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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플마 Feb 16. 2022

허당 고수 위에는 진짜 고수가 있었다

부부 싸움에서 필승할 수 있는 최고의 전략

아내들이 부부싸움에서 이기려고 즐겨 쓰는 대표적인 전법이 소개된 기사가 얼마 전 SNS 인터넷에 올라왔다. 이 전법은 내 아내도 즐겨 쓰던 수법이라서 기사가 눈에 쏙 들어왔는데, 사실은 이 전법은 아내의 의도가 아닌 내 의도에 의한 것이라서 더 흥미가 끌렸다. 난 부부싸움 때마다 '나의 부부싸움 승리 전략'의 일환으로 아내가 이 전법을 쓰도록 유도하여 부부싸움을 끝내곤 했으며, 스스로 '부부싸움의 고수'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런 나의 비법이 기사에 나왔으니 당연히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부부가 전혀 싸우지 않고 살 수 있다면 더할 수 없이 좋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자기만의 생각대로 자기만의 방식대로 살아온 두 사람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한 집에서 살려다 보면 다툼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된다. 부부싸움이란 것은 모든 부부에게 삶의 한 부분이 될 수밖에 없으며, 어쩌면 이것은 함께 살아가는 내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부부싸움이 벌어졌다면 서로 마음 상하지 않고 슬기롭게 끝낼 수 있는 지혜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왕이면 이기면서 싸움을 끝낼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고, 그것이 바로 '부부싸움의 고수'일 것이다.


내가 읽은 기사에서 아내들은 부부싸움이 일어나면 보통 두 가지 전법을 많이 쓴다고 한다.

첫 번째 전법은 맞고틀리고는 중요하지 않은 자기만의 논리로 남편을 집요하게 공격하며, 남편이 잘못을 인정하고 확실하게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전법은, 남편의 이전 잘못들을 들춰내어 공격력을 배가하는 것이다. 과연 아내들은 이 두 가지 전법을 사용하여 남편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 기사에 따르면 오히려 부부싸움이 확대되어 상황이 더 악화된다고 되어 있다. 잘못된 전법이라는 것이다.

기사의 내용을 좀 더 살펴보자. 아내들이 첫 번째 전법에 따라 남편들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강요하면 남편들이 이 요구를 순순히 들어줄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남편은 아내의 주장이 억지스럽다고 생각하며 설사 아내의 주장이 맞더라도 자존심 때문에 당장은 쉽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싸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전법으로 아내들이 남편의 과거 잘못들까지 들춰내면 남편들은 좀 수그러들까? 이번에도 아니다. 부부싸움의 논제가 현재 사안만이 아니라 예전의 사안들로까지 확대되면서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 꼴이 되어 버린다. 이와 같이 기사에서는 아내들이 즐겨 쓰는 이 전법들을 매우 부정적으로 표현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안 좋은 전법을 나는 왜 아내가 쓰도록 유도했을까? 내 경우엔 '이전의 잘못들'을 이용하여 현재의 논쟁 사안을 희석시켰고, 그러면 부부싸움이 싱거워지곤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전의 잘못들'이란 것이 치명적이지는 않은 것이어야 하며 해프닝성 실수이면 더욱 좋다. 좀 창피하기는 하지만 내가 저질렀던 실수 몇 가지를 본 글의 말미에 참고 삼아 첨부했다. 아내가 나를 공격하고자 할 때 사용했던 내 잘못들이다. 자기 얼굴에 침 뱉기 얘기들이라서 쓸까 말까 망설였지만 이미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기에 좀 어떠랴 하는 생각도 있었다.


나의 신혼초 부부싸움 이야기다. 싸움이 발생하면 아내는 자기가 기선을 잡기 위한 방법으로, 현재의 싸움과는 상관도 없는 예전의 내 잘못들까지 들춰내 강력하게 사과를 요구하곤 했다. 그 잘못들은 내가 잘못한 것이 너무 명백한 것들이라서 난 어쩔 수 없이 사과해야만 했다. 또한 해프닝성 잘못들이라서, 사과한다고 내 자존심이 상할 사항도 아니었다. 내가 못 이기는 척하며 사과하면, 아내는 나를 제압했다는 승리감 때문에 이전에 내가 무얼 잘못했었는지를 내게 다시 상기시키며 정리해준다. 그러는 동안 아내는 애초에 싸움을 시작했던 현재의 사안은 까먹어 버린다. 그러면 싸우던 상황은 그냥 흐지부지 되어버리곤 했다. 사실 내게는 방금 시작되었던 부부싸움 사안이 더 골치 아픈 문제였는데, 그 문제가 슬며시 사라지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부부싸움이 시작되면, 아내의 주의를 예전의 내 잘못으로 유도해 볼 때가 많았었다. 속으로 '난 부부싸움의 고수'라고 생각하며. 이런 이유로 난 결혼을 앞둔 후배들에게, 일부러라도 작은 잘못을 저질러둬 놓는 것이 부부싸움에 대한 대비책으로 좋을 수 있다고 설파하기까지 했었다.


