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몇 살이세요?”
주일, 점심시간이면, 늘 내 옆에서 밥을 먹는 지아가 물었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지아는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지아는 프라이버시가 뭔지 모른다.
갑자기 내 나이가 궁금해졌나 보다.
정직하게 말할까?
잠시 고민하는 데 맞은편에 있는 이 목사가 물었다.
30대 젊은 이 목사는 나와 독서모임을 3년째 하고 있다.
“목사님 몇 학번이세요?”
역시 나이를 묻는 것보다 띠를 묻거나 학번을 묻는 게 예의다.
“78학번이지요"
순식간에 계산을 끝낸 이 목사는 지아에게 말하였다.
“지아야! 목사님이 대학에 들어갈 때, 너의 아빠는 태어나지도 않았단다.”
“꺅. 목사님 그렇게 나이가 많아요?”
"그렇구나. 어느새 나이가 들었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만큼 뒤따라 오던 세월이 휙 하고 지나가더니 요즘은 저 앞서 달려간다.
이제 살아온 나이보다 살아갈 나이가 훨씬 적다는 건 분명하다.
하루하루 뚜벅뚜벅 죽음의 문턱을 향해 걸어간다.
조금씩 내려놓으면서, 결국은 모든 것을 내려놓을, 그 길을 걸어간다.
전에는 의욕도 있었고, 힘도 있었고, 능력도 있었다.
찾아오는 사람에게 언제든 식사 대접할 정도는 되었다.
이제는 대접하기보다 대접받는 일이 훨씬 많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커피를 로스팅하고, 찾아오는 사람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 대접하는 게 전부다.
그거라도 할 힘이 있으니 다행이다.
전에는 삶에 계획도 많았다.
이제는 계획 따윈 없다.
그냥 살아갈 뿐이다.
프랑스의 작가 크리스티안 생제르(Christiane Singer, 1943~2007)는 64세 나이에 암으로 사망하였다.
6개월 시한부 선언을 받던 날, 그녀는 일기를 썼다.
‘살 것이 있다면 살아야지.
지나가자, 의연하게, 지나가자.
질병은 내 안에 있지만, 내가 할 일은 질병 속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그대 참 눈부시다’, ‘우리 모두는 시간의 여행자이다’, 결혼 약속 그 모든 미친 짓들에 대한 예찬’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그녀는 아름다운 노년을 꿈꾸었다.
늙는다는 건 그녀에게 축복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였다.
나는 아직 그녀만큼 늙지 않았다.
나는 노년의 축복을 누리고 싶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노년의 축복을 누리고 싶다.
인생에 나의 삶 전부를 맡기고, 주어진 하루하루를 선물처럼 살고 싶다.
그동안 살면서 얽혔던 악연은 모두 다 내려놓고,
가슴을 토닥이면서 자신과 화해하고,
놀란 눈 크게 뜨고 감탄하면서 살고 싶다.
'살라고 하면 살아야지. 감사하면서.
모든 날은 하나님의 선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