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플마 Sep 08. 2019

아! 프라푸치노 네가 날

더운 여름날 격렬하게 축구를 하고 나면 갈증이 몹시 심해진다. 그런데 이 갈증은 시원한 물이나 음료수를 아무리 마셔도 쉽게 없어지지를 않는다. 아마도 몸도 피곤하니까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랬었는데 몇 년 전부터는 이 갈증을 일시에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XX '의 스토로우베리 익스트림을 한잔 사 먹는 것이다. 갈증이 심할 때 굵은 빨대로 이 음료를 쭉 빨아 마시면 순간적으로 관자놀이가 얼얼해지다가 그 차가움으로 아파지기까지 하여 몹시 괴롭다. 하지만 난 매번 이 괴로움의 과정을 즐겼는데, 왜냐하면 그 아픔이 가시고 나면 그 심하던 갈증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마시는 그 딸기 쥬스는 더욱더 달콤했었다.    

 

금년 여름의 어느 일요일 오후, 축구로 지친 몸을 끌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내와 함께 스XX 킹 스토로우베리 익스트림을 사 먹으러 가던 길이었다. 갑자기 아내가 다른 걸 먹어보면 어떠냐고 물어봤다.

   "스타XX의 커피 중에 당신 입맛에 딱 맞는 게 있는데 먹어볼래?"

   "아이스커피는 별로인데. 나한테는 그 딸기쥬스가 최고인데."

   "날 믿고 한번 마셔봐."

그렇게 해서 난 몇 년 동안 충성을 받쳐왔던 딸기쥬스를 배신하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그 배신이 그냥 일회성으로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며 또 향기롭기까지 한 그 맛에 한번 취해본 후에는 그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그 맛에 취해 갈증도 잊어버리는 듯했다. 새롭게 내 입맛을 사로잡은 이놈의 정체는 '프라푸치노'이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사랑해주는 프라푸치노란 놈이 나에게 망신을 줄 줄이야?   

  

며칠 전 친한 고등학교 친구들 몇 명과 함께 삼성역 근처의 유명 맛집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였다. 다들 2차로 술을 한잔 더 하기보다는 조용한 찻집이나 커피 집에 가기를 바라서 식당 바로 앞에 있던 일명 별다방으로 향했다. 친구들 중 하나가,

   ", 커피는 내가 살 테니까 뭐 마실지 말만 해."

친구들은 다들 아메리카노를 외쳤다. 역시 이들에게는 커피 이름들이 너무 어렵다. 커피는 아메리카노만 있을 뿐이다. 나도 예전 같았으면 그냥 아메리카노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집에는 내가 좋아하는 커피가 따로 있지 않은가?

   "난 프라푸치노."

순간 친구들이 당황했다. 다들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뭐냐?"

   "내가 좋아하는 게 있어. 그냥 시키면 돼."

   "차가운 걸로, 아니면 뜨거운 걸로?"

   "프라가 차갑다는 뜻이야. 당연히 차가운 거지."

난 속으로 내가 이 친구들보다는 좀 더 세련됐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자리를 잡기 위해 쪽의 구석진 자리로 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친구들이 날 불렀다.

   ", 프라푸치노 뭐 마실 거냐?"

   "그냥 프라푸치노. , 뭐가 문젠데?"

그러면서 벽면의 메뉴판을 봤더니, 프라푸치노란 큰 타이틀 아래 여러 종류의 커피 이름들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난 순간 몹시 당황했다. 뭘 고르나? 친구들은 옆에서 막 웃고 있었다.

   ", 너 자주 마신다며. 그동안 뭘 마신 거야?"

난 맨 위쪽의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선택했다.

   "자바칩으로 주세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카운터의 아가씨가

   "쏼라쏼라 얹어 드릴까요?"

난 순간 또 당황했다. 이게 또 뭔 말인가?

    "?"

    "쏼라크림 얹어 드릴까요?"

난 정확한 이름은 못 들었지만 아가씨가 말한 것이 프라푸치노에 얹어주는 하얀 크림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 얹어 주세요."

당황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친구들은 또 낄낄거렸다.

많이 민망했던 난 변명할 수밖에 없었다.

   "난 사실 내가 직접 사 먹어 본 적은 없고, 항상 와이프가 사준 것만 먹다 보니까 주문이 이렇게 복잡할 줄 몰랐네."     

나중에 프라푸치노가 나왔을 때 친구들이 다들 한 모금씩 마셔보기를 원해 조금씩 나누어 마셨고, 덕분에 내 민망함은 많이 사그라들었다.      

         

PS:

그날 별다방에서 있었던 일이다.

예쁘장한 젊은 아가씨 두 명이 우리 테이블 주위를 서성이며 계속 우리 일행을 주시하는 듯했다. 빈자리가 없어서 그러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빈자리는 많이 있었다. 왜 그럴까 하고 의아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아가씨가 우리 테이블로 오더니 뭔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뭔 일이 있었을까요?     

이 아가씨들이 노렸던 것은 우리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영수증이었다. 이 영수증으로 포인트를 적립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당시 별다방에는 포인트로만 살 수 있는 이벤트 상품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 50대 중후반 또래의 아저씨들은 분명히 포인트 적립을 안 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접근해 온 것이 당돌하기도 하며 그 작은 포인트 하나에도 정성을 들이는 그 마음들이 귀엽기도 하였다. 확실히 요즘의 젊은 세대는 우리와는 다른 문화 속에서 살고 있음이 분명했다


(2017년 12월)


<홍플마의 또다른 재미있는 글>

목걸이를  사지 말아야 할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