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마시다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했었다. 그랬기에 조용히 화장실에 가서 세수도 해가며 더 이상 마시지 말아야겠다고 다짐까지 했었다. 아주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 자리로 다시 돌아왔을 때 발생했다. 이때 우리 동문들은 어떤 이슈에 대해서 두 편으로 나뉘어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내가 나타나자 내 의견을 물어왔다. 마침 나도 관심이 많았던 이슈였던지라 할 말이 무척 많았었고 장광설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다. 그리고 아마도 정신없이 떠들다가 그 잠깐 사이에 방금 전 화장실에서 다짐했던 약속을 까먹은 것이 틀림없다. '그만 마셔야지'라고 했던 약속을.
당시에 사모님은 모대학의 의상학과 교수님이셨고 여제자들이 많았다. 사모님께서는 졸업한 제자들 중 한 명을 내게 소개해주겠다고 하신 것이다. 아주 좋은 제자가 있다고 하시면서.
난 당연히 감사하다고 거듭 말씀드리면서, 속으로는 '휴우'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만취한 상태에서도 크게 실수하지 않고, 오히려 비교적 좋은 인상을 사모님께 드렸었나 보다.
교수님께서 내게 심부름을 보낸 것도, 사모님이 그 말씀을 하실 기회를 만들려고 그러셨었던 듯하다.
도대체 내가 사모님께 무슨 말씀을 드렸었기에 나를 잘 보신 것일까?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알 방법은 없다.
이제는 두 분 다 고인이 되셨기에 더욱더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