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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플마 May 25. 2023

아내의 후다닥 성격이 살려낸 남편의 목숨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난 바로 이전글(후다닥 아내와 꼼지락 남편)에서 아내와 나의 성격이 얼마나 다른지를 소재로 글을 썼었다. 그 글에서 내 성격은 나름 신중한 편인 반면에 아내는 무조건 후다닥 치고 나가는 성격이라고 설명했었다. 즉 내가 보는 아내의 성격은 어떤 일이 발생하면 그 일의 전후를 따져보지 않고 그냥 그 일의 빠른 처리에만 초점을 맞추는 타입이었다. 당연히 그런 성격이 나와는 잘 안 맞는다는 뉘앙스로 글을 썼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의 글을 쓰자마자 아내의 그 성격 덕분에 내 목숨을 구하게 되는 아주 아이러니하고 재미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피 엔딩으로 끝났기 때문에 '재미있는'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아주 끔찍했던 사건이었다. 나와 아내남은 인생이 아주 불행해질 수도 있었던 아찔했던 사건이었다.

지난주에, 말로만 들어도 두려운 뇌출혈이 내게 일어났었다. 하지만 아내의 후다닥 성격 덕분에 난 골든 타임을 잘 지켜낼 수 있었고, 후유증도 없이 잘 회복하였다. 너무도 고마운 아내의 후다닥 성격이다.




"어~어~, 왜 그래?"

아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지난주 금요일 아침이었다. 난 화장실에 들어서며 슬리퍼를 신으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왼쪽 발의 슬리퍼를 한 번에 신지 못하고 약간 기우뚱했었던 것 같다. 이런 일은 평상시에도 가끔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우연히 내 모습을 본 아내의 눈에는 이것이 단순한 실수가 아닌 내 몸의 이상으로 감지되었었나 보다.

"자기 머리 아프다고 했었지. 아무래도 이상해. 119를 불러야겠어."

"나 괜찮아. 119는 왜 불러? 계속 아프면 이따가 낮에 병원에 가볼게."

하지만 아내는 내 얘기를 무시하고 119에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난 짜증이 났다.

"난 멀쩡한데 119를 부르면 어떻게 해? 여러 사람이 번거롭게 되잖아. 하여튼 그 후다닥 성격은 어쩌지 못한다니까."

아내와 내가 이렇게 실랑이를 하는 사이에 어느샌가 119 대원들이 우리 집에 도착했고, 난 반항도 못하고 맨발 채로 그들에게 이끌려 삼성서울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런데 난 분명히 정신이 멀쩡했었는데 희한하게도 우리 집 현관문을 나선 이후의 일들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순식간에 내 뇌에 문제가 생겼던 모양이다. 젊은 119 대원이 '괜찮아 보이시는데요' 라고 말하자, 아내가 다급하게 '아니예요. 서둘러 주세요'라고 말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나중에 들은 얘기는 이렇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난 뇌 CT 촬영을 했고, 이미 뇌 속에 상당량의 피가 고여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당장에 내 뇌 속의 피를 빼내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삼성서울병원에서는 스케줄상 당일 수술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아내는 더 이상 삼성서울병원의 처리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의 인맥을 동원하여 당장에 뇌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서울성모병원의 어느 의사가 당장에 수술해 줄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이제는 나를 최대한 빨리 삼성서울병원에서 서울성모병원의 응급실로 보내야 하는데, 아내는 이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사설 119를 불렀다. 아마도 삼성서울병원의 행정절차대로 하자면 시간이 좀 더 걸렸기 때문인 듯했고, 처음 응급실 도착 당시부터 약간 소극적이었던 삼성서울병원의 일처리를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금일 삼성서울병원이 최상급 병원에서 탈락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빅 5 병원 중에서는 처음이라고 한다. 아내는 이런 점을 감지하는 능력도 갖춘 듯하다.) 아무튼 이렇게 난 서울성모병원에 도착했고 다시 한번 더 CT 촬영을 한 후 일사천리로 수술을 진행하였다. 내가 깨어났을 때는 금요일 당일의 저녁 시간이었고 중환자실이었다. 내 손은 침대에 묶여 있었는데 몸부림을 치면서 내 머리와 몸의 이곳저곳에 붙어 있는 여러 관들을 파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단다. 이러한 결박에 대해서 아내가 동의서를 작성해야 했는데 이 때문에 아내는 나의 상태를 더 심각하게 생각했고 잔뜩 겁을 먹었었다고 한다.


