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글

by 서향록



여덟 시쯤 저녁 식사를 한다. 여행 에세이를 읽다, 고개를 몇 번 끄덕이며 졸음과 싸우다 보면, 밤 열 시를 넘긴다. 노트북을 챙긴다. 전원선과 마우스는 챙기지 않는다. 운전석에 앉는다. 십오 분 동안 운전해, 24시 카페에 도착한다.

등받이가 없는 자리에 가방을 두고 계산대로 간다. 얼그레이를 주문하며 주차시간 여부를 묻는다. 직원에게 “세 시간 무료 넣어드렸어요”라는 말을 듣고 돌아가 맥북을 켠다. 알람이 한 시간 뒤 울리게 설정한 후, 내가 무슨 일을 하듯 내버려둔다. 가령, 유튜브 댓글에 ‘대댓글’을 달거나, 새로운 카메라 리뷰를 본다던가, 뉴스 기사 따위를 읽는 행위를 한다.

삼십 분쯤 지나자, 마우스 없이 움직이는 손가락이 점점 귀찮아진다. 스마트폰을 꺼낸다. 깨톡 답장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인스타 피드를 내려보다, 반쯤 벗은 여성의 사진 앞에 시선이 머물 즈음, 알람이 울린다. 노트북 배터리가 62퍼센트로 떨어져 있음을 확인한다. 모든 인터넷 창을 닫고 비행기모드로 전환한다. 그리고 메모장을 켠다. 글 쓰는 일 외에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도록 상황 설정을 마친다. 반쯤 벗은 여성의 사진이 머릿속에 맴돌지만 애써 참아낸다. 이로써 나만의 ‘배수의 진’이 완성된다.

양손을 키보드 위에 올린다. 의식의 흐름대로 두서없이 나열한다. ‘밑도 끝도 없이 생각나는 단어를 나열하다 보면 우연히 퍼즐이 맞춰지겠지?’라는 기대를 미련 없이 버린다. 이때쯤, 시계를 한 번 본다. 아직 십오 분 밖에 지나지 않은 사실이 신기하다. 큰일이다. 한 시간 사십오 분 후에 차를 빼야 하는데, 아직 조바심이 들지 않아서 큰일인 것이다. 그간 기록해 놓은 메모를 읽으며 글감을 찾는다.


‘그것은 정중하지만, 가시가 있는 말이었다.’


라는 문장을 메모한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최근 누군가의 말 속에서 통증을 느꼈던 순간을 떠올려보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반대로 생각해 본다. 누군가에게 통증을 건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나, 머릿속 지구본을 몇 바퀴 돌린다. 모르겠다. 그러나 무언가 찾아낸다. 누군가에게, 가시를 세운 적이 있었다.


---


진동이 울렸다. 발신자는 ‘조 아무개’였다. 몇 년 만에 보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건 반가움이 아닌 부담이었다.

“여보세요?”

“오랜만이야. 다름이 아니라, 다음 주 토요일 시간 있어?”

수화기 너머로 느껴지는 공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잘 지냈냐, 그동안 왜 연락이 없었냐, 라는 등 근황 토크를 패스해서만은 아니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것도 자정이 가까워졌을 때, 이런 전화가 걸려 왔을 때 느껴지는 특유의 긴장감 때문이었다. 마치 데자뷰랄까.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만약, 처음부터 “그날 뭐 없는데요”라고 답하는 순간, 상대의 부탁을 수락해야만 하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이미 상대의 ‘첫 질문 함정’에 말려들어 거절하지 못해, 봉사하다시피 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 부탁한다는 내용을 신나게 설명한 후에, “미안하지만, 페이는 많이 못 줘”라던가 “다음에 한잔 살게.”라는 말로 쐐기를 박는 사람도 있었다. 유사한 경험을 더이상 하지 않기 위해, 나는 ‘정중하지만 가시가 있는 말’을 연구했다. 조 아무개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글쎄요...다음 주 토요일 오전에 어딜 좀 다녀와야 하긴 하는데.. 혹시 무슨 일이시죠?”

“학원 학생들 발표회를 하거든. 촬영해 줄 사람이 필요해서 연락했어”

“아 그러시군요. 혹시 행사 시간, 규모가 어느 정도 되나요?”

