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린 시아마의 영화 <쁘띠 마망(2021)>
외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엄마('마리옹'), 아빠와 함께 시골집에 내려온 넬리.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혼자 떠나버린 마리옹으로 인해 아빠와 둘이 남겨진 넬리는 혼자 패들볼을 갖고 놀던 중 또래 여자아이 '마리옹'을 만나게 된다. '마리옹'의 오두막 짓기를 도와주며 친해진 넬리는 마리옹의 집에 놀러가기도 하며 우정을 쌓는다.
마리옹의 집에 놀러간 넬리는 자신이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온 시골집과 같은 집에 위화감을 느끼며 마리옹이 자신의 엄마의 어린시절임을 눈치챈다. 마리옹의 엄마, 즉 젊은 시절의 외할머니도 만나 함께 친밀감을 쌓고 지내던 중 마리옹이 유전으로 인한 수술을 앞두고 있고, 이 만남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게 된다.
나 비밀이 있어.
내 비밀이면서, 네 비밀이기도 해.
영화 극 초반부, 카메라는 운전하는 마리옹의 모습을 비춘다. 뒷자석에 앉아 '간식시간이지?' 허락을 받고 과자를 뜯은 넬리는 더이상 화면에 나오지 않는다. 앞만 보고 운전하는 마리옹의 얼굴 옆으로 넬리의 손이 불쑥 나온다. 과자를 한 개씩 먹여준다. 서너 개쯤 쉴 새 없이 받아먹으니 목이 마를까 빨대 꽂은 주스까지 먹여준다. 마리옹은 그런 넬리가 사랑스러워 웃음을 터트린다.
이 평화롭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모녀의 모습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서야 기억 속에서 위화감으로 다시 자리하게 된다. 넬리는 예의바른 아이다. 처음 겪는 일, 허락을 구해야 하는 일들은 놓치지 않고 어른에게 물어보고 행동한다. 그런 넬리가 불쑥 과자를 내밀 수 있었던 것은 이미 마리옹에게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간식을 나눠준 일이 이전에도 수차례 있었으며 마리옹이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넬리는 자신이 먹는 것보다 엄마인 마리옹을 더 살뜰하게 챙긴다. 그 나이대 아이가 익숙하게 할 법한 행동은 아니다.
넬리는 밤에 침대에 누워 마리옹에게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왜 항상 자는 시간이 늦어지는 이 때 질문을 하는 것이냐고 묻는 마리옹에게 넬리는 이 때 물어봐야 엄마랑 오래 이야기할 수 있다고 당연한 걸 묻냐는 듯 답한다. 엄마의 관심과 애정을 확인하면서 엄마의 말을 궁금해하는 넬리의 태도는 반대로 책을 읽어줄까 하는 아빠에게 내일 일찍 자야하기 때문에 다음에 읽어달라는 장면과 대비된다.
죽은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마리옹은 보이는 부분만 칠해 가구를 들어내자 우습게 다른 벽지를 빼꼼 내미는 집에서, 어릴 적 썼던 글과 그림을 어머니가 모두 보관해놓은 집에서, 소파에 홀로 누워있다 밤에 목이 말라 나온 넬리를 안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바로 그 집에서 떠난다. 독자는 당황스럽다. 어떠한 전조도, 말도, 장면도 없이 아침에 홀로 눈을 뜬 넬리가 그랬듯 "엄마는 떠났다"는 아빠의 말을 듣고 엄마가 떠났다는 사실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어디로 갔다, 언제 오겠다는 말 하나 없이 떠난 마리옹을 말하는 아빠나 듣는 넬리나 너무 담담하다. 시무룩하면서도 '어쩔 수 없지' 라는 표정으로 체념해버리는 넬리의 모습이 독자는 낯설게 느껴진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사라진 일이 고작 체념 한 번으로 끝날 일은 아닐 텐데.
엄마 '마리옹'이 떠난 직후 뒤뜰에서 혼자 놀던 넬리는 숲 속에서 큰 나뭇가지를 낑낑대며 옮기는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아이는 숲 속에 자신만의 오두막을 만들고 있었는데, 자신의 이름을 '마리옹'이라고 소개한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넬리는 금세 마리옹과 친해지며 마리옹의 집에 놀러간다. 그런데 마리옹의 집은 위치도, 구조도 자신의 외할머니의 집과 똑같다. 다리를 절어 지팡이를 사용하는 외할머니와 똑같은 마리옹의 엄마를 마주하자 넬리는 확신하게 된다. 이 '마리옹'이 자신의 엄마인 '마리옹'의 어린 시절임을.
넬리는 마리옹과 시간을 보내며 그 나이대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웃음과 우정을 주고받는다. 수술을 앞둔 마리옹의 두려움을,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확신으로 위로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아빠가 있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기도 한다. 그리고 드디어 병원으로 떠나는 마리옹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자 엄마 '마리옹'이 다시 돌아와 모녀가 얼굴을 맞대고 서로를 환대하는 장면에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모임에서 모임장님은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비판하는 관점에서 설명해주셨다. 공감되고 납득이 가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에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두려웠다. 아이가 아이답지 않은 모습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를 돌보는 기쁨을 알게 될까봐. 그게 제 행복인 줄 알까봐 두려웠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찬란하고 아름다운 어머니와의 재회에서의 넬리의 미소가 나는 가슴 아팠다. 물론 모든 모녀 관계가 이상적일 수도, 완벽할 수도, 그런 게 삶이 아닌 걸 알면서도 나는 넬리 앞에 놓여진 날들의 긴 한숨과 눈물들이 보이는 것 같아 힘들었다.
영화의 모든 장면을 하나하나 뜯기에는 너무도 많은 미묘한 부분에서 이런 점들이 보인다. 『딸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라는 책도 나올 만큼 모녀 관계의 복잡한 얽힘에 대해 이미 많은 이론과 책들이 나온 만큼 영화의 흡입력과 아름다운 분위기와는 별개로 이 영화가 완벽하게 이상적인 여성간의, 모녀간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다. 어쩌면 많은 딸들이 어머니가 되길 두려워하는 마음과 비슷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장면을 하나씩 되짚어보니 시간을 거스른 만남은 어쩌면 넬리에게도 필요했던 만남일지도 모른다. 삶의 보호막이 되어줘야 할 엄마가 되려 신경쓰고 돌봐야하는 대상이 된다는 것은 넬리도 의식하지 못한 큰 불안으로 자리잡았을 것이다. 아직 어른을 알 수 없는 넬리는 엄마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주려고 하니까. 그런데 어린 마리옹은 다르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나와 비슷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좋아할 만한 것과 필요한 것은 어렵지 않다. 주고싶은 만큼 원없이 꼭 맞게 줄 수 있다. 또 친구라는 새로운 관계가 주는 활기와 자존감은 또래 관계에서만 얻을 수 있기도 하다.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이 관계를 어찌하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