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에게

바른이가 보내는 편지

by 서향록


편지를 받자마자 알았어.

나 사실, 요즘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거든. 결국, 사는 게 해결책이 아니었나, 하는 그런 마음. 왠지, 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 같아서, 오랜만에 편지 쓸까, 생각하고 있었어. 기억나?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한글날에 같이 상 받았던 날. 너는 ‘김새봄’, 나는 ‘김바른’으로. 우린 그 상을 참 창피해했었지. ‘새로운 봄날’이라는 이름 뜻을 부끄러워하던 너의 어릴 적 모습이 생각난다. 근데 그때나 지금이나, 난 그 이름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어. ‘바르고 정직한 삶을 사는 마음’은 왠지, 내 이름 먼저 지어놓고 뜻을 갖다 붙인 느낌이었거든. 너가 생각 해도 나랑 안 어울리지? (웃음)

응. 맞아. 그 주정뱅이가 지은 이름.

나 사실, 너한테 부러운 게 하나 있었다. 엄마랑 둘이 사는 거 말야. 나,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그 인간이랑 살았거든. 아니, 버텼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아마 나만큼 종교 많이 가져본 사람은 없을 거야. (웃음) 매주 일요일이 되면 오전은 교회, 오후에는 절. 또 뭐였더라...아무튼, 사이비라고 알려진 곳도 막 찾아다니면서 기도했거든.

제발 그 인간 좀 죽여달라고.

어느 날인가, 술에 절어 들어와서는 인사 똑바로 안 하냐, 라면서 소주병을 집어 던지더라고. 다음날, 피멍이 든 내 팔을 보더니,

"난 너한테 손댄 적 없어. 니가 재수 없게 맞은 거야“

라면서 자기는 가정폭력을 안했다는, 기적의 합리화를 하더라?


지금까지 같이 사는 엄마를 보면,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싶어. 차라리 이혼 하고 말지.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는 걸까?


중학교 3학년 때, 진로 상담인지 뭔지 받았을 때, 담임이 나한테 그러더라?

“화목한 가정이 부럽겠구나”

내가 아닌데요, 하고 대답하니까, 동정인지 조롱인지, 헷갈리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혀를 차더라. 그게 너무 짜증이 나서, 너한테 울면서 하소연했었거든. 그때, 네가 세상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끼면서,

"지랄하네. 씨발새끼“

라고 대신 욕해줬던 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 절대 잊을 수 없을 거야. 그 한마디에, 나 기분이 많이 풀렸었거든. 네가 그랬지. 불완전한 아이가 바라는 게 화목한 가정일 거라는 생각이 참 단순하다고. 맞는 말이야. 왜 어른이라는 작자들은 보이는 걸 해결하려고만 했을까. 아니, 제대로 보기나 했을까? 생각할수록 웃긴 거 같아. 왜 평소에 도덕, 예의범절이란 걸 입에 달고 다니는 인간들 손에 늘 회초리가 들려있었을까? 심지어 윤리 선생한테 뺨 맞은 애도 있었지?(웃음) 왜 그렇게 폭력을 남발했던 건지. 지금까지도 이해가 안돼.

아, 근데 좋은 점도 있었다. 체육 시간 전에 우리 반 남자애들이 담배 피우다 걸려서, 걔네 맞고 벌받느라 수업 안 한 적 있었거든. 덕분에, 그날은 보라돌이 체육복 안 입게 되어서 너무 편했어. 이게 참, 고장 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다더니, 그럴 땐 참 좋았어.

‘은따’(은근한 따돌림)라는 말이 있었지? 나는 거기에 해당했던 거 같아. 노골적으로 괴롭힌 애들은 없었지만, 왜 있잖아, 도시락 뚜껑 열었더니 밥 위에 분필 가루가 뿌려져 있었던 애도 있었고 자습 시간에 자고 일어났는데 머리에 씹던 껌 붙어있던 애도 있었잖아. 난 그런 일은 당하진 않았었으니까. 오히려 관심 밖이었지. 그냥, 멀리서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자기네들끼리 속닥거리거나, 급식소 줄에서 보란 듯이 새치기를 하는 정도가 다였던 거 같아.

근데 생각해 보니, 오히려 그때가 좋았던 거 같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그 고요가 참 좋았거든. 네가 처음 말을 걸어 줬던 때도 그 시기였어.

우린 다른 미래를 바랐던 거 같아. 넌 이 지긋지긋한 학교를 졸업하고 빨리 유학을 가고 싶어 했지. 공부도 워낙 잘했으니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말을 넌 자주 했었어. 근데 난,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더라. 어딜 가고 싶은 생각보다, 그냥, 대학이고 뭐고, 내가 빨리 돈 벌어서, 그 지긋지긋한 집구석에서 나오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거든.

네가 캐나다에서 5년 만에, 잠깐 돌아와서 했던 말 기억나? 이제 다신 안 올 수도 있다는 말. 사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네 눈으로부터 이미 느끼고 있었어. 너의 불완전함을. 텅, 비어 있음을. 그리고 죽음을. 내가 고스란히 비쳐질 정도로 공허한 너의 두 눈을 떠올리니, 지금 편지를 읽으면서 이런 마음이 들어.

참 다행이다.

불완전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바라는 게 화목한 가정이 아니듯이, 어쩌면, 죽음이라는 단어가 삶의 반의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그래서인지, 너의 죽음은, 너의 수많은 선택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어. 사실, 생각해 보면, 죽음은 늘 도처에 있었어. 지금도 한 발만 내딛으면, 선을 넘기만 하면 그 어떤 고통도 느낄 새 없이 너에게로 갈 수 있어. 어쩌면 너는, 한 뼘도 안 되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한 죽음이라는 경계선을, 그냥 한 발 내딛은게 아닐까?

마치, 너의 이름처럼, 너는 그저 새로운 봄으로 건너간 것일 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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