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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플마 Aug 01. 2023

미스테리 김밥 실종 사건

프롤로그


   "이 집 김밥 맛있네."

거의 반년만에 아내가 김밥을 사 왔다. 오랜만에 먹으니 더 맛있다. 김밥을 먹다 보니 며칠 전에 읽었던 김밥에 대한 브런치 글 하나가 생각났고 글감이 하나 떠올랐다.


Part 1: 사라진 김밥


다음은 내가 국민학교 1학년 때 겪은 '김밥 실종 사건'의 내용이다. 까마득한 옛날옛적 얘기이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가기 직전의 즈음이었으니까. 

국민학교 1학년 첫 소풍 때였다. 이렇게 오래되고 더구나 아주 어렸을 적의 일들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사건만큼은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사람 사는 세계가 선하지만은 않은 곳임을 처음으로 경험하며 받았던 충격이 컸었기 때문인 듯하다.

내가 살던 곳은 시골이었기에 아마도 학교 인근의 작은 산으로 소풍을 갔을게다. 아마도 여기에서 장기자랑도 하고 보물 찾기도 했을게다. 대부분의 기억들이 흐릿하다. 한 가지만을 빼고는. 그 한 가지는 내가 아주 맛있는 '김밥을 먹었다'는 사실이다. 당시에 김밥은 쉽게 접할 수 없는 음식이었기에 너무도 맛있게 마구마구 먹었던 듯하다. 하지만 자그마한 체구의 나는 금방 배가 불러버렸고 도시락에는 아직도 김밥이 반이나 남아 있었다. 이때 난 기특한 생각을 했었다. 남은 김밥을 집에 가서 엄마와 아빠에게 드리겠다는 생각을.

소풍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난 아빠를 보자마자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맛있는 김밥을 아빠와 나눠먹는다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도시락은 텅 비어 있었다. 분명 나는 많은 김밥을 남겼다. 도대체 김밥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아빠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Part 2: 단서를 찾아서


이 미스테리를 어떻게 풀 것인가?

김밥은 어디로 갔을까?
정말 이상한 일이다. 난 김밥이 남아있던 도시락을 가방에 넣었고 그 뒤로 도시락을 꺼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내 등에 메어져 있던 가방도 나를 떠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김밥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난 하루를 되짚어 보았다. 김밥이 나모르게 사라질 수 있는 상황이 언제 있었던가를 추적해 보았다.
그러자 의심되는 한 사람이 떠올랐다.
아이스께끼 장사를 하는 이웃동네 형이었다.
이 형은 아이스께끼를 팔고자 소풍 대열에 합류했었다.
꼬맹이들에게 아이스께끼는 최고로 맛있는 얼음과자였기에 이 형의 인기는 매우 좋았다.
하지만 엄마가 동행하지 않은 돈 없는 꼬맹이에게 아이스께끼는 먼 나라 얘기였다.
그저 속으로 입맛만 다실뿐이었다.
그런데 이 께끼 형이 어떻게 내 김밥을 훔쳐갈 수 있었을까?


국민학교 1학년이라는 아주 어린 나이였음에도 난 김밥 실종 미스테리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논리 회로를 가동시키고 있었다. 김밥이 사라진 이유를 마치 미스테리를 풀어나가는 식으로 기억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난 이미 이때부터 미스테리 물들을 좋아했었나 보다.

중학생 때 보았던 형사 콜롬보의 내용들은 지금도 잘 기억한다. 그렇기에 근래 인터넷 TV에서 반복적으로 재방송해주는 형사 콜롬보를 보노라면, 범인의 알리바이가 무너지는 그 순간의 짜릿함을 옛 추억 그대로 느낄 정도이다. 이 맛에 이 드라마는 몇 번을 보아도 질리지가 않는다.
대학생 시절에는 내가 접할 수 있는 도서실이란 모든 도서실에 비치되어 있던 추리소설이란 모든 추리소설들을 거의 다 읽어본 기억이 있다. 더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이 없자 이번에는 영어 원작에 눈을 돌렸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들 중 번역이 안된  작품들에 대해서 영문 문고판 원작들을 사 보기 시작한 것이다. 용돈이 모아지면 교보문고나 종로서적에 가서 영국의 Fontana 출판사로부터 수입된 아가사 크리스티의 책을 사서 보는 것이 큰 취미 중의 하나였다. 이렇게 모은 책이 수십 권이며 지금은 내 책장의 한 곳에 보물처럼 모셔져 있다.




