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포티

by 서향록

공포의 대상이 있었습니다. 동네 중·고등학생 형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형도 아저씨도 아닌, 열 살쯤 많은 거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지나가는 내 또래 친구들에게 늘 겁을 주었고, 재수 없게 오락실 근처 으슥한 곳에서 마주치면 어김없이 시비를 걸었습니다. 나를 포함해 한 번이라도 ‘쎈타’를 까이지 않은 친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늘 눈앞을 가리는 머리를 하고 있었고, 바지는 허리통보다 넓었으며, 교복은 어김없이 풀어헤쳐 입고 있었습니다. 그 패션은 다른 의미에서의 교복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가방은 한쪽 어깨에 대충 걸쳐 있었고, 걸음걸이는 마치 ‘나는 세상을 지루해한다’는 어떤 선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모든 것이 어린 나에게는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거인들은 사십 대 후반이 되었고, 이제 사람들은 그들을 ‘영포티’라 부릅니다. 나 역시 얼마 후 이 단어에게 삼켜지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들과 철저히 거리를 두고 싶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내 안 어딘가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그 시절의 ‘노랑머리’와 거리를 두고 싶습니다.


1996년, 고양시 성사동의 빌라 단지.
초등학교 2학년이던 나는 원당역이 새로 생기고, 이웃들이 하나둘 일산 신도시로 이사 가던 그해를 잊지 못합니다. 마당이라 부르기엔 비좁았지만, 그곳에는 주차장과 화단이 있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온갖 놀이를 했습니다.

그날도 나는 영수, 동환과 팽이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노란 머리의 낯선 형이 다가왔습니다.


-그거 줘봐. 내가 보여줄게.


나는 반말도 존댓말도 할 수 없어 그저 말없이 팽이를 내밀었습니다. 그가 서투른 손놀림으로 줄을 감는 도중, 중간쯤에서 줄이 버섯처럼 톡, 하고 빠져나갔습니다.
“에이 X발! 되는 일이 없네.”

그 말과 함께 팽이는 화단 벽에 처참히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우리는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두색 88 팽이의 파편을 고개 숙여 줍는 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외면을 했습니다.


-뭐! 뭘 봐, 이 좆만 한 새끼들아!


그 한마디로 귓전의 공기가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 마당은 전장의 냄새가 났습니다.


며칠 뒤, 그 노랑머리가 살던 빌라에서 또 다른 노랑머리가 나타났습니다. 내가 올려다보았을 때 어림잡아 키는 180을 넘었고, 몸에는 알아볼 수 없는 짐승 문신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는 질겅질겅 껌을 씹으며 다가왔습니다.


-뭐 하냐?
-팽이 치는데요.
-야. 이리 줘봐 봐.


이번에는 영수의 LG트윈스 팽이를 집었습니다. 그는 손만으로 팽이를 돌리더니, 슬리퍼를 벗어 옆구리를 살살 두드렸습니다.


‘또르르르’


깡통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마당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안심했습니다. 이 형은 며칠 전 그 형과는 다를 거라는 안도감이었지요.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어제의 노랑머리를 포함한 세 명의 무리가 다가왔습니다. 머리색은 제각각이었고, 웃옷은 벗은 채 각자 다른 동물을 등에 달고 있었습니다.


-야, 담배 사러 간다더니 왜 여기서 쳐 놀고 있어?
-재밌잖아.


그는 담배를 문 채 턱으로 동환을 가리키며 천 원짜리 두 장을 던졌습니다.


-야, 거기 너! 가서 88 좀 사 와라.
-네? 88 팽이요?
-야이 씨발, 장난해? 팽이겠냐? 88 담배 사 오라고! 두 갑!


동환은 주섬 주섬 종이돈을 주워 들고 슈퍼로 향했습니다. 나와 영수는 내심 동환이 부러웠습니다.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파편들이 공중으로 튀는 장면을 그는 보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돌아왔을 때, 우리의 팽이는 처참하게 형태를 잃은 다음이었습니다. 그들은 흰 연기를 남기고 빌라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며칠 뒤, 경찰차 한 대가 왔습니다. ‘문신 청년' 몇 명이 술을 마시다 싸운다는 제보를 받고 출동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며칠 전 그 노랑머리의 짐승들이 88 팽이를 줍던 제 모습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연행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그들이 원래 도둑질이나 하던 애들이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학교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불쌍한 애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진실이 무엇이든, 나에게 그들은 단지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때 그 노랑머리들의 나이를 계산해 보면 대강 지금의 사십 대 후반일 것입니다. 지금의 영포티로 편입된 것이지요. 우리가 88을 ‘돌릴’ 때, 그들은 다른 88을 ‘피웠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MZ세대를 향해 ‘요즘 것들’이라 비웃는 그 나이대의 혀끝을 보면 묘한 역겨움과 연민이 함께 올라옵니다. 그때의 그들이 과연 지금의 중·고등학생, MZ보다 나았을까요. 아니면 갈 곳 없는 불쌍한 비행청소년으로 봐야 했을까요. 물론, 사십 대 전부를 절대 그들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세대 간 혐오의 재생산이 감정의 해소가 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결국 꼰대와 요즘 것들은 서로를 시간차로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역시 언젠가는 그 이름으로 불릴 것입니다.

나는 그저 기다립니다. 언젠가 다시 마주친다면, 나는 영화 <달콤한 인생>의 이병헌처럼 물을 것입니다.


-말해봐요. 내 88한테 왜 그랬어요?


아마 그는 대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담배 연기와 함께 녹아버린 기억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대는 자신이 미워하던 얼굴을 닮아갑니다. 나도 한때는 요즘 것이었고, 언젠가는 꼰대라 불릴 것입니다.

다만, 그 말이 만들어진 이유만은 내 안에서 자라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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