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

by 서향록


너의 스마트폰이 울린다. 옆에서도, 앞자리에서도 울리는 재난 경보음. 곧 사방에서, 인간을 대신한 절규

가 퍼진다. 모두 당황한 듯, 고개를 제각각 움직이며, 동시에 유사한 물건을 꺼낸다. 이 기이한 광경에 너

는 흥미를 느낀다. 누군가는 스마트폰을 떨어뜨리고, 누군가는 당황한 듯 비명을 지른다. 곧, 이 공간은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식된다. 지하철이라는 거대한 관 속, 모두가 혼란스러운 와중에 너는 생각한다.

‘이건 일종의 앙상블이다.’

강남역 10번 출구. 너는 어제와 다른 분위기를 느낀다. 언뜻 보기에 큰 차이는 없다. 그러나 평소보다 자

주 들리는 자동차 경적, 길 위의 사람들이 모두 한 곳을 올려다보고 있다. 너는 숨을 삼키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그들과 하나가 된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을 모방한다. 화려한 불꽃이 전광판 위를 흐른다. 그 붉

고 아름다운 장면 앞에서, 너는 잠시 넋을 놓는다. 그러다 주머니 속 부름에 의해 현실로 돌아온다. 서희

의 메시지.

“나 도착.”

5분을 걸어, 너는 카페에 도착한다. 멀리서부터 너를 추적하는 그녀의 눈동자. 서희 앞에 앉자마자, 너는

알아챈다. 그녀의 목선까지 얼룩진, 붉은 눈물의 자국을.

“다행이야.”

너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너에게 시선을 떼지 않으려는 서희를 바라볼 뿐이다. 마치 너를 헤엄치게 하

려는 듯한, 붉은 눈망울을. 영원히 깨어나길 거부하는 그녀의 붉은 꿈속을.

너는 하얗고 보드라운 서희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카페를 나선다. 서희에게 그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사방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멈춰 선 차들 사이로 사람들은 달린다. 그러나 너는 뛰지 못한다. 서희

가 몸에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듯, 서희는 너의 몸에 엉겨 붙는다. 그녀의 짙은 자

스민 샴푸 향아 코 끝을 스치자, 너의 하반신은 반응해 버린다. 그녀의 뜨거운 숨결이 귓전에 닿을수록,

너는 걷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깨진 유리가 길 곳곳에 널렸 있다. 너는 반쯤 무너진 유리벽 너머, 헐벗은채 쓰러져 있는 마네킹과 눈이

마주친다. 그곳에서, 오십 대로 보이는 여성이 무언가를 정신없이 주워 담는다. 그 모습을 보자, 어쩐지

너의 하반신이 조금 가벼워진다.

전광판에 도착하자, 서희의 몸이 서서히 풀린다. 둘은 같은 곳을 올려다본다. 더욱 짙어진 불꽃이 결국

전광판 밖으로 빠져나온다. 건물은 순식간에 불에 휩싸인다. 너는 그 광경이 그저 아름답고 신기하다. 그

러나 서희는 그렇지 못한가 보다. 그녀의 눈에서 한 줄기의 붉은 빛이 흐른다.

둘은 서로를 본다. 서희의 붉은 눈에서, 너는 너를 본다. 두 개의 붉은 시선이 포개진다.

그 순간, 세상은 숨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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