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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플마 Dec 19. 2021

초보 골퍼에겐 얼마만큼의 공이 필요한가?

당신은 초보 골퍼가 골프 한 라운딩을 위해서 몇 개의 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요? 만약 골프를 쳐 본 적이 없다면, 골프를 치는 친구에게 몇 개의 공을 준비하는지 한번 물어보시라. 초보 골퍼 시절에는, 도대체 몇 개의 공을 준비해야 하는지가 큰 고민 중의 하나인데 라운드 도중에 공이 떨어질 듯싶으면 큰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 스트레스가 특히나 심한 날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톨스토이의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소설이 떠오르는  재미있는 상황을 경험했었다. 이 민담 소설은 너무 유명해서 모두들 내용을 알고 있겠지만, 다시 한번 핵심을 요약하자면 대략 다음의 내용 비슷하다.


러시아의 어느 마을에서는 농사를 짓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땅을 공짜로 나누어 주고 있었다. 아직 주인이 없는 땅 중에서, 그 사람이 갖고 싶어 하는 땅이라면 어느 땅이든지 다 주었으니 농사꾼에게는 천국이었으리라. 땅을 나눠주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땅을  갖고 싶은 사람은, 그 마을의 지정된 장소에서 출발하여 하루 동안 이리저리 걸으면서 갖고 싶은 땅의 경계들에 깃발을 꽂아 표시한 후, 다시 제  자리로 되돌아오면 된다. 단, 출발은 해가 뜬 후 아무 때나 다 되지만 도착은 반드시 해가 지기 전이어야만 한다.

가난하게 살던 어느 사람이 그 소문을 듣고 그 마을을 찾아간다. 그는 큰 욕심은 없었고 가족들이 오손도손 살 수 있을 정도의 땅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드디어 자기 소유의 땅이 생긴다는 벅찬 희망을 품고, 그는 해가 뜨자마자 마을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힘차게 출발한다.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미래의 자기 땅 경계를 표시해 가며 계속 걷는다. 그는 애초에 큰 욕심이 없었으므로 해의 위치를 가늠하며 적당한 시점에서 되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돌아가야만 하겠다는 시점에 이르렀을 때, 그의 마음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이제까지와는 다른 엄청나게 비옥한 땅들이 계속 펼쳐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고민한다. 돌아갈 것인가, 조금만 더 욕심을 낼 것인가? 하지만 농사짓는 사람이 좋은 땅을 놔두고 어찌 그냥 갈 수  있겠는가? 그는 마을로 되돌아갈 때 조금 더 속도를 내기로 하고는 그 비옥한 땅에 계속 깃발을 꽂으며 자기 땅이라는 표식을 해나간다. 그런데 갈수록 땅의 질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 멈추지를 못하고 계속 전진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해는 상당히 기울어져 있었고 자기는 너무 멀리 와있지 않은가? 그제야 그는 만사 제쳐놓고 출발 장소로 되돌아가기 시작한다.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속도를 내보지만 마을이 가까워지는 느낌은 없고 해는 점점 더 기울어만 간다. 그는 조금 더 무리해서 달리기 시작한다. 드디어 자기가 출발했던 마을의 언덕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사이에 해도 많이 기울어 이제는 서산의 산 꼭대기에 다다라 있었다. 드디어 산너머로 사라지기 시작하는 해를 보며  더욱 초조해진 그는 사력을 다해 뛰기 시작한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지만, 멈출 수가 없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출발점으로 되돌아가야만 오늘 낮에 표시해 놓은 그 비옥한 땅들이 다 자기 것이 되는 것이다. 한 발자국만 모자라도 이 모든 것이 다 헛수고가 되어버린다. 한걸음, 또 한걸음을 간신히 내디디며, 드디어 그는 목표 지점의 지척까지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많은 마을 사람들이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촌장은 많은 땅을 차지한 그를 축하해 주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의 입에서는 피가 흘렀고, 고꾸라진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죽어버린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근처에 구덩이를 파고 그를 묻어 주었다. 그를 위해서는 딱 그 몸 크기만큼의 땅만 있으면 충분하였다.