내가 깨어난 후, 수술이 아주 잘 진행되었다는 얘기를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분들로부터 여러 번 들었는데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난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한 시간 간격으로 내 몸의 왼쪽 오른쪽 밸런스를 계속 체크했는데, 잘 회복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상태로 토요일과 일요일을 거치면서 내 머릿속에 고여있던 피를 거의 다 뽑아냈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에 CT와 MRI를 다시 한번 더 찍었고, 그 결과 뇌의 붓기도 거의 가라앉을 정도로 호전되어 월요일 오전에 퇴원할 수 있었다. 입원할 당시의 상태(뇌의 센터 라인이 25mm나 벗어나 있었다고 함)를 고려하면 상당히 빠른 퇴원이었다. 중환자실 간호사분들께서는 내게 상당히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하며, 아무 후유증 없이 잘 회복되어 다행이라고 다. 일반 병실로 옮긴 이후로는 누나가 계속 내 옆에서 불편하지 않도록 간호를 해줬다. 이 글을 통하여 누나에게 다시 한번 더 고마움을 전한다. 누나는 내가 잘못될까 봐 엄청 마음을 졸였었는데 잘 회복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너무 좋아했다.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잘 돌아와 줘 너무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 하셨다. (훗날 장모님을 뵈었을 때 장모님께서도 똑같이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난 어머니께 죄송하기만 한데, 어머니는 오히려 내게 고맙다고 하신다. 이렇듯 나의 뇌출혈 사건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어가있는 중이다. 다만 조심을 한다 해도 재발 확률이 10%나 된다 하니 아직까지는 안심할 단계는 아닌듯하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나를 살린 것은 운이 아니라 아내의 후다닥 성격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아내의 빠른 판단과 일 처리 덕분에 난 뇌졸중의 골든 타임을 잘 지켜낼 수 있었고 큰 후유증 없이 잘 회복한 것이 맞다. 따라서 아내에의 고마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다.

집에 돌아온 후 아내와 식탁에 마주 앉아 마시는 차 한잔은 더 감미로웠고, 조용히 미소 짓는 아내의 모습은 더욱 아름다와 보였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내 행복감이 얼마나 클지는 굳이 말을 안 해도 짐작이 갈 것이다.

'여보, 고마워. 앞으로 더 행복하게 살자.'




이번 일을 통해서 난 아내가 왜 후다닥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확실하게 깨달았다.

아내는 의사이다. 재활의학과 전문의이다. 의사들은 위급한 환자를 다룰 때 앞뒤 가릴 것 없이 그 환자의 상태에 대한 조치에 초점을 맞춰 최대한 빠른 판단을 해야만 하고 판단이 서면 최대한 빨리 실행을 해야만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러니 나와는 아주 다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난 물리학자다. 난 어떤 현상을 보면, 그 현상의 원인과 패턴을 분석하고, 그리고 이후의 진행예측해 보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 이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 습관적으로 내게 배어있는 습관이다. 따라서 당장에 시급하게 문제를 해결하려기 보다는 그 현상에서 어떤 general rule을 찾아보려고 한다. 좀 나쁘게 얘기하자면 일의 신속한 처리를 뒤로 미뤄버리는 우유부단하고 게으른 성격이다.


실제로 이번에도 난 나를 대상으로 그런 실수를 하고 있었다. 사실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 것은 약 4주 전 일요일부터였다. 4주 전 일요 조기축구를 하다가 상당히 강한 볼을 헤딩으로 처리한 적이 있었다. 당일 날부터 며칠간 머리가 몹시 아프긴 했었지만, 난 설마 고무로  된 축구공에 머리가 충격을 받아봤자 별것 있겠느냐는 생각으로 이를 무시했다. 그 이후 2주간은 아내와의 나들이 때문에 축구를 하지 못했는데 그래서였는지 두통 증상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었다. 그랬다가 지지난주 축구를 갔다 온 후 갑자기 두통이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난 두통의 원인을 다른 데서 찾고 있었으며 경험상 다 그럴듯한 원인이 되기에 충분하여 뇌출혈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119 호출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즉 목요일 밤에는 두통이 아주 심해졌고 오른쪽 눈알까지 몹시 아파지기 시작했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약 4주 전 헤딩을 할 당시에 내 뇌에서는 이미 출혈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추정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내가 가입한 뇌질환 질병 보험의 특약 조건에 뇌출혈이 발생하면 위로금 차원으로 큰 금액의 보상을 받을 수 는 조항이 있다. 다만 외상으로 인한 뇌출혈은 제외이다. 그래서 담당 의사 선생님께 난 머리에 충격을 받은 적이 없다고 계속 우겼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출혈 상태를 보면 '100% 외상'이란다. 내가 느끼지 못했다 할지라도 어느 순간 머리에 충격이 가해진 일이 있었다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진단을 내렸다.

