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난이도는 높았습니다. 출국하기 직전 외면했던 일은 결국 근심의 알을 깨고 나왔고, 귀국하면 가장 먼저 낯 뜨거운 재회를 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여행 내내, 바퀴가 고장 난 20kg 캐리어를 짊어지고 다니는 마음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속, 밥줄로 꽁꽁 묶인 작은 운명에 수시로 귀 기울여야만 했죠. 고작, 한 시간 삼십 분 만의 비행으로 모든 일로부터 달아나, 자유를 획득할 수 있을 거란 착각을 한 나의 어리석음이었습니다.
-지금 해외라, 모레쯤 연락드려도 될까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누군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고개를 조아리며, 공손하게 두 손을 오므린 채 통화를 마치는 것으로 며칠의 시간을 벌어놓았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이건 여행으로 둔갑한 회피였다는 사실을 말이죠. 나는 우연히 한 장의 사진을 본 후, 며칠 만에, 충동적으로 이곳에 온 것이었습니다. 그저, 평범하게만 보이는, 교토 골목의 홍등 사진이 왜 나의 가슴 속에 알 수 없는 불씨를 지핀 것이었을까요.
길을 나섰습니다. 달리 목적지가 있는 것도, 사진 속 홍등 골목을 찾으려는 이유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눈앞의 작은 유혹들을, 고풍스런 목조 주택단지를 따라 걸으며 음미했습니다. 그러다, 오후 네 시 태양에 의해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어느 골목 선술집 간판에 닿았습니다. 나는 정체모를 이끌림에 용기를 내어, 노렌(暖簾)을 젖혀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히토리데모, 이이데스까?
아날로그 TV를 보며 홀로 담배를 태우던 '마스터'는
-하잇, 도죠.
하며 자리를 안내했습니다. 혼자여도 괜찮냐는, 어색한 일본어를 구사하는 나에게 사진 메뉴판을 건네주는 마스터는 도시의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가령, 어느 도시에선가 직원의 무뚝뚝함이 두려워, 차라리 키오스크가 편하겠다, 하는 마음이 들곤 했었는데, 이곳 마스터는 무뚝뚝하지만 왠지, 손님에 대한 호기심을 숨기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나는 소심하면서도, 애써 당당해 보이는 말투로,
-토리아에즈, 나마! 오네가이시마스
하며 생맥주를 주문했습니다. 잠시후, 나는 마스터가 가져온 생맥주를 한 번에 비운 다음,
-크~ 코노 비루가 이찌방 우마이데스!
하며 감탄했습니다. 사실이었습니다. 이곳 맥주가 정말 맛있는 것인지, 아니면 한국에서부터 짊어지고 온 갈증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토록 시원한 생맥주를 마셔본 적이 없었기에, '입에 발린 말'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음에도 ‘가장 맛있다’ 라는 말 이외엔 표현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마스터는 미소를 띄며 자신의 잔에 맥주를 가득 채운 후,
-간빠이!
하며 건배를 외쳤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마스터도 함께 잔을 부딪힐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반가운 나머지,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라는 어색하지만, 무엇보다 진실한 한마디를 해버렸습니다.
나는 나의 부족한 일본어로부터 오히려 큰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중요한일을 앞두고 외면하는 것이 아닌 정말로 잊은듯한, 원래부터 ‘나’라는 존재가 없었다는 쾌감 마저 들게 했습니다. 마치, 이곳에서 새로 태어나 걸음마에 재미를 붙이는 어린 아이처럼 말이죠.
선술집을 나오는 순간, 나는 본래의 ‘어른 아이’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어두워진 골목은 어느새, 길게 늘어졌던 나의 그림자를 삼켰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엔 외로운 홍등이 켜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숙소로 돌아가는 나의 발걸음을 고독한 빛으로 조명했습니다.
나는 붉게 채색된 고독을 따라 걸으며, 내가 보았던 사진을 비로소 완성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