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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플마 Jan 01. 2022

내가 만든 어록 - "모기 보다 못한 놈"

(2017년 1월 4일 작성)


"빈대보다 못한 놈!"

이 말은 정주영 씨의 어록으로 유명해진 말이다. 정주영 씨는 종종 기상천외한 프로젝트를 만들어내곤 했는데, 이 프로젝트들의 대부분은 여러 가지 난제들이 많아 성공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된 임원은 난제들의 솔루션을 찾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다가, 그 책임을 회피하고자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프로젝트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내곤 했다. 이럴 때면 정주영 씨는 이들을 야단치며 이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빈대만도 못한 놈아!"

정주영 씨는 아마도 열심히 노력하면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의미로 이 말을 쓴 듯하다.


정주영 씨가 젊은 시절 부두 노동자로 생활할 때였다고 한다. 잠은 노동자 합숙소에서 잤는데 이 합숙소에는 빈대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밤마다 잠을 잔다기보다는 빈대와 전쟁을 한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정도였다. 피를 빨아먹으려고 공격하는 자와 필사적으로 이를 막아내려는 자와의 전쟁! 하지만 어딘가에 꽁꽁 숨어 있다가 잠만 들면 바람처럼 나타나 인해전술로 공격해오는 빈대들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정주영 씨는 빈대들을 물리치기 위해 갖은 애를 쓰다가 역시 그답게 기발한 꾀를 생각해내었다. 정주영 씨는 커다란 상을 침대처럼 사용하며 그 위에서 잠을 잤다. 그러면서 각 상다리를 커다란 물대접으로 받쳐 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빈대들은 더 이상 정주영 씨를 공격하지 못했고, 정주영 씨는 이제는 달콤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며칠이 채 안 지나 빈대들이 다시 공격을 해오는 것이었다. 정주영 씨는 깜짝 놀라 빈대들이 어디서 수영이라도 배워왔는가 하고 빈대들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물대접을 수영으로 건널 수 있는 빈대는 한 마리도 없었다. 그러면 도대체 빈대들이 어떻게 나를 공격할 수 있단 말인가? 빈대들의 이동 경로를 살펴보던 정주영 씨는 깜짝 놀랐다. 이 놈들은 벽을 타고 천장을 가로질러 정주영 씨가 자고 있는 상의 위치까지 이동한 후 그곳에서 상 위로 낙하를 하는 것이었다. 정주영 씨는 이때 이 빈대들로부터 큰 깨달음을 얻었고, 이 이후 어떤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빈대들도 해내는데 ..." 하면서,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정주영 씨가 빈대들로부터 큰 깨달음을 얻었다면, 난 모기들로부터 깨달음을 얻은 바가 있다.

"모기들도 해내는데. 모기만도 못한 놈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라고.


지난 1월 1일 새벽, 난 아주 오랜만에 조기 축구 동호회에 축구를 하러 나갔다. 무릎이 아파 한동안 쉬었던 축구인데, 새해 들어 새 마음으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주 이른 새벽에 운동장을 찾은 것이다. 상쾌한 마음으로 몸을 풀고 있는데, 새벽의 찬 공기 때문인지 갑자기 아랫배에 묵직한 생리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아차차, 큰일 났다. 왜냐하면 이 운동장에는 화장실이 없기 때문이다. 집에서 미리 해결하고 나왔어야 했는데, 오랜만에 나오다 보니 필수 준비 사항을 까먹은 것이다. 이런 비상 상황 시에는 우리 팀의 동료들은 차를 타고 멀리 떨어져 있는 단골 식당에 가서 일을 해결하고 온다. 하지만 난 차도 없었다. 집에서부터 호기 있게 조깅을 하며 운동장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난 어떻게든 이 생리 현상을 해결해야겠기에, 인근에 있는 아파트 상가를 찾았다. 하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상가 건물의 모든 문은 꽉 잠겨 있었다. 아, 이젠 어떻게 할 것인가? 차를 좀 빌릴까도 생각했지만,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좀 거북하기는 하지만 그냥 참으면서 축구를 하자."

결국 난 화장실 찾기를 포기하고 운동장으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문득 예전에 TV 프로 '호기심 천국'에서 보았던 모기 생각이 났다.


모기장이 제 역할을 다하려면 절대로 조그마한 틈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단다. 틈이 있으면 반드시 그 틈으로 모기가 들어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니 어떤 운 좋은 모기가 그 틈을 발견이라도 했단 말인가?"

호기심 천국에서 보여준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모기는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운 좋게 그 틈을 찾게 된 것이 아니었다. 모기가 모기장으로 들어가야겠다고 목표를 정하면, 그 순간부터 모기는 더 이상 날지 않고 모기장 위를 계속 걷는 것이다. 틈이 반드시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그럼에도 모기는 틈을 찾아서 걷고 또 걷고 하면서 끈질기게 모기장 위를 샅샅이 뒤진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모기장에 조금이라도 틈이 있으면, 모기가 모기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운이 작용하는 확률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적인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아, 그렇다. 나도 지금 저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겠다고 목표를 정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식당으로 가지 않고 여기로 온 것인데. 난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상가 건물을 다시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까는 '아마 다 잠겨 있을 거야'라는 약간 부정적인 마음을 갖고 돌았다면, 이번에는 철저한 모기 정신으로 틈을 찾고자 했다. 그랬더니 역시나 내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난 건물 뒷 편의 한쪽에서 잠겨있지 않은 문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고맙게도 깨끗한 화장실도 나를 반기고 있었다. 난 어느 때보다도 더 시원하게 일을 보고 운동장으로 돌아왔다. 가벼워진 몸이라서 그런지 뜀박질도 더 잘 되는 것 같았다.


조금 더의 노력으로 이렇게 신날 수 있었던 것을, 하마터면 난 그날 '모기보다 못한 놈'이 되어 거북한 상태로 엉금엉금 축구를 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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