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일전에 우리 집의 싱크대 배수구 막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보고자 설거지 도구 및 시스템 개발에 잠시나마 심취했었고 이 기간 동안 설거지는 나만의 불가침 영역이었다. 이때의 설거지는 내게 노동이 아니고 즐거운 취미 활동이었으며 코로나로 인해 무료하게 지내던 내 삶에 큰 활력을 주었었다. 그런데 이 설거지 시스템 개발 이후에도 설거지는 내 즐거움 중의 하나가 되었다.
아내한테 자주 듣는 말 중의 하나는, '설거지가 그렇게 재미있어?'일 정도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설거지를 좋아한다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설거지를 싫어한다. 나 또한 무척이나 싫어했었다. 그래서 궁금증이 생겼다.
'나는 왜 설거지를 좋아할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내의 노동을 덜어주려는 남편으로서의 배려심일까? 하지만 그 정도로는 설명이 안될 정도로 나는 설거지를 좋아한다. 그렇다면 내가 개발한 설거지 시스템에 대한 애착이 이유일까? 하지만 (설거지라는) '노동'과 (설거지 시스템 개발이라는) '취미'는 분명하게 다르고, 난 노동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생각은 옳지 않았다.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설거지 시스템 개발 과정 중에 내게 뭔가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난 그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보고자, '설거지 시스템' 개발 과정을 글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글을 쓰는 동안 어렴풋이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생각과 글의 흐름에 맞추어 억지 답일지언정 이리저리 맞춰보고 버리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어느 하나의 답이 딱 만들어졌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아내에 대한 아주 오래된 궁금증 하나도 함께 해결되었는데, 그로 인해 내가 찾은 답에 대해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가족 간의 사랑이란 것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가?'
였다. 설거지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사랑 얘기를 한 듯 하지만 글을 끝까지 읽어보시면 다들 이해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이 글의 실질적인 주제라고 말하고 싶다.
'다시 이 글의 첫 주제로 돌아가 보자. 글의 서두에서 나는
'나는 왜 설거지를 좋아할까?'
라는 질문을 던졌었고,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고 했다.
그 이유가 설거지 시스템 개발에 대한 애착은 아니었다. 그리고 단순하게 아내의 노동을 덜어주려는 남편으로서의 배려도 아니었다. 도대체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은, 다음의 질문으로부터 찾을 수 있었다.
'아내는 왜 음식 만들기를 그토록 좋아할까?'
예전부터 아내가 음식 만들기를 유달리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 심중에는 저 질문이 항상 있어왔다. 이에 대해 난 '아마도 엄마들이라는 사람들, 아내들이라는 사람들은 다 그런가 보다' 정도로만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음식에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는 지를 아주 가까이서 직접 보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작년 3월 경에 어머니께서 요양차 얼마 동안 누님 집으로 떠나셨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음식 살림은 아내가 도맡아 해야 했고, 나도 설거지 시스템이란 것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난, 아내가 음식을 만들 동안, 설거지 시스템을 테스트해볼 겸 부엌에 함께 상주하기 시작했다. 설거지 거리는 발생되는 즉시 나의 처리 대상이었고, 겸사겸사 난 아내의 보조 역할도 했다. 그러면서 부엌에서 아내와 함께 지내다 보니, 아내에게 음식에 관한 한 '대충' 먹자라는 단어는 없고, 어떻게든 나와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어 하는 것이 보였다. 음식에 과잉 노동을 쏟아부을 정도였다.
그래서 한 번은 아내에게 물어봤다.
'음식하기가 그렇게 좋아? 귀찮지 않아?'
'생각 안 해 봤는데. 몰라. 그냥 좋은데.'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근데 그걸 따져봐야 되나? 그냥 좋으면 하는 거지.'
아내의 이 말로부터 아내가 진심으로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왜 좋아하는지는 아내 말대로 더 따져볼 일은 아니었다. 그냥 좋아서 하는 거였다.
[이 부분은 건너뛰기해도 됩니다.
나는 설거지를 좋아하고 아내는 음식 만들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늘어놓은 얘기입니다.]
그리고 이 즈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아내가 음식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난 인지하지 못했지만 뭔가 본능적으로 답을 찾은 바가 있었나 보다. 그래서였는지 난 아내의 보조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이제 내 보조 역할은 양도 많아지고 속도도 빨라지기 시작했고 아내에게 도움이 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보조 역할로는 빵점이었었다. 내 일손이 워낙 느렸고, 또 시키는 일보다는 설거지에 더 신경을 쓰고 있을 때가 많아 음식을 망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아내는 내게 일을 거의 주지도 않았었다.
그러다가 8월 경 어머니께서 집으로 돌아오셨는데, 이미 살림의 주도권은 아내에게 넘어가 있었으므로 어머니는 일체의 집안 살림에 관여를 안 하셨다. 또한 많이 쇠약해지셔서 그렇게 하기도 힘들었다. 이때부터 음식 사랑에 대한 아내의 진면목을 난 더 잘 볼 수 있었다. 아내는 새벽마다 전혀 다른 3종류의 식단(어머니 것, 아들 것, 우리 부부 것)을 구성하여 아침상들을 차려야 했는데, 이전보다 상 차리기가 몇 배는 더 어려워졌다. 어머니의 식단이 몹시도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그것을 자세히 설명하려면 족히 한 페이지는 해야 될 정도이다. 아무튼 출근 준비도 해야 하는 아내 입장에서는 새벽녘의 아침상 차리기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내는 어머니가 맛있게 드셔야 한다면서 음식에 온 정성을 다 들였다. 마치 어머니가 이 음식을 드시면 아주 행복해하실 거라는 믿음이 있는 듯이. 그것만이 아니다. 아내는 아들의 아침상도 아들의 입맛에 맞춰 정말 맛갈나게 차렸다. 아들은 '맛있는 거, 맛있는 거'를 수시로 외치는 애인데, 아내는 그런 아들한테 진짜 '맛있는 거'를 해주고 싶었나 보다. 마치 그 음식을 먹으며 아들이 행복해할 거라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듯이.
