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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플마 Jun 08. 2022

나의 클래식 입문기

클래식 즐기기

(2021년 4월 12일 작성)


어제정말 오랜만에 음악회 공연을 참관하였다. 롯데 콘서트홀에서 진행한 '오페라 스타' 공연이다.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음악회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었다. 코로나 이전에 마지막으로 관람했던 음악회는 메가박스에서 중계해준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였는데, 공연 날짜가 2020년 1월 1일이므로 벌써 1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아내는 우리 부부의 데이트 코스로 종종 클래식 음악회 관람을 마련했었다. 아내의 품격(?)있는 취미 생활 추구가 목적이었겠지만, 내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도 큰 이유였다. 난 대학 시절 클래식에 아주 깊게 심취하며 지낸적이 있었는데, 이때 클래식에 대한 내 취향이 어느 정도 확실하게 만들어졌다. 덕분에 아내와의 클래식 음악회 데이트를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능력도 생겼다. 정말 다행이지 않은가? 자칫했으면 아주 지루한 데이트가 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클래식을 본격적으로 접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우연한 일이 계기가 되었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대학 1학년생이었을 때의 일이다. 아마도 먼 훗날 아내와의 음악회 데이트를 즐겁게 즐기라고 미리 마련된 각본에 따라 내가 움직인 듯하다. 그때의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또 어떻게 클래식에 심취하게 되었는지를 이번 기회에 회상해본다. 아울러 우리집 추억담 문집에 들어갈 또 하나의 글을 마련해본다.



늦은 밤 왠지 비통하고 우울한 기분이시라면 비탈리의 샤콘느를 권합니다. 그냥 약간은 지루한 일상적인 밤을 보내고 있으시다면 브라암스의 현악 6중주 1번을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아니면 오늘 낮 기분 좋은 일이 있어 약간 들뜬 기분이시라면 첼로로 연주되는 마스네의 타이스 명상곡을 추천합니다. 활기차고 명랑한 하루를 기대하는 이른 아침이라면 모짜르트의 터어키 행진곡을 권해드립니다.

저는 대학 시절 비탈리의 샤콘느를 처음 듣는 순간 몸에서 전율을 느꼈었답니다. 무언가 절망감에 빠져 있던 내 가슴속에서 날카로운 바이올린 선율들이 이리저리 격하게 휘젓고 다니며, 고통을 통한 희열을 맛보게 하는 듯했습니다. 그때의 감동은 지금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브라암스의 현악 6중주로부터는 안정감 있는 실내악의 분위기를 바탕으로 나를 약간은 긴장시키면서 일깨우려는 듯한 현악기들의 외침이 들리는 듯합니다. 아마도 저의 최애 클래식곡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이 곡을 선택할 것입니다.
'쾨헬 331번 모짜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1번 A단조 3악장!' 혹시 들어 보셨는지요? 당연히 들어봤을 것입니다. 각종 광고 음악으로도 널리 쓰인 너무도 유명한 피아노 소품이니까요. 일명 '터어키 행진곡'입니다.


모짜르트의 터어키 행진곡은 대학 시절 나를 클래식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 은인과 같은 곡이다. 대학 1학년 어느 날 이른 아침, 우연히 라디오에서 듣게 된  이 경쾌한 피아노 곡이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맴돌아 당장 또 듣고 싶어졌다. 하지만 당시의 내 처지에서는 이런 음악을 듣기 위해 테이프 또는 음반을 산다는 것은 너무도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난 라디오에서 이 곡이 다시 방송될 때를 기다려 빈 테이프에 녹음할 생각을 했다. 난 시간이 날 때마다 카세트 라디오로 KBS 제1FM을 틀어놓고는 터어키 행진곡이 다시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 곡을 다시 듣기까지는 꽤 오랜 기일이 걸려, 당시의 내 행동은 참으로 미련스러운 짓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뜻밖의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클래식을 내 인생의 한 부분으로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클래식 방송을 계속 듣다 보니, 말 그대로 나의 내면 깊은 곳까지 울려 퍼지는 듯한 감동을 주는 주옥같은 명곡들이 속속 발견되기 시작했다. 이런 곡들은 당장이라도 다시 한번 더 듣고 싶은 곡들이었지만 여전히 내게는 음악을 살 돈은 없었다. 따라서 이 곡들도 내 녹음 대상 리스트에 포함되었다. 처음에는 터어키 행진곡 하나만 녹음하면 끝날 일이었던 것이, 이제는 녹음 대상 곡들이 계속 늘어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작업이 되었고, 녹음테이프의 숫자는 계속 늘어만 갔다. 클래식 음악에 관한 한 내게는 이때가 제일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클래식 곡들을 접할 수 있었고, 그 곡들에 대한 나의 취향이 명확하게 파악되기 시작했다. 내가 간절히 원했던 곡이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그것을 깨끗하게 녹음한 후 다시 듣는 기분은 내 평생에 다시는 맛볼 수 없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후에 내게 경제적인 여유가 생긴 후, 고급 오디오 시스템과 스피커를 갖추고 클래식 명곡 CD 전집과 음반들도 샀으나, 대학 시절의 내 녹음테이프를 통하여 듣는 만큼의 감동은 느낄 수는 없었다.

