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도 자동사냥하면 안될까
몸이 2개 3개이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것도 하고싶고 저것도 하고싶고, 이것도 해야하고 저것도 해야하는데 제 몸은 1개 밖에 없거든요. 취미를 할 때도 문제지만, 일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신경 써야할 일은 여러가지인데 한 번에 하나의 일 말고는 할 수 없거든요. 그러다보니 내가 가장 필요한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서 자잘한 일들에는 가능한 시간을 쏟지 않고 싶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누가 대신 이 일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 싶은 거죠.
제가 입사하기 전까지 저희 회사는 한동안 수집한 고객DB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유야 많았겠지만, 제일 큰 건 이 DB를 전담할 사람이 없었다는 거였습니다. 팀의 공백기가 길었던 탓이죠. 그 결과, 애써 모은 고객 정보가 그저 ‘보관용’에 가까웠습니다. 뉴스레터 발송이나 가끔 들어오는 문의 대응 정도가 전부였어요. 영업 팀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아까운 일이었죠. 저는 늘 이 DB가 잘만 쓰면 큰 힘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마케팅과 세일즈가 손을 맞잡고 활용한다면, 분명 더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마케팅 자동화’이라는 무기를 꺼내들었습니다. 잠재고객이 관심을 보이는 순간, 적절한 정보를 자연스럽게 전달해주는 시나리오를 마케팅 자동화 툴을 사용해 만들자는 거였죠. 문제는 사람이었습니다. 팀은 소수였고, 기존 업무만으로도 충분히 벅찼거든요. 그렇다고 손 놓을 수는 없으니, 마케팅 자동화 툴이 답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마케팅 자동화 툴을 활용한 시나리오를 짜려면 세 가지를 정해야 했습니다. ‘어떤 고객에게’, ‘어떤 의도로’, ‘어떤 방식으로’ 다가갈지.
활용할 수 있는 세그먼트는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홈페이지에 문의한 이력이 있는 잠재고객
홈페이지에서 소개서를 다운로드한 잠재고객
광고 집행한 이력이 남아있는 고객
저희는 이중에 저희 제품에 진지하게 관심을 보였지만 미팅으로 이어지지 않은 사람, 바로 ‘소개서를 다운로드한 고객’이었어요. 아직 문의할지 안할지는 몰라도, 적어도 저희 제품에 호기심은 있는 사람들이죠. 또 대부분의 DB가 '소개서 다운로드'를 통해 들어오기도 했고요. 소개서를 다운받을 정도로 관심도가 높지만 아직 문의라는 허들을 넘진 않았으니, 맛있는 정보를 좀 더 주면 미팅으로 연결될 수 있겠다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너쳐링의 의도도 