<Intermission>


얼마 전 재미있는 브런치 글을 읽었다. 브런치에서 조회수가 많이 나오는 글은 이혼 이야기와 김밥 이야기라고 하며 다양한 사례들을 보여주는 글이었다. 그래서 호기심이 생겼다.

   '진짜 그럴까? 한번 확인해 볼까?'

호기심을 풀어보고 싶어 하는 성격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죽지 않는 내 본성인 듯하다.

그런데 이혼 이야기는 쓸 수 있는 소재가 없다. 내 글의 대부분은 '아내를 사랑합니다'가 주제이다. 굳이 이혼에 대해서 써야 한다면, '이혼이 뭔데요?'의 내용으로 써야 할 판이다. 따라서 내가 도전해 볼 수 있는 글은 김밥 이야기이다. 하지만 김밥에 대한 '최근의' 에피소드가 없다. 김밥을 싸 먹거나 사 먹거나를 해 본 지 반년도 넘었을 정도로 우리 집은 김밥을 그리 즐겨 먹지 않는다. 유명 프랜차이즈 김밥의 식중독 사건 때문에 더 안 먹게 된 듯하다. 그렇다면 호기심을 풀기 위해서 쓸 수 있는 글재료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내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김밥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방금 소개한 '김밥 실종 사건'이다. 이 얘기는 언젠가 한 번은 쓰게 될 얘기였기에 이번에 겸사겸사 호기심도 테스트 해볼 겸 써보기로 했다.


브런치 AI가 내 스타일의 글을 선호할 듯싶지는 않지만, 제목에 '김밥'이 들어가 있다는 점을 한번 믿어본다. 내 글들의 내용은 일기 같은 개인 일상사이고 문체는 아주 무미건조한 스타일이라서 별 인기가 없다.

그럼에도 난 내 글의 스타일이 좋다.
내 입 맛에 맞게 쓴 글이라 내게는 술술 잘 읽히기 때문이다.
이 글들을 읽을 때마다 우리 부부의 추억들이 잔잔하게 되살아나고 아내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진다.
내 개인적인 옛 추억들도 정감있게 다가온다.
그렇기에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추억의 감흥을 느낄 수 없는 일반 독자분들에게는 그저 지루하기만 한 글일 수 있으리라.

따라서 특별할 것 없는 내 글이 AI의 선택을 받는 일이 일어난다면, '김밥 이야기는 조회수가 높다'라는 공식을 일반화시킬 수 있겠다. 과연 그럴는지 사뭇 결과가 궁금해진다.