따라서 보상금은 물건너갔고 언제 내 머리에 충격이 가해졌는지를 찾는 일만이 남았다. 그렇다면 내가 추측해 볼 수 있는 금번 뇌출혈의 원인은 4주 전 헤딩이 유일하다. 하지만 워낙 미세했던 출혈이라 큰 증상으로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미세 출혈이었다 할지라도 출혈된 피가 상당량 뇌 내에 고이면서 목요일 밤부터는 뇌에 압박을 주기 시작했고 금요일 오전에 빠른 수술을 하지 않았다면 후유증까지 남길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난 혈전을 예방할 목적으로 아스피린을 장기 복용해 왔는데, 이것 때문에 미세 출혈이 멈추지 않고 지속된 듯하다. 아무튼 난 아주 위험한 상황까지 몰렸었음이 확실하다. 다행히도 내 왼발 거동의 미세한 이상 증세를 아내가 우연히 보게 되었고, 아내는 그것을 보자마자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즉각 조치를 취하여 난 그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결과를 놓고 보니 아내의 후다닥 성격은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보였고 더 나아가 당연히 그래야만 할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신중하다고 생각했던 내 성격은 왠지 어리석은 듯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 성격도 많은 장점을 갖고 있고 그 덕을 본 도 많이 있다. 결론적으로, 부부간에는 서로의 성격을 억지로 동화시키려 할 필요는 전혀 없으며 각자 성격의 장점을 잘 살려가며 조화롭게 사는 것이 최선인 듯하며 그런 것이 천생연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가족의 일상생활에서 아내의 후다닥 성격으로 시원하게 일처리를 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며 본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에피소드에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꼼지락 아들과 후다닥 엄마"가 적당할 듯하다.


예전에 아들의 컴퓨터 모니터가 고장 난 적이 있어 당장에 모니터를 새로 구입해야 할 상황이었다. 아들과 나는 이왕 구입해야 하는 모니터이니 신중하게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장만하자는데 의기투합하였다. 그래서 모니터의 사양을 다음과 같이 정해 가고 있었다. 사이즈는 40인치, 해상도는 UHD, 화면 주사율은 144Hz, 그리고 스피커 내장 등의 조건을 정했다. 마지막으로 가성비 좋은 것을 찾기로 했고 아들이 인터넷 쇼핑몰과 사용자 후기들을 뒤져보기로 했다. 하지만 아들의 이 작업은 생각보다 길어져 저녁 시간이 다 되도록 살만한 모니터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녁에 아내가 퇴근한 후 아들에게 물었다.

"아직도 못 샀어? 근데 지금 주문하면 언제 오니?"

"모레 정도 돼야 할 거야."

"그럼 삼일이나 컴퓨터 못쓰잖아. 넌 매일 게임해야 하는데 어떡하냐? 게임 조건으로 제일 중요한 게 뭐니?"

"144Hz는 꼭 맞췄으면 해."


아들과의 대화를 끝낸 아내는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전화를 끝낸 후 아내가 말했다.

"집 앞 삼성 디지탈 플라자에 게임용 모니터 있대. 144Hz 짜리라고 하니 지금 사러 가자."

아들과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아내를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 모니터는 32인치 curved type이었고 해상도는 UHD가 아닌 QHD급이었다. 그리고 내장 스피커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 문제가 안되었다. 아들이 게임을 하는데 아쉬운 요소는 전혀 없었다. 32인치 크기면 충분했고 QHD 해상도만 돼도 아주 훌륭한 사양이었다. 스피커는 그 모니터의 curve line에 맞추어 예쁘게 디자인된 curved bar type의 외장 스피커를 인터넷 쇼핑몰에서 별도로 구입할 수 있었다. 더구나 당시에 삼성 디지탈 플라자에서는 해당 제품을 세일하는 중이라서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모니터를 구입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아들과 내가 모니터 사양에 대해서 논의했던 일은 그냥 시간만 질질 끌면서 컴퓨터만 쓰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었다. 하지만 아내는 전화 한 통화로 이 상황을 더 이상 문젯거리가 아닌 것으로 해결해 버렸다. 그날 저녁부터 아들은 아주 대만족 하며 그 모니터를 잘 쓰고 있다.

그래서 난 가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엄마는 해결사야. 뭐든지 척척이잖아. 너도 문제가 생기면 질질 끌지 말고 일단 해결부터 하고 봐."


(2023년 5월 2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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