여기까지는 내가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생각해왔던 '나의 부부싸움 승리 전략'이었다. 즉, 우리 부부간 싸움에 대해서는 내가 매우 현명하게 대처했었다고 생각해왔다. 이전의 '단순 잘못'을 이용하여 부부싸움이 싱겁게 끝나도록 잘 유도했으니까.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부부싸움의 고수였던 것은 내가 아니라 아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내라는 사람이 다투고 있던 논제를 놓칠 정도로 단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내야말로 치밀한 '진짜 고수'였고, 그에 비하면 난 '허당'이었던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다른 관점에서 쓴 글이다.


신혼 초 어쩌다가 부부싸움이 시작되었을 때, 아내 입장에서는 그 상황이 잘 종료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먼저 항복하며 끝내는 것은 신혼 초 헤게모니 다툼에서는 있을 수 없다. 이왕 벌어진 부부싸움인데 이겨야 하지 않겠는가? 덤으로 싸움을 벌인 효과도 얻어내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로서, 너무 이기기만 하려다 보면 부부간에 서로 상처만 남길 수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아내는 이 어려운 일을 가장 효과적으로 처리해냈던, 부부싸움의  '진짜 고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부부싸움이 시작되면 아내는 자기의 불만이 무엇이고, 남편이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지 말싸움을 통해서 내게 충분히 전달한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이다. 만약 더 욕심을 낸다면, 나로부터  '앞으로는 어떻게 어떻게 개선하겠다.'라는 답변까지 듣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쉽사리 그런 답변을 하지 않으리란 것을 알기 때문에 아내는 자기의 생각을 전달하는 선에서 싸움의 수위를 조절했던 듯하다.

 다음 단계로 아내는 싸움을 '이기면서 끝내는' 전략을 사용한다. 아내는 과거의 내 잘못들을 들춰내는데, 일부러 심각하지 않은 것 또는 내가 실수로 저지른 해프닝성 잘못들을 끄집어낸다. 이런 사항들은 내 잘못이라는 것도 명확하고, 내가 별 거부감 없이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것들에  대해서 아내는 사과를 요구하고, 난 버텨봐야 득 될 거도 없기에 순순하게 사과한다. 그러다 보면 부부싸움의 분위기가, 내가 계속 아내한테 사과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리며, 그 싸움은 아내가 승리자가 되면서 막을 내린다.


아내는 나한테 요구하고자 했던 사항들은 다 전달했으니 싸움을 벌인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고, 덤으로 남편을 제압까지 해버렸으니 일석이조의 부부싸움을 한 것이다. 이러한 전법이 아내의 계산된 행동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매우 고단수 전법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어떤 경우에는 아내가 논점의 이탈 없이 나를 집요하게 공격했던 경우도 있었다. 아마도 불만 사항을 명확하게 제대로 해소해야겠다 싶을 때 그랬던 것  같다.  이런 날은, 내가 '내 과거의 잘못 사안'으로 아내를 유도해보려 해도, 아내는 내 의도를 파악하고는 '논점을  흐트러트리지 마쇼!'라고 했었다.


티격태격도 해가며 함께 살다 보니 이제 아내는 나의 사고 패턴, 행동 패턴 등을 꿰뚫어 보고 있다. 나도 일부러 아내의 예측 범위내에서 행동하기를 좋아한다. 아내가 나를 너무나 훤히 읽고 있어 껄끄러운 점도 있지만, 그만큼 나를 미리미리 잘 챙겨주기 때문에 좋은 점이 훨씬 많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는 내가 좋아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내가 좋아하는 이벤트를 마련하기도 한다. 난 그냥 모든 것을 아내에게 맡겨 놓으면 된다. 그러고 보니, 난 아주 전형적인 공처가의 삶을 살고 있다. 아마도 아내의 고도의 부부싸움 전략을 통해서 공처가로 길들여진 모양이다. 아내는 부부싸움에서 항상 자기가 이기는 전략을 썼었고, 난 어느새 지는 것이 습관화되어 버린 것이다. 돌이켜보니, 지면 어떻고 이기면 어떻냐라는 생각이 든다. 내 알량한 자존심보다는 부부가 서로를 잘 이해하고 보듬으며 해로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2017년 2월 18일 작성)


PS:

좀 창피하기는 하지만, 결혼 초 내가 저질렀던 작은 실수를 몇 가지 소개해본다.


