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어른이 '어떤 어른'을 고민하는세상

김소영. 『어떤 어른』. 사계절(2024)

by 로시
우리 학교 어린이가 준 빵, 쿠키와 함께


<어린이라는 세계>가 나온 지 4년만에 김소영 작가는 <어떤 어른>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어린이에 대한 이야기를 어른으로, 어른에 대한 이야기를 어린이로 풀며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사는 세상이 왜 필요한지, 그러기 위해 어른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다정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넨다. 개인적으로 에세이 특히 예전의 수필이라고 불릴 법한 개인의 경험을 쓴 글들은 소설이나 중수필에 비해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김소영 작가님의 글은 무척 좋아한다. 이번이 내가 읽은 김소영 작가의 두 번째 책이지만 시작부터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문장과 길거리를 가면서도 책을 읽게 만드는 잔잔바리의 유머 감각들이 좋다.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도, 작은 다정함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 거라는 희망을 갖는 것도 모두 따뜻한 용기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알기에 김소영 작가의 글을 무척 좋아한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글쓰기 교실의 아이들이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좋다. 나도 학교에서 그보다는 조금 더 큰 아이들을 만나고 있지만 그 아이들의 매력을 작가님만큼 발견하진 못한다. 워낙에 낯을 가리고, 일대 다로 사람을 상대하는 게 어렵고, 바쁜 업무에 치여 아이들 하나하나를 들여다보지 못해서인 것 같다. (지금도 카페 밖에 우리 아이들이 지나가지만 몰래 훔쳐보기만 한다) 아이들이 안전하고 편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나에게 속상함과 아쉬움이 불쑥 불쑥 튀어나와 괴로울 때가 많다. 작가님의 글처럼, 작가님처럼 조금 더 말랑하고 포근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작가님의 글을 가까이 하게 한다. 어린이들에게 더 다정해지고 싶다는 마음,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첫 걸음은 내딛은 거라고 위로하며 책장을 넘긴다.



문화 예술의 공공교육을 생각할 때 내가 기대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어린이 세대와 다른 세대의 교류다. 우리는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의 감각과 표현을 배우기도 할 것이다. 신선함에 즐거울 때도 있고 낯설어 놀랄 때도, 심지어 걱정스러울 때도 있겠지만, 동료시민인 어린이의 세계를 만나고 싶다. 언어뿐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면서 우리의 세계는 더 다채로워질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문화 예술 교육은 결국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85쪽)

가장 만만한 게 키즈카페랬다. 아이들이 놀 것도 많고, 안전요원들이 있어 걱정을 덜고, 에어컨과 히터가 나와 날씨에 구애받지 않으며, 무엇보다 어린이들의 전용 공간인 만큼 눈치보지 않고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아이들을 위한 왕국 '키즈 카페'. 우리 때는 키즈 카페같은 건 없었는데, 20여년 전 나의 노는 곳은 어디였지?


우리 때도 어린이들이 자주 가는 공간들이 있었다. 놀이터, 학교 운동장, 한낮의 노래방, PC방, 분식집, 문방구, 옆집이나 아랫집 친구네 등등... 우리가 노는 곳은 대부분 부모가 함께 하지 않았다. 오고 가는 길도 부모님 없이 거리를 다녔으며, 누구나 지나가며 볼 수 있는 실외에 위치해있거나 낯선 어른들도 함께 이용하는 곳이어서 때론 도움과 꾸중을 얻기도 하는 곳들이었다. 우리는 그런 곳들에서 우리만의 자리와 놀이를 만들었다. 친했던 친구와 싸우면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울고 속상해하며 그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은 내가 겪는 많은 것들을 알지 못했지만 나는 나의 세상을 조금씩 넓혀갔다.


어린이를 위한 시설과 교육, 행사 등은 늘어나고 있지만 어쩐지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어린이들을 더 마주칠 수 없게 됐다. 저출산만이 그 원인일 수는 없다. 아이들은 학원 거리 근처에 가장 많고, 부모님이나 학원 차를 타고 오고가며 가장 안전한 보호자의 반경 안에서 활동한다. 전을 위한 그 모든 것들은 (비보호자) 어른의 세계와 어린이의 세계를 철저히 분리한다. 심리적 거리와 공간의 분리는 시너지 효과를 내며 착실하게 어린이를 어른의 세계에서 배제하게 하거나 어린이를 무조건적인 보호 혹은 배려의 대상으로만 만드는 것이다. 집, 학교, 학원, 보호자의 범위 안에서만 머무르는 아이들을 비보호자에 해당하는 어른들이 만날 일도 적을 뿐더러 만나더라도 소통으로 이어지는 데엔 한계가 있다. 안전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닌데, 어쩐지 안전이 너무 많은 것들을 제한하고 있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저는 어린이가 다양한 선생님을 만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경력은 적지만 친근한 선생님, 연륜이 있어서 너그러운 선생님, 연륜이 있고 엄격한 선생님. 학년에 따라 학교 사정에 따라 여러 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어린이에게 주어지는 기회니까요. 조금은 냉정한 선생님, 노래를 못하는 선생님, 덤벙대는 선생님, 아픈 선생님, 피부색이 다르거나 장애가 있거나, 둘 다인 선생님도 만나면 좋겠습니다. 어린이는 선생님을 통해 삶의 여러 모습과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 아닐까요?" (161쪽)

