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이름을 붙이는 방식에서 인간의 가벼움을 본다. 바다에서 온순히 살아가는 포유류에게 ‘바다코끼리’라 명명한 것도 그렇다. 잘 자고 있던 코끼리에게 의문의 1패를 안기듯, 한 동물을 무심하게 깜빡깜빡 보는 태도 역시 맘에 들지 않는다. 사자와 표범 앞에 ‘바다’를 붙이는 일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벨루가’처럼 그 존재의 색과 감각을 그대로 품은 이름이 훨씬 더 자연스럽고 고유하게 느껴진다.
감자와 고구마 역시 그렇다. 우리나라에서는 분명히 결이 다른 전분류 채소인데, 영어권에서는 감자를 potato, 고구마를 sweet potato로 나란히 붙여놓는다. 둘 사이의 확연한 차이를 지워버리는 이 명명법은, 편의를 위해 고유성을 희미하게 만드는 인간의 오래된 습성인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누군가 먼저 작명권을 선점해 붙여놓은 이름을 되풀이할 때마다, 나는 석연치 않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얼마 전 바르셀로나의 선수 야말이 ‘제2의 메시’라는 수사를 거부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많은 이들이 그를 오만 방자하다 했지만, 나는 야말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한다. 누구나 자신의 고유한 결을 지키고 싶어 할 것이다. 평생 따라붙을 꼬리표가 칭찬인지 낙인인지, 그 무게를 견디는 건 결국 자신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 나를 ‘한국의 왕가위’라고 부른다면 기뻐서 펄쩍 뛸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이 그림자처럼 붙어버린다면 어쩌면 그것은 저주일 것이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왕 감독님, 죄송합니다.)
그래서 나는, 단지 부르기 쉽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존재에 이름을 덧씌우는 것에 반대한다.
이름. 그것은 관성이나 습관으로 훅 갖다 붙이는 표식이 아니라, 어쩌면 한 생명이 지켜야 할 마지막 존엄일지도 모른다.차라리 자연스레 붙는 별명이나 애칭이, ‘억지 이름’보다 훨씬 더 정확히 그 존재의 결과 고유성을 드러낸다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