경험상, 이렇게 되물으면 상대가 약간의 부담을 느끼기 시작해, 무페이 혹은 열정페이로 부탁하려는 마음이 위축된다. 그렇게 “내가 다시 전화 줄게.”하며 다시 연락이 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조 아무개는,

“00 아트홀 대여했는데, 행사장은 150평 정도 되고 시간은 다섯 시간 정도라고 보면 돼”라며 당당하게 대답했다. 나는 의외라 생각해 되물었다.

“아 그렇군요. 그럼, 공연 전체 촬영을 원하시는 건가요?”

“응 맞아. 괜찮다면 메이킹도 촬영해 주면 좋고”

나는 확신한다. 상대가 ‘금액 제시’에 대한 패를 공개하지 않고, 이런 모호한 조건 제시,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의 화법이 계속된다면, 십중팔구 ‘내가 영상에 투자할 돈이 얼마 안 되거나 아예 없으니, 나의 인맥인 네가 부탁 좀 들어줘라!’라는 뉘앙스다. 이때, 상대가 더욱 부담을 느끼게, 패를 보여줄 수밖에 없도록 구체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그럼, 카메라 한 대만 대여해 가면 되나요? 만약, 메이킹까지 찍는다면 한 대로는 부족해서요.”

이 단계에서 상대가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노골적인 금액을 제시해야겠지만, 보통은 ‘카메라 대여’라는 부분에서 멈칫하기 마련이다. 조 아무개도 마찬가지였다.

“아 그래? 대여하는데 얼만데?”

“카메라, 렌즈, 삼각대, 짐벌 등 다 빌리면 십 오만 원에서 이십 만 원 정도 해요”

“엥? 그렇게 비싸? 너 카메라 없어? 그냥 니 꺼 한 대로 찍자!”

“저 카메라 없어요. 매번 대여해서 쓰고 있어요”

“응? 영상 한다는 애가 카메라가 없어?”

조 아무개의 속내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내색하면 안 된다. 여기서 2루타를 쳐야 하기 때문이다.

“네 없어요. 보통 혼자 일하지 않고 촬영팀 꾸려서 나가거든요. 촬영팀 예산 내에서 움직이다 보니 개인 카메라는 별로 쓰지 않거든요”

이쯤 되면, 상대는 이판사판이라 생각해, 마지막 패를 뒤집는다.

“아 그렇구나. 너한테 십오 만 원 줄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힘들겠네”

바로 이 대목에서, ‘정중하지만 가시가 있는 말’로 쐐기를 박는다.


“네? 십오 만원이요? 아...요즘 그 정도 예산으로는 아마 아무도 구하기 힘드실 거에요”


이렇게 인연이 단절된 경우가 조 아무개뿐만이 아니다. 처음엔 소소한 인연을 잃게 되어 내심 씁쓸한 마음이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멀어질 인연은 어차피 오래 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후회는 없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까지도 변함없다. 나는 서로의 권리와 가치를 존중해 주는 소중한 인연에 잘할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


여기까지 쓰고, 시계를 본다. 한 시 오십 분. 남은 주차 시간은 십오 분. 짐을 챙겨서 카페를 나간다.

다음 날, ‘배수의 진’까지의 과정을 반복한다. 어제 쓴 글을 읽는다.


“아, 왜 이런 글을 썼을까?”


상당히 엉성한 글임을 느낀다. 마치, 내가 현명한 처세술을 부리기라도 했다는 식의, 어설픈 자기계발서의 한 대목 같아 부끄럽다. 그저, 푸념에 불과한 글이었음을 깨달음과 동시에 후회한다.

‘이 글을 보고, 누군가 자신을 저격했다는 괜한 오해를 하면 어쩌지?’

‘나를 너무 까탈스럽고 비싸게 구는 사람으로 생각하려나?

‘괜히 이런 글을 썼다가, 들어오려던 일도 안 들어오면 어떡하지?’

등의 자기검열에 착수한다. 글을 삭제할까, 아냐. 나름 비장한 마음으로 쓴 글이라 지우긴 아까워 일기장에 옮긴다. 그리고 몇 달 후, 나름의 액자식 구성으로 다듬고 마무리해서 ‘브런치’에 올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새봄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