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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플마 Apr 16. 2023

후다닥 아내와 꼼지락 남편

부부싸움의 마지막 퍼즐

   "으악, 넘쳐버렸네. 여보! 빨리 냅킨 좀 가져와!"

다급하게 외치는 아내를 니, 커피 잔 위로 우유 거품이 넘쳐흘러내리고 있었다.

우유 거품기 안의 우유 양을 가늠하지 않고 그냥 통째로 커피 잔에 부어버린 모양이었다.

아싸! 난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반격의 기회를.

     "아이구, 하여튼 항상 후다닥 후다닥이라니까! 그러니까 넘치지."


동안 이 말을 얼마나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내에게 동작이 느리다는 잔소리를 하도 들었었기에. 난 동작이 느린 것이 아니고 신중한 것인데 아내에게는 그것이 느림보 행동으로 보였던 듯하다. 부엌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아내와 함께 일하다 보니 서로의 성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였다. 내가 보는 아내는 무조건 후다닥 치고 나가는 스타일이었고, 아내에게 보이는 내 모습은 정해진 시간 내에 아무 일도 못해낼 속 터지게 느린 사람이었다. 내가 부엌일을 시작했던 이유는 아내를 도와주겠다는 좋은 의도였었건만 오히려 서로의 감정이 상하는 부작용만 만들어 버렸었다. 사사건건 서로 부딪히는 일들이 너무 많이 발생했고 작은 다툼도 여러 번 일어났다. 성격 차이로 이혼해야만 했다면 수십 번도 더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이렇게 서로의 성격 차이를 여과 없이 확인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우리 부부의 사랑이 더 깊고 단단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서로의 성격 중에 변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지금은 아무런 마찰이 없다. 상대방의 성격을 내 마음에 맞게 고치려 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나니 우리 부부가 함께 만들어가는 삶들이 더 즐거워졌다.




이전에 난 우리 부부가 부부싸움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소재로 두 편의 글을 쓴 바 있다. 하나는 '허당 고수 위에는 진짜 고수가 있었다' 로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던 두 사람이 부부로 함께 살게 되면서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에 대한 글이다. 다른 하나는 '아내는 자기를 추앙하라 한다. 하지만 난'으로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돌발적인 말다툼이 절대로 생기지 않도록 나를 변화시켜 가는 과정에 대한 글이다. 이로써 우리 부부 사이에는 부부싸움이란 것이 완전히 없어질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성격 차이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부엌에서 함께 일을 해보니 서로의 행동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것이 쌓이다 보면 가끔 다투곤 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이것은 좋은 다툼들이었다. 이러한 다툼 과정을 몇 번 거치다 보니 마침내 나는 아내의 성격을, 아내는 나의 성격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또 그것을 이용할 줄 알게 되었다. 이로써 드디어 부부싸움의 마지막 퍼즐을 풀 수 있게 되었다. 즉, 더 이상의 부부싸움은 발생하지 않았다. 아주 작은 사소한 다툼조차도 거의 생기지 않았다. 따라서 이 글은 3부작으로 이루어진 우리 부부의 '부부싸움 극복 방법' 시리즈완결판이라 할 수 있겠다.




약 2년 전부터였다.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부엌살림의 대부분을 내려놓으시고 아내가 전담하기 시작한 것이. 그리고 아내가 부엌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도 자동으로 따라 들어갔던 것이.

아내의 아침은 매일 새벽 6시 반부터 시작되며 몹시 바쁘다. 출근 준비와 더불어 세 종류의 밥상을 차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특성이 완전히 다른 밥상들이다. 아주 한정적인 채식 종류의 음식만 드시는 어머니 밥상, 빵 또는 고기 위주의 신세대 식성을 가진 아들 식단, 그리고 우리 부부의 밥상이다. 아내는 바쁜 와중에도 결코 간단하지 않은 식단으로 밥상을 꾸린다. 영양 밸런스가 중요하다며 생선, 고기류, 야채 샐러드, 갖가지 반찬들, 국 등으로 구색을 갖춘다. 여기에 간식 도시락들도 따로 챙겨야 한다. 과일 도시락과 바나나 및 견과류 요거트, 군고구마, 삶은 계란 등등이다. 식구 별로 비타민과 혈압약 등도 챙긴다. 커피도 꼭 그라인드앤드립이며 아내는 반드시 우유 거품이 풍성한 라떼로 마신다. 이러니 얼마나 바쁘겠는가?