Part 3: 드러나는 진실


난 사라진 김밥 사건의 단서를 찾기 위해서 점심시간부터의 내 행적을 되짚어 보았고 거기에서 용의자를 찾았다. 아쉽게도 그 용의자를 범인으로 체포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범인임은 백 프로 확실하다.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었다.
난 맛있게 김밥을 먹었고 반 정도 남긴 채로 도시락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그 후로는 산속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아마도 사슴벌레나 새 둥지 사냥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다 그렇게 놀았었다. 그러던 중 아이스께기 형을 만났다. 그 형은 내게 재미있는 얘기들을 해주며 상당히 친절하게 나를 대했다. 난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혹시 께끼 하나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겨서였다. 그런데 내 속 마음을 읽은 듯이 그 형이 갑자기 께끼를 주겠다고 했다. 거의 공짜로.
   "께끼 하나 줄까? 근데 너 사탕 있지? 사탕 한 개하고 바꿔먹자."
이게 웬 횡재란 말인가? 사탕 한 개랑 께끼 하나를 바꿔 먹다니. 입 맛만 다시던 께끼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난 무조건 '예'를 외쳤다. 그러자 이 형은 아이스께끼 하나를 꺼내어 내 손에 쥐어주고는,
   "사탕은 내가 꺼낼 테니까 넌 께끼 먹고 있어."
라고 하면서 내 등 뒤의 가방에서 사탕을 꺼내어 내게 보여 주었다. 약속대로 단 한 개의 사탕이었다.
그렇게 그 형은 씩 한번 웃은 후, '아이스 께~~~끼!'를 외치며 다른 아이들의 무리 쪽으로 향했다.
그날 난 너무도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께끼를 먹었다. 살살 핥아먹는 께끼는 최고의 맛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아껴 먹었음에도 께끼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내 입맛의 즐거움도 금방 끝났다.
너무도 아쉬웠다. 더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얼마 후였다.
난 또다시 께끼 형과 마주쳤다. 내 간절함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이 형은 대뜸,
   "께끼 맛있었니? 하나 더 줄까?"
당연히 난 '예'라고 대답했고, 똑같은 상황이 재연되었다.
난 께끼를 핥아먹고 있었고, 그 형은 내 등 뒤의 가방에서 사탕 한 개를 꺼낸 것이다.

아마도 이 과정에서 내 김밥 도시락도 잠시 나들이를 다녀왔을 것이다.




에필로그


참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께끼 형은 왜 나를 속였을까?'

그냥 김밥을 나눠먹자고 했으면 나눠 줬을 텐데, 아니 께끼와 김밥을 바꿔 먹자고 했어도 됐을 텐데 말이다.

나로서는 누군가를 속인다는 행위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분명 그랬으리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난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내가 자라는 동안  '너무순진하다. 약삭빠르지 않다'라는 말을 무척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실제로 순진하기만하거나 어리숙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난 어떤 것이 약삭빠른 행동인지를 알아도 그것이 옳지 않으면 그쪽으로 움직이지 않았을 뿐이다.

소위 '정도' 또는 '순리'라고 하는 방향으로만 행동했다.

나를 어리석다고 비웃어도 상관없었다.


이 께끼 형은 내게서 김밥을 훔쳐 먹은 사실을 자신의 무용담으로 자랑했을 것이다.

남을 속이는 잔머리를 자신의 능력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한 가지이다.

그런 행동들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이 없어서이다.


요즈음 정치면, 사회면 뉴스에는 이런 사람들의 얘기들로 꽉 차있다. 남을 등쳐먹고도 뻔뻔하게 사는 사람들. 아마도 어쩌면 께끼 형도 이런 사람으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기에 이런 사태가 만연하고 또 용납되는지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그렇게 안 하면 바보가 되는 느낌이 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난 정도대로 살 것이다. 우리 가족들도 모두 정도대로 살 것이다. 나와 내 형제와 내 누이들도 모두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이러한 삶의 태도를 배우며 자랐다. 이 사회가 꾸준히 질서있게 유지되는 이유는 나 그리고 우리 가족과 같은 정직한 이웃 사람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리라.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정도를 따르는 삶'에 대한 가정교육이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요즈음의 부모들은 자식 문제에 관한 한 너무 자기중심적이고 손해보지 않으려 한다. 일단 이기고 이득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소위 '정도'에서 벗어나는 행동들을 하기도 한다.

좀 지면서 살아도 또 남에게 양보하며 살아도 괜찮다는 것을 가르쳐주면 좋겠다. 또 순간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하여 잔머리를 쓰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결코 성공적인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함께.


PS: 고전 퀴즈 하나 (옛날엔 스틱들을 여러개 모아가면 께끼를 써비스로 줬었음. 이에 착안한 문제임.)

께끼의 나무 스틱 두 개를 가져가면 께끼를 한 개 준다. 께끼는 한 개에 5원이다.
플마는 50원이 있다.
플마는 총 몇 개의 께끼를 먹을 수 있을까요? (답: 20개)
어떻게 20개를 먹을 수 있는지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 문제입니다.


끝.


2023년 7월 3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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