한 번은 아내와 함께 어딘가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차 안에서 뭔가 사소한 다툼이 있었는데, 아내가 갑자기 차에서 내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난 '그게 편하면 그렇게 해!' 하고는 아내를 길가에 내려주고는 휑하니 혼자 집으로 왔다. 그때는 그게 서로에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무튼 얼떨결에 차에서 내린 아내는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갈아타면서 집에 와야 했고, 집에 오는 내내 '이런 남자를 의지하고 살아야 하나?'를 되뇌었을 것이다.


난 결혼 전에는 일요일만 되면 새벽부터 조기 축구팀에 나갔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곤 했었다. 그러나 결혼 후에는 일요 축구를 딱 끊었고, 아내가 마련해 둔 스케줄을 따라 영화 또는 여행 등의 데이트를 하면서 일요일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하루는 새벽부터 축구 생각으로 몸이 몹시 근질거렸다. 그래서 아내가 깨기 전에 잠깐만 나갔다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정말 오랜만에 운동장에 나갔다. 축구 회원들은 오랜만인 나를 몹시 반겨주었고, 나는 이들과 함께 운동하며 노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그런데 노는 재미에 너무 빠져서였을까?  난 잠깐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오후 4시가 넘어 있었다. 사실은 이 시간 동안 계속 축구만 한 것은 아니었고, 반주를 곁들인 식사도 하고 목욕탕에서 잡담하며 바둑도 두고 낄낄대며 당구도 쳤었다. 따라서 중간에 집으로 돌아갈 기회는 여러 번 있었는데, '조금만 더 놀다가'를 하다 보니 저녁이 가까워진 것이다. 뒤늦게 집에 가보니 아내는 행방이 묘연했다. 내가 말도 없이 놀러 나간 후 나타나지 않는 것에 대해서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밤늦게 나타난 아내는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아마 '이런 남자를 의지하고 살 수 있을까?'로 하루 종일 고민했을 듯하다.


술 마시고 차를 잃어버린 적도 있었다. 사연은 이렇다. 큰 프로젝트를 함께 끝낸 직장 동료들과 술을 거하게 마시기로 작당을 한 날이었다. 음식점에 주차를 하면서 난 주차 관리인에게 '오늘 밤은 차를 여기에 맡겨두고, 내일 찾으러 올게요.'라고 부탁했다. 당시에는 대리운전이란 것이 없었기에, 운전할 것에 신경 쓰다 보면 술을 제대로 마시지 못할터였기 때문이다. 난 그날 그 음식점에서 술을 어찌나 맛있게 많이 먹었는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언제쯤 어떻게 파장했는지, 집에는 어떻게 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무튼 기억나는 것은 내 차가 거기에 있다는 것뿐이었다. 마침 처가에 갈 일이 있었기에, 난 아내와 함께 그 음식점에 차를 찾으러 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주차장에 내 차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난 일단 주차 관리인에게 어제 맡긴 차를 찾으러 왔다고 말했다. 그런데 주차 관리인은 어이없게도, 나와 나눴던 대화는 물론 내 차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척했다. 자기가 다 뒤집어쓸까 봐 그랬던 것 같은데, 아예 내 차와 비슷한 차 자체가 들어온 적이 없다는 말까지 했다. 이 무슨 황당한 상황이란 말인가?  아내는 나를 쳐다보며 어이없어해하고 있었다. 난 어떻게든 전날 밤 상황을 기억해내야만 했다. 가까스로 난 내 차가 직장 동료의 집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술을 안 마신 동료 하나가 내 차에 우리들을  태워 자기 집으로 끌고 가 한잔 더를  했던 것이 어렴풋하게 기억났다. 아무튼 차는 찾았지만, 아내는 '이 남자 혹시 술만 마시면 사고 치는 것은 아닐까?'라고 고민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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