  

사실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는 클래식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삶 자체가 바빠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지만, 엄밀하게는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항상 쫓기는 듯한 삶을 살다 보니 한가하게 클래식을 즐기는 것은 사치처럼 여겨졌다. 결혼 후에는 특히 아이까지 생긴 이후에는 나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아예 없어졌기에 조용히 클래식을 음미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하지만 한때 클래식 감상이 취미였다는 것만으로도 클래식 세계와의 연결은 계속 유지시킬 수 있었다. 아내가 나를 위해서 아니 어쩌면 우리 부부의 품격 있는(?) 취미 생활의 하나로 음악회를 데이트 수단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가끔이기는 하지만 연말의 제야 음악회 공연을 예약해 놓거나 어떤 때는 연초의 신년 음악회를 예약해 놓곤 했다.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하는 음악회도 가끔 관람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대학 1학년 때 우연히 듣게 된 터어키 행진곡이 없었다면, 내 인생에서 이런 클래식 음악 공연을 아내와 함께 유유자적하며 감상하는 운치는 없었으리라. 함께 해로해가는 아내와의 데이트 코스로 클래식 음악 감상이라는 것도 있기에 삶이 조금은 더 풍요롭게 느껴지는 듯하다.




덧 붙이는 글 1:

요즈음 난 클래식 음악을 유튜브로 즐긴다. 유튜브의 최대 장점은 내가 좋아하는 곡들을 다양한 연주곡 버전으로 한 곳에 모아놓고 언제든지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PC 작업을 하고 있는 동안 내 유튜브 채널에서는 클래식 곡이 흘러나오고 있으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은 세고비아가 기타로 연주하는 'Capricho Arabe'가 들리고 있다. 참으로 편리해진 세상이다. 어떤 곡이든 원하기만 하면 거의 다 찾아내 들을 수 있다는 것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편리함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닌 듯하다. 만약 터어키 행진곡이 하루 종일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그때 그 시절에 만약 유튜브란 것이 있었다면 난 결코 클래식의 세계로 빠져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 곡 하나 잠깐 들어보는 것으로 끝났을 테니까. 당시에는 다행히도 이런 유튜브가 없었기에 난 깊고 깊은 클래식의 세계로 빠져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세계로 들어가는 길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내 취향이 아닌 곡,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곡, 라디오에서 일년에 한번 들려줄까 말까 한 곡들까지 다양하게 접하면서 클래식에서의 내 취향이 명확해져야 한다. 그것도 그냥 주변의 소음처럼 틀어놓은 음악이 아니라, 좋은 곡이 나오면 녹음을 하겠다는 정도의 자세로 집중하며 들어야 제대로 감상이 된다. 이런 맛은 클래식 CD 전집으로도 결코 느낄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열정을 낼 수 있는 나이는 지난 듯하고, 난 유튜브 채널로 듣는 클래식만으로도 대만족이다.



덧 붙이는 글 2:

삶이 점점 바빠지는 현대는 수많은 클래식 곡들을 다 즐겨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여유 시간을 많이 주지 않는다. 따라서 클래식의 세계로 입문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하지만 구태여 클래식을 취미로 삼고자하는 입문자가 있다면, 난 음색이 화려하고 멜로디가 풍부한 바이올린 소품들로 시작하라고 하고 싶다. 예를 들면 사라사테의 지고인네르바이젠,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번, 생상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 엘가의 사랑의 인사 등등은 아마도 다 귀에 익숙한 곡들일 것이다. 다음으로는 아름다운 목소리의 오페라 아리아들을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비제의 칼멘에 나오는 하바네라, 풋치니의 쟌니스키키중의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등은 매우 중독성이 강하다. 다음으로는 .... .....   


이렇게 늘어놓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을 듯하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곡들로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 내가 추천하고 싶은 곡들은 바이올린 협주곡들이다. 그중에서도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1순위, 브라암스 2순위, 멘델스존 3순위로 추천하고 싶다. 그런데 세계 3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는 베에토벤, 브라암스, 멘델스존 것을 꼽는데, 난 사실 베에토벤의 곡보다는 차이코프스키의 곡을 훨씬 좋아하기에 이 분류에 불만이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곡은 전 악장을 통하여, 노래하는 듯한 서정적인 멜로디가 계속 살아 있는데, 특히 3악장에서 바이올린과 관악기들 간에 대화를 하는 듯한 부분은 곡이 끝난 후에도 긴 여운으로 남는다. 브라암스 곡의 1악장은 잘 짜여진 틀처럼 굉장히 안정감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2악장은 약간 지루한 아다지오로 흘러가다가 3악장에서 갑자기 격렬한 몰아침이 시작되는데, 사실 이 3악장 때문에 어떤 때는 브라암스 곡을 나의 1순위 곡으로 두기도 한다. 멘델스존의 곡은 1악장의 시작부가 하일라이트이다. 아주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고요함이 저 멀리서부터 서서히 내게로 밀려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 분위기가 1악장 전반을 통하여 약간씩 변주되어 반복된다. 베에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도 안정감 있는 아주 좋은 곡이기는 하지만 왠지 내게는 지루한 느낌이 든다. 마지막으로 추천하는 곡은 서두에서 나의 최애 클래식곡이라 소개했던 브라암스의 현악 6중주 1번의 2악장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곡을 직접 들어보시면서 느껴보시기를.




그런데 이 글을 쓰다 보니 그동안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점이 발견되었다. 난 별도의 라디오가 없기 때문에 PC 작업을 하는 동안은 유튜브 채널만을 통해서 클래식을 감상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보니 유튜브 저장소에 보관되어 있는 아주 한정된 곡들만을 듣고 있었다. 물론 이 곡들은 모두 내가 아주 좋아하는 곡들이기는 하지만, 대학 시절 다양한 쟝르의 클래식을 접하던 그 생동감 있던 경험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아니었다. PC에도 라디오 앱을 설치할 수 있었다. 바로 KBS의 Kong이다. 이제는 Kong의 ClassicFM 채널을 통하여 무작위로 흘러나오는 다양한 클래식 곡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젊은 대학생일 때의 감성과는 다른, 또 다른 취향의 클래식 곡들을 선호하는 나를 발견 할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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