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조건반사

by 서향록

양보를 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것이 왜 옳은지에 대해서 배웠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렇게 해야 올바른 사람이라는 것과, 배운 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이런 것들을 외워야 시험에서 틀린 개수대로 매를 맞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똑똑히 배웠습니다.


‘전철에서 어르신을 만나면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학창 시절, 도덕이라는 과목은 언제나 이 같은 인간의 행동 지침을 요구했습니다. 그 문장은 내 안에 남아, 어느 순간부터 판단이 아닌, 무릎을 치면 발을 들어 올리는 듯한 조건 반사처럼 작동했습니다. 양심인지 강박인지 구분할 겨를도 없었지요. 나는 그것을 구분할 능력이 없는 학생이었고, 그 사실을 문제 삼을 필요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나는 다릅니다. 정확히 말하면, 다르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고백하자면, 나는 양보를 잘 하지 않습니다. 내 컨디션이 허락하지 않을 때, 타인을 고려하는 일은 사치에 가깝습니다. 탈진한 몸으로 어지러운 지하철에 앉아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윤리의 장이 아니라 생존의 공간으로 바뀝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볼 뿐입니다. 그것이 회피이자 방어이며, 내가 터득한 가장 적절한 무관심의 방식입니다.

이럴 때 나는 기술 문명을 높이 평가하게 됩니다. 시선을 고정시켜 주는 사각형의 화면은, 나에게 요구되던 도덕적 즉각 반응을 유보시켜 줍니다. 누군가를 보지 않음으로써, 나는 판단하지 않을 권리를 얻게 되니까요. 판단하지 않음으로써, 나는 사소한 책임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진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중학생이던 2000년대에는, 그런 장치가 없었습니다.
손에 쥔 만화책조차 없던 날이면,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사람들로 향했습니다.

어느 날, 전철 문이 열리고 굽은 허리의 노인이 들어왔습니다. 중절모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 쪽으로 힘겹게 걸어왔습니다.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 내 안에 심어져 있던 어떤 장치가 작동했습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내 몸이 먼저 일어났습니다.


-여기 앉으세요.
-아이고, 고마워요.


그것은 내 목소리가 아닌, 도덕 선생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는 내 자리에 앉았고,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습니다. 바로 옆에, 노인을 위해 마련되었다는 좌석이 비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자리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불쾌했습니다. 내 선의가 오작동한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규칙을 어긴 것도 아니었고, 내가 자발적으로 일어나 자리를 내어드린 것이었지만, 결과는 비합리적이었습니다. 나는 앉을 수 없었고, 그는 굳이 내 자리를 선택했습니다.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는 사례였습니다. 양보의 결과가 미덕의 부작용을 낳았다,라고 여길 수 있었지요.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자주색 베레모를 쓴 사람이었습니다. 붉은 조끼의 등에는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내 쪽을 보고 있었고, 그 눈에는 뻔한 요구가 담겨 있었습니다. 설명은 필요 없었지요. 나는 일어났습니다.


-아이고, 고마워 학생.
-아닙니다.
-그런데 학생, 교회는 어디 다녀?
-교회요? 안 다니는데요.
-뭐? 예수님 안 믿으면 천국 못 가는데?


그는 그 말을 시작으로, 내 앞에서 설교를 이어갔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하나의 예시가 되었습니다. 그 공간에 있던 모든 사람을 대변한 교육의 대상이 되었지요. 모두의 시선이 내쪽을 향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종교는 때때로 개인을 공공연히 사용합니다. 타인의 동의 없이도 가능하지요.

그때,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이, 아줌마! 조용히 해!

-뭐라고? 지금 중요한 얘기 하고 있는데, 당신 뭐야!?


실랑이가 벌어졌고, 나는 그 틈을 타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그 어떤 대응도 없이, 그저 불쾌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선이었지요.

그날 이후, 나는 깨달았습니다.


양심은 선량한 인간의 본심, 혹은 훈련으로 이식된 결과물이 아닌, 상황에 따라 호출되는 장치에 불과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장치는 생각보다 자주, 타인의 필요에 의해 작동한다는 사실을요.

그날 이후, 내 양심은 도덕 선생님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나는 이제야 선택합니다.
누구든 보지 않을 자유를,
양보하지 않을 권리를,
그리고 착한 인간이 될 ‘필요'를 망각할 권리를.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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