아내가 바쁜 만큼 나도 바쁘다. 난 아내가 시키는 모든 일들을 한다. 감자를 까라면 까고 양파를 까라면 깐다. 야채를 씻으라면 씻는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루틴 한 일들은 거의 내가 한다. 계란 삶기, 과일 씻기, 약 챙기기 등등. 그리고 쉬지 않고 아내가 어질러 놓는 부엌살림들을 계속 정리한다. 세상에 이런 남편이 어디 또 있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도와주는데도 꼭 핀잔조로 듣는 말이 있었다. 동작이 너무 느리다는 말. 느린 것이 아니고 신중하게 하는 것인데, 자존심을 팍팍 상하게 한다. 아내는 동시에 여러 개를 시킬 때가 많다. 아주 빠른 말로 '다다다다' 여러 개를 시킨다. 그러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여지없이 한두 가지는 빵구가 난다. 그러면 꼭 이어지는 말들이 있었다.

     "아직도 다 못했어? 느려도 정말 느리네. 그리고 일의 순서를 모르네. 이것부터 해놨어야지."


아내의 요리 처리 속도는 가히 칭송받을 만했다. 난 처음엔 아내의 빠른 요리 솜씨에 감탄했었다. 그 빠름 덕분에 온 식구의 아침상 차림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일을 치고 나갈 때는 그에 따른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다. 뒷정리가 거의 안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칼과 도마가 필요한 작업들이 있다면 순식간에 두 개 또는 세 개 세트가 부엌에 깔린다. 후라이팬 두세 개도 금방이다. 싱크대 설거지통에는 각종 조리 도구들과 그릇들이 뒤엉키며 쌓인다. 쓰레기통 근처에는 잘못 조준되어 떨어진 쓰레기가 보인다. 한 마디로 아내는 뒷 상황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당장 처리해야 할 일에만 초점을 맞춰 일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이러한 일 처리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현재의 일만이 아니라 다음 스텝의 일까지 고려하며 신중하게 일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아내와 나의 성격이 얼마나 다른지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새벽 배송으로 새로 산 미니 연두부들을 냉장고에 넣을 때, 난 아무리 바빠도 기존 두부를 앞쪽으로 옮기고 새것을 뒤쪽에 넣는다. 아내는 바쁘면 순서 상관없이 그냥 넣는다. 두부를 써야 할 때 날짜를 보고 고르면 된다는 주장이다. 아내는 싱크대 설거지통에 아무거나 막 집어넣는다. 방금 전 생수량 조절을 위해 사용했던 계량컵도 넣는다. 이 계량컵은 깨끗한 것이므로 식기 건조대에 올려놔되는데 말이다. 싱크대에 도마도 집어넣는다. 그러면 이후에 발생되는 설거지 거리들을 넣을 수가 없다. 난 설거지 거리들을 종류별로 분류하여 넣는다. 그래야 나중에 설거지를 편하게 할 수 있다. 아내는 잔반을 싱크대에 막 버린 후 배수구가 막히면 뚫으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난 배수구가 막히지 않도록 근원적으로 예방하며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내가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제대로 집어넣지 못하는 이유는 손은 쓰레기통까지 갔지만 눈은 이미 다음번 해야 할 일 쪽으로 쏠려 있기 때문이다. 아내에게는 냉장고 속에 어떤 반찬들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새로운 반찬을 맛있게 만들어 먹을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다. 난 냉장고 속에 쌓여만 가는 음식 및 반찬통들이 불만이다. 언제 저것들을 다 먹어치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아내의 행동들을 주저리주저리 다 적다 보면 아마도 몇 페이지는 적을 수 있을 듯하다. 반대로 아내가 내게 하는 잔소리, 즉 아내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내 행동들까지 적으면 책 한 권은 나오지 않을까? 이 말을 쓰는 동안 또 한 가지가 생각났다. 아내는 냉장고 문을 닫지 않는다. 냉동고 문조차도 절대로 닫지 않는다. 필요한 것을 꺼내고 나면 그것을 조리할 곳으로 가져가기 바쁘다. 냉동고 문은 저 혼자 서서히 닫혀 간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음식을 꺼낸 후 그 문을 닫아주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안 닫을까? 이렇듯 아내와 나의 성격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한동안 아내와 나는 부엌에서 서로가 스트레스였다. 난 잘못 조준되어 떨어진 쓰레기에 대해서 잔소리를 했고, 아내는 불고기에 넣을 양파가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잔소리를 했다. 난 싱크대에 엉망으로 버려진 그릇에 대해서 잔소리를 했고, 아내는 그런 잔소리가 듣기 싫다고 잔소리를 했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서로를 필요로 했다.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요리를 마쳐야 하는 아내에게는 반드시 보조가 필요했고, 요리를 못하는 나로서는 아내의 요리 능력이 필요했다. 서로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아 티격태격을 하면서도 부엌에서의 우리 공생은 그렇게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드디어 일이 터졌다.


