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제도의 선각자로 불리는 눌시아의 베네딕트가 있다.
눌시아의 베네딕트(Benedict of Nursia, 480-550)가 살았던 시대는 기독교가 로마로부터 공인받은 후 점점 세속화의 길을 걸어갈 때였다.
로마의 귀족으로 태어난 베네딕트는 로마 사회에서 벌어지는 가지각색의 신성 모독과 종교적인 부도덕에 염증을 느끼고 사막 교부들의 전통을 따라 수도생활에 들어갔다.
그는 협곡의 동굴에 들어가 은둔하였다.
가족과 사회를 떠나 세상적인 것을 보지 않고 무조건 피해버리면, 마귀의 시험도 따라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깊은 동굴에 들어가서 거치른 털옷을 입고 동료 수도사가 내려주는 소량의 음식으로 끼니를 떼우며 기도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기(Visio Dei) 시작했다.
마귀의 시험에서 벗어나고자 나쁜 생각이 들 때마다 자기 몸을 가시나무 같은 것으로 때리면서 고행의 삶을 살았다.
3년의 고행 끝에 내린 결론은 사람이 세상 어디를 가든 마귀의 시험은 항상 따라다닌다는 사실이었다.
베네딕트의 엄격한 고행주의적 생활은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았다.
그를 따르는 무리가 생겨나고 그는 본의 아니게 수도원 운동의 리더가 된다.
그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나름대로 기독교의 개혁을 위하여 몸부림쳤다.
그가 몸부림치면서 만들어낸 규범과 묵상훈련은 당대에 놀라운 부흥과 각성을 가져왔다.
그러나 수도원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후대에는 다시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
역사학자 액턴(J.E. Acton, 1834~1902)은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을 했다.
종교는 어떤 면에서 권력과도 같다.
따라서 늘 깨어 자신을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는다면, 종교 역시 부패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베네딕트처럼 우리도 이 시대의 아들이다.
이 시대에 주어진 문제점들을 가지고 베네딕트처럼 치열한 고민과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다.
그래야 기독교가 바로 서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