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지만, 여전히 감기 몸살기와 두통과 설사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 하루종일 델리에서 찬디가르로 이동해야 하는데 벌써 걱정이었다.
한국의 포니같이 작은 택시 안에 짐을 한가득 싣고 병든 몸을 쑤셔 넣었다.
달리는 내내 기사는 인도의 전통 음악만 틀어놓는데 이젠 인도 음악, 인도 향, 인도 소리가 다 싫어졌다.
몸이 아프니까 만사가 귀찮아졌다.
'내가 인도에 왜 와서 이런 생고생을 해야 하나?'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중간에 KFC에 들려 버거세트를 먹고서 따뜻한 햇볕을 찾아 쭈그리고 앉았다.
인도에서는 햇볕을 쬔다는 말을 하지 않고 햇볕을 먹는다는 말을 한다는데 그 말이 정말 맞는 말이었다.
일교차가 무려 20도 차이가 나니 사람들은 해가 뜨기만을 기다려서 일제히 햇볕을 먹으러 밖으로 나간다.
한참 정오의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니 컨디션이 조금 좋아지는 듯하였다.
다시 차로 이동하는데 얼마 가지 못해서 담이 겨드랑이 쪽에 생기는데 저절로 '아' 하는 신음이 나올 정도였다.
움직일 수도 없는 비좁은 작은 차 안에 꾸구리고 앉아 있으니 담이 들만도 하였다.
몸을 어떻게 해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데 정말 차에서 뛰쳐 내리고 싶을 정도였다.
다행히 뒤에 앉은 강집사가 어렵게 손을 뻗어서 아픈 부분을 만져주는데 겨우 통증이 가라앉았다.
찬디가르에 도착하는 동안 내내 아픈 몸으로 고통 가운데 싸우고 나니까 완전히 탈진하였다.
찬디가르에서는 그날 저녁 인도 - 한국 크리스천 공동체가 그동안 공들여 준비한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차 안에서 공연이 끝날 때까지 누워있었다.
마침내 공연이 끝나고 우리는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하여 찬디가르에서 제법 유명한 레스토랑 Nudle Bar에 갔다.
인도 음식의 한가지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매우 짜다는 것이다.
인도인들은 어디에는 소금을 하얗게 뿌려서 먹는 버릇이 있다
더운 나라이기에 그럴 거라고 추측은 하였지만, 그 정도가 아주 심했다.
종업원에게 소금을 조금만 넣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러나 나온 음식마다 넘쳐나는 소금으로 짜서 먹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레몬 소다 안에도 소금을 넣어서 다시 종업원을 불러서 항의하고 몇몇 음식과 레몬 소다는 바꾸어달라고 했다.
종업원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병들고 지친 나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우리에게 숙소를 제공해 주신 분은 YWAM 선교사 케어를 위하여 이곳에 오신 이수길 맹광숙 가정이었다.
은퇴하신 후 선교사들을 섬기기 위하여 인도까지 오신 평신도 선교사였다.
마치 큰 형님, 큰 누님같이 자상하게 우리를 살펴주시면서 감기약, 항생제, 정로환, 두통약을 챙겨주고 전기 장판까지 다 준비해 놓으셨다.
마치 한국에 돌아온 것처럼 푸근함 속에서 병든 몸을 뉘었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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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라나시에서 첫 날
1. 인도를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