자, 그러면 이 소설의 내용과 골프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길래, 내가 골프를 치다가 이 소설을 떠올렸을까?


골프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경험하는 일로서, 공을 엄청 잃어버린다. 숲으로 날려 보내서 잃어버리고, 물속에 빠뜨리기도 하고, 계곡 밑으로 날려 보내고, 하다못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풀밭에서도 잃어버린다. 그래서 절대로 값비싼 새 공으로 치지를 않는다. 아차 하는 사이에  몇천 원, 몇만 원이 날아가 버리니까, 초보들은 새 공 대신에 중고 공들을 사용한다. 이 공들의 출처는 대부분이 골프장에서 수거한 로스트 볼들이다. 로스트 볼이란 골퍼들이 잘못 쳐서 잃어버린 공들이다.

나는 구력은 오래되었음에도 실력은 여전히 초보 수준이었다. 특히나 드라이버 샷의 슬라이스가 심하게 나는 편이라서 그만큼 공을 많이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골프 치러 갈 때마다 이 중고 공들을 10개 이상 미리 준비해 놓아야 안심이 되었는데, 혹시라도 중고 공이 모자란 상태로 필드에 나가면 라운딩 내내 불안감으로 마음이 편치 못했다.  요즘은 중고 공들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구하기가 쉽지 않았었기에 미리 챙겨놓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런 경우 내가 즐겨 쓰는 방법 중의 하나는 현지 조달이었다. 잃어버린 내 공을 찾으러 가면서, 내 공 말고 다른 공까지 주워 오는 것이다. 물론 운이 좋아야 하지만.


한 번은 친구들과 필드에 나갔는데, 공들을 많이 챙겨놓지 못해서 약간 불안한 심정으로 출발했다. 이제 믿을 것은, 공을 잃어버리지 않게 아주 잘 치거나 현지 조달을 원활하게 하는 방법뿐이었다. 몇 홀인가 돌았을 때, 준비해 온 공들이 벌써 떨어져 가고 있었다. 그래서 난 최대한 조심해서 드라이버 샷을 휘둘렀건만, 역시 이번에도 내 기대와는 달리 공은 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버렸다. 내 공은 심하게 오른쪽으로 휘면서 숲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나는 재빨리 공을 찾으러 숲으로 들어갔다. 준비해 온 공이 거의 바닥났기 때문에 이번에는 반드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공이 떨어졌을만한 곳을 뒤지고 있는데, 저쪽 한편에 다른 사람의 로스트 공이 눈에 띄었다. 잽싸게 그 공을 주으러 갔는데, 인근에 또 다른 로스트 공들이 보였다 이번에는 2개였다. 신이 나서 주위를 더 둘러보니,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로스트 공들이 여기저기 더 눈에 띄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나는 약간 흥분되었다. 더구나 공들의 브랜드도 좋았고 상태도 좋았다. 그래서 몇 개 더 주웠다. 그런데 밖에서 친구들이 날 부르기 시작했다. 너무 지체되고 있으니 공 찾는 것을 포기하고 빨리 나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보물들을 놔두고 어찌 그냥 되돌아 나갈 수가 있겠는가? 나는 친구들에게 조금만 더 찾아보겠다고 하며, 로스트 공들을 몇 개 더 주웠다. 마침내는 친구들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마지못해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 톨스토이의 위 소설이 생각난 것이다. 비옥한 땅들을 눈앞에 보는 순간, 뒷일에 대한 걱정은 어디론가 날려버리고, 바로 앞에 보이는 그 땅들을 갖고 싶다는 일념뿐이었을 그 농부의 심정이 살짝 이해되는 듯했다. 그 순간 내가 그랬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난 그날은 그 이후로 공을 한 개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나에겐 공 한 개면 충분했었다.


(2016년 7월경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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