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313년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인정하는 순간 상황은 바뀌었다.
그동안 박해받던 기독교는, 이제는 지배하는 종교가 되었다.
위치가 바뀌자 복음 전파 전략도 바뀌었다.
전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본받아 죽는 자리에 가더라도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을 실천하였다.
로마에 저항하거나 데모하는 일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불신자들을 향해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행동은 있을 수도 없었다.
당시 기독교는 철저하게 약자의 종교였고, 소외된 자의 종교였다.
밟으면 밟혀야 하고, 죽이면 죽어야 했다.
초대교인들은 예수 믿는다는 한 가지 이유로 직업과 가족과 고향을 잃었다.
소수의 그리스도인은 서로 만나면 반갑게 환대하였다.
서로의 약함과 억울함과 고통을 알았기에 격려하고 위로하였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약한 자들, 억울한 자들, 소외된 자들을 적극 품어 안았다.
그들은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진리를 믿었고 실천하였다.
십자가 사랑을 실천하는 초대 교인들은 약한 자 같았으나 오히려 강한 자들이었다.
칼과 창으로 무장한 로마 군대는 두렵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의 조롱과 핍박도 무섭지 않았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진리를 따라 사는 것에 생명을 걸었다.
차별 받고 소외당하더라도 그들은 십자가 사랑을 실천하였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려고 노력하였다.
사실 세상은 미련하여 어둠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그들은 놀랍게도 매우 영적이다.
그들은 참된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기에 복음의 진리를 박멸하려고 온 힘을 다했다.
체포, 고문, 회유, 협박, 죽음, 조롱, 차별, 소외 등
그들은 동원 가능한 모든 것으로 위협했지만, 복음의 능력의 무장한 초대교인들을 없앨 수 없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그리스도인은 이제 숨을 필요가 없었다.
생명의 위협이 사라졌다.
오히려 돈과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세상은 자발적으로 교회에 나와 무릎 꿇었다.
여기서 교회는 착각하였다.
‘드디어 세상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구나! 할렐루야!’
그러나 세상이 무릎 꿇는 이유는 오직 한가지뿐이다.
세상은 언제나 돈의 논리, 힘의 논리로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님 때문에 무릎 꿇은 것이 아니라 황제 때문에 무릎 꿇은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나 진리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오직 황제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으로 교회에 나왔다.
그것이 출세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권세 잡은 자들을 만나 교제하고, 사업가들을 만나 이득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약한 자들이 모이는 곳에서 기득권자들, 힘 있는 자들의 모임으로 탈바꿈하였다.
자연히 교회마다 크고 웅장한 건물을 건축하였다.
세속의 로마가 신전을 짓고 원형 경기장을 짓듯이 교회를 지었다.
기독교인들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기고만장하였다.
세상에 나아가 당당히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쳤다.
예수 안 믿는 자들을 강제로라도 개종시키기 위하여 전쟁까지도 벌였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미워하였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정죄하였다.
사랑을 실천하던 십자가의 복음은 승리자, 정복자, 심판자의 논리로 바뀌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복 받고 성공하여 모든 사람 위에 설 수 있다고 가르쳤다.
약한 자들 곁에 서고, 소외당하는 자들과 함께 울어주던 기독교가, 이제는 세상이 그렇게도 소망하는 돈과 권력과 명예를 얻는 수단으로 바뀌었다.
기독교가 참된 복음을 되찾으려면 힘의 논리, 세상의 논리를 버려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이 ‘오직 성경으로’를 외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세상의 논리를 버리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종교개혁자들은 고향에서 쫓겨나고, 수배자가 되고, 죽임을 당하였다.
그들은 초대교인들처럼 환난과 핍박을 받았고, 지독한 가난으로 고통 당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세상 권력이나 물질의 풍요에 현혹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들은 머리로만 아는 진리가 아니라 삶으로 실천하는 진리를 추구하였다.
현재 한국 교회는 기득권자의 편에 서 있는가?
아니면 악한 자들과 함께 울고 있는가?
지금 하나님께선 한국 교회를 강제로 무릎 꿇리고 계신다.
하나님은 한국 교회를 거칠고 메마른 광야로 이끄신다.
화려하고 거대한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광야에 계신 하나님을 발견할 때, 한국 교회에 소망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qryf4_eiIk&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