어린이는 어른을 보며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배운다. 어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청사진처럼 어린이들에게 남아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 전에 흡수하여 자기도 모르게 따라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어떤 교사가 좋은 교사일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멋지게 휘어잡아 인기를 얻으며 존경받는 선생님들을 보며 나와 다른 점들을 비교하고 좌절하기 일쑤였다. 지금 이대로는 평생 좋은 교사가 되지 못한 채 언제나 후회와 좌절만을 반복할 것 같았다.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교사상에 나는 절대 맞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소영 작가는 어린이들이 다양한 선생님, 다양한 어른을 만나는 게 좋다고 얘기한다. 아이들 역시 저마다 다양한 성격과 상황,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삶에 주어지는 다양한 모습들을 어른을 통해 알고 자기 자신도 비추어볼 수 있다고. 어쩌면 나도 내가 가진 모습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을 소중히 여기며 아이들에게 전하려 하다보면 삶의 다양한 모습 중 하나를 어린이들에게 전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나다움을 보여주는 것, 그래서 더 보여주고 싶은 나다움을 찾아가는 것, 그게 바로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해야 할 역할이자 어린이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삶의 동기이고 행복인 것이다. 누군가 나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고 한다면 조금 더 멋지게 살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을까.



말장난 같지만 마음이 자란다는 것은 전 단계의 마음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동심원을 그리는 것이다. 어린이의 마음을 가장 안쪽에 두고, 차차 큰 원을 그려가는 것. 정확히 말하면 원은 아닐 수도 있다. 나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면 어느 부분은 푹 꺼지고 어느 부분은 부풀어 올라 모양이 좀 이상한 도형이 되어 있다. 어린 시절 중에는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골짜기들도 있다. 어느 부분은 제대로 자라지 못했지만 나중에 열심히 메워서 꽤 괜찮은 모양으로 만들기도 했다. 어쨌거나 나라는 사람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어린이의 마음이 있다. 내내 그 마음만 들여다보고 살아도 곤란하지만 결코 잊으면 안 된다. 내 삶은 단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93쪽)

심리 상담을 받아본 어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내 삶은 단절되지 않았고, 어린 시절의 애착 형성과 사건, 상처, 감정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지금의 나에게로 오기까지를 거슬러 가다보면 결국 마주하게 될 수 밖에 없는 나의 원형. 그런데 이미 나는 어른이 되어서, 어른으로서의 삶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안팎으로 요구당하며 이미 지나버린 어린 시절의 나를 위로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상담을 받으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또 하나의 방법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 건네고 싶은 다정함을 다른 어린이에게 건네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랑을 건넴으로써 내 마음 안에도 사랑이 있음을 깨닫고, 내 안에서 그 사랑이 자연스럽게 번져 나가기를 바라보는 것이다. 나를 가장 사랑하게 되는 순간은 누군가에게 다정하게 사랑을 건넬 수 있는 나를 발견할 때임을 그간의 경험이 말해 주기 때문이다.



세상에 벌어지는 모든 사건 사고 하나하나에 책임을 묻고 벌을 주며 법령과 규정을 무책임하게 늘려가는 지금의 세상은 개인들이 설 자리를 무자비하게 좁히며 서로를 멀어지게 한다. 부정하고 부패한 것들, 안일하게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때우는 태도도 문제지만 사회적으로 지켜야 할 가치를 논의하고 공유하는 장을 늘리는 것이 아닌 모든 개인에게 책임 소재를 찾고 만드는 분위기도 문제가 된다. 참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이를 고민하는 이들의 마음은 아름답고 소중하다.


그렇기에 모든 어른들이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했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경험시켜주고 싶었던 어른이 되길 바라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지금의 내가 아닌 될 수 있는, 혹은 될 수 없는 나까지 상상하며(영화 '에에올'처럼) 내가 사는 세상이 어떤 모습이면 좋을지 고민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가 다 다른 어른이 되어 어린이들에게 이렇게나 많고 다양한 어른들이 너희들을 응원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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