아내의 일이 이렇게 많아진 만큼 이제는 내 보조 역할도 아주 중요해졌다. 내가 없으면 도저히 그 많은 종류의 음식들을 만들어낼 수 없다. 음식 보조 외에 또 하나 아주 중요한 것이 있다. 설거지이다. 아내가 이렇게 음식 준비를 하다 보면, 설거지 거리가 순식간에 수북이 쌓인다. 이것들을 재빨리 정리해주지 않으면 부엌이 아주 혼란스러워진다. 각종 집게류들, 숟가락들, 도마들, 주걱들, 보조 그릇들, 프라이팬 들, 등등. 난 부엌 일중에서 제일 자신 있는 것이 설거지였으므로 이것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정리해나갔다. 이러면 아내가 음식 조리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다. 또한 식사 후에도 즉각적으로 설거지를 끝냈다. 아내는 이것을 매우 좋아했다. 왜냐하면 식사 후의 커피 한잔을 다소나마 호젓한 분위기에서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본론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상황에 대해서 장황하게 많은 지면을 할애했는데, 이제는 이것들로부터 정리를 좀 해보자. 우선 내가 설거지를 하면서 또 열심히 보조를 하면서 흐뭇해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 하나이다. 아내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난 아내가 음식을 만들면서 행복해한다는 것을 무의식 중에 느끼고 있었고, 그래서 아내가 편안하게 음식을 만들며 더 큰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거였다. 그리고 내가 아내의 행복을 바랐던 이유는, 아내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지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아내에 대한 질문으로 옮겨 가보자. 아내는 왜 음식 만들기를 좋아했을까? 아내는 맛있는 음식으로써 다른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고 그 이유는 다른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본인이 행복을 느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는 아주 중요한 인생의 교훈을 깨달을 수 있었다. 행복이란 것을 본인의 직접적인 욕구 만족을 통해서 구하지 않고, 타인의 행복을 통해서 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현명한 방법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아니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얘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즉, 자신의 행복을 직접 추구하지 않고 자기 옆의 타인을 행복하게 만들고 그 타인이 내뿜는 행복의 파장을 흡수하며 행복해지는 방법이야말로 가장 최상의 행복 메카니즘이라고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만약 두 사람이 서로를 이용하여 이러한 행복 메카니즘을 작동시킨다면, 그들의 행복 지수는 무한대로 상승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니 내가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가 나를 행복하게 해 주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고 나도 은연중에 아내를 행복하게 해 주고자 스스로가 더 행복해지려는 상태를 만들려고 했고 그래서 다시 아내도 행복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설거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내의 행복감 고조를 위한 것이었는데, 그것이 나의 무의식적인 심리기제에 의해서 작동되던 것이라서 답을 쉽게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설거지 시스템 개발 덕분에 아내와의 부엌 생활이 많아지면서 난 아내의 행복 메카니즘을 인지할 수 있었고 나 또한 아내의 영향을 받아 동일한 행복 메카니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의 발견을 통해서 얻게 된 가장 큰 수확은,
'가족 간의 이런 사랑이 있음으로써 우리는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는 점이다. 정말 아주 쉬운 '행복해지는 법'이다.
이 글을 결론지으면서 난 내가 발견한 행복 메카니즘이 무척 만족스러웠고,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면 더 행복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열심히 설거지를 하는 나의 행동도 그런 차원에서 나온 듯싶다. 그러면서 나의 설거지로부터 아내가 혹시 어떤 감동 같은 것을 받았는지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래서 물어봤다.
'내가 설거지를 잘해줘서 편하지 않아?'
난 내심 아내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아니, 생각 안 해 봤는데. 그냥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 아냐? 좀 심하게 좋아하기는 하지. 음식보다 설거지가 우선이라 음식할 때 방해되기도 할 정도니.'
난 좀 머쓱해졌다. 실체도 없는 행복 메카니즘 이론을 억지로 만들어 자아도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글의 서두에서 내가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글쓰기 덕분이라고 했는데, 어쩌면 이 답은 글쓰기의 덕분이 아니라 부작용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결론을 끄집어내려다 만들어진 엉터리 이론.
약간 머쓱해있던 중 아내의 이어지는 한마디가 나를 다시 힘나게 했다.
'우린 참 천생연분이야. 난 음식을 좋아하고 자긴 설거지를 좋아하니 서로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 수 있잖아?'
그렇다. 억지 이론이면 어떻고 실체가 없는 이론이면 어떠랴? 이론이라는 것이 뭐 중요하겠는가? 아내는 음식을 만들며 행복하면 되는 것이고, 난 설거지를 하면서 행복하면 되는 것이지.
행복 메카니즘이 어떻든 우리 가족들은 가족들 서로를 통하여 행복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참으로 가족의 소중함이 다시 일깨워지는 밤이다.
(2022년 1월 22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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