마시대 서기 165~166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로마로 안토니우스 역병이 퍼졌습니다.

이 역병이 정확히 어떤 병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창 병이 유행할 때는 하루 2,000명씩 죽었다고 합니다.

당시 로마 제국 전체의 인구가 5,000만 명이라고 가정할 때 천만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치료 약도 없고 병에 걸렸다 하면 모두 죽는 상황에서 돈 많은 귀족은 사람이 없는 한적한 별장으로 피신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환자들을 찾아다니며 물과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들을 간호하고 돌본 그리스도인의 헌신은 불신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조롱하고 비웃던 기독교의 참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사회적인 혼란과 억압, 기득권층과 가난한 자들의 빈부 격차, 삶의 가치를 손상시키는 이방 종교의 사상이 범람하는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올바른 삶의 길을 제시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따르는 자로서 예수 닮은 삶을 살았습니다.


초대교부요 순교자인 저스틴(Justin Martyr)은 이런 기록을 남겼다.

“전에는 부와 재산을 늘리는 일에 큰 기쁨을 느꼈던 우리가 이제는 가진 것을 공동 기금으로 모으고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전에는 서로 증오하고 죽이며, 다른 족속의 사람과는 풍습이 다르다고 절대로 상종도 하지 않았던 우리가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내 보이신 후, 그분의 공정하신 명령을 따라 함께 살면서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고 이방인들도 우리처럼 그리스도께서 주신 좋은 소망을 함께 나누기 위함입니다.”


4세기 초 ‘히폴리투스 정전’(Canons of Hippolytus)에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자신들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따라 하고 그들도 결국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빛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는 것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초대교회는 형식으로 드리는 예배보다 삶으로 드리는 예배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불신자들에게까지 매력을 나타냈다.

종교라는 틀에 갇힌 신앙생활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정한 장소에서 시간에 맞추어 예배를 드리는 것은 매력적이지 못하다.

예배당을 화려하게 꾸미고, 편리 시설을 잘 갖추는 것은 기독교의 매력 포인트는 결코 아니다.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새로운 삶, 건강한 삶, 행복한 삶을 삶으로써 불신자들에게 복음이 진정 힘이 있고 매력적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초대교회는 말씀대로 삶으로써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실제로 보여주었으며,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하셔서 삶의 능력을 온전히 나타내셨다.

말씀을 살아내는 힘과 능력이 초대교회에 있었다.

말 따로 현실 따로, 종교 따로 일상 따로, 따로따로 국밥식 기독교는 아무런 힘이 없다.


https://www.youtube.com/watch?v=yKWvY3_wtiQ&t=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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