그날은 아내가 내게 단호박을 쪄놓으라고 했었다. 단호박을 찌는 과정은 아주 간단하다. 깨끗이 씻어낸 후 잘 등분을 내어 에어프라이어에 넣으면 된다.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난 단호박을 씻는 것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날은 루틴 하게 하는 일 말고도 다른 일들도 유달리 많았다. 우선 쓰레기들을 분리 배출하기 편하게 정리해 놓는 일들이 좀 많았고, 음식물 쓰레기통도 꽉 차 있었기에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교체하는 등 이것을 정비해놔야만 했다. 내 기준에서는 이렇게 해놓아야만 이후에도 이것들을 편하게 계속 사용할 수 있다. 사실 난 평소에도 아내가 만들어 놓는 설거지 거리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처리하는데, 그래야만 부엌이 계속 정돈되면서 다음 스텝의 일들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이것이 계속 불만이었다. 해야 할 다른 일들도 많은데 남편이라는 사람은 급하지도 않은 설거지에매달려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날도 그랬다. 쓰레기들을 정리하고 나니 그사이 설거지 거리가 몇 개 생겼기에 이번에는 이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단호박은 건드리지도 못했다. 우선순위로 따지자면 단호박 처리가 먼저였겠지만 난 설거지부터 하고 싶었다.


드디어 아내가 폭발했다. 설거지가 먼저냐, 단호박이 먼저냐 하며. 찜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단호박을 먼저 처리하고 그 이후에 설거지를 하는 게 맞지 않냐며, 나보고 일의 우선순위를 모른다고 잔소리를 했다. 순간적으로 자존심이 상한 나도 화가 났다. 시간 내에 단호박을 찌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왜 남이 하는 일의 우선순위까지 참견하냐며 맞섰다. 그리고 닦고 있던 그릇들을 싱크대에 휙 집어던지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너무도 후회가 되었다. 절대로 아내에게 화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순간적인 '욱'을 참지 못한 것이. 그리고 절대적으로 불리한 싸움을 걸었다는 것이. 이 싸움으로 서로 파업을 하게 되면 나만 일방적으로 손해 본다. 아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시어머니 즉 나의 어머니와 나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질을 낼 때는 호기 있게 했지만 그 결과는 나의 바보짓임이 너무도 분명했다.

     '이제라도 나가서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할까?'

아무튼 이 상황을 수습하고는 싶은데 나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금방 나가 사과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상황은 아내의 '후다닥 치고 나가는 성격'에 의해서 금방 정리되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서 아내와 나는 확연히 다르다. 나는 '이 문제가 왜 발생했을까? 향후 이 문제가 재발하지 않으려면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할까?'를 고민한다. 반면에 아내는 '어떻게든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만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해결책이 보이면 그 방법으로 후다닥 일을 처리해 버린다. 방금의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돌발적인 행동 때문에 아내도 화가 났었겠지만, 그것을 감정적으로 되새김질만 하고 있는 것은 우리 가족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한 듯했다. 아내는 어떻게든 빨리 당일의 아침상을 차려놓고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편을 쉽게 용서해 주는 것도 타당치는 않았을 것이다. 아내가 취한 해결책은 이것이었다.


내가 방으로 들어간 후 조금 후였다. 아내가 방으로 쑥 들어왔다.

     "빨리 갖다 대. 어디를 꼬집어야 제일 아플까?"

난 못 이기는 척 팔을 내밀었고, 아내는 내 팔뚝을 한번 꼬집었다. 그런 후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게 말했다.

     "빨리 나와서 저 두부들 좀 뒤집어. 난 샐러드 만들어야 하니까. 단호박은 내일 찌고."

멋쩍었던 나는 재빨리 부엌으로 향했다.


결과적으로 아내의 행동은 현명했다. 조금 전의 돌발 상황에 대해서 '누가 더 잘못했냐? 원인이 무엇이냐?'를 따지는 쪽에 초점을 맞췄다면, 아내와 나는 말싸움만 하다가 아침상도 못 차리고 서로 감정만 더 상했을는지도 모른다. 아내가 나와 같은 성격이었다면 그렇게 되었을 가능성이 다분히 있었다. 다행히도 아내는 나와는 정반대의 성격이었고, 덕분에 그날의 그 작은 마찰은 더 이상 문제거리가 되지 않았다. 아니 그 마찰은 우리 부부에게 더 큰 선물을 주었다. 부엌에서, 아내는 더 이상 내가 실수하는 일에 대해서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어떤 때는 내가 빠뜨린 일을 말없이 대신해주기도 한다. 나 또한 아내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아내가 원하는 일에 더 우선순위를 두고 일했다. 이후로 우리 부부에게 더 이상의 다툼은 생기지 않았다. 아내는 가끔 내게 이런 말을 한다.

     "우린 성격이 달라서 다행이야. 성격 급한 나는 꼼꼼한 자기가 챙겨주고, 우유부단한 자기는 내가 문제를 해결해 주잖아."


끝.


2023.4.15 작성


PS: 내가 이 글을 쓰자마자 아내의 후다닥 성격 덕분에 내 목숨을 구하는 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다음 글: "아내의 후다닥 성격이 살려낸 남편의 목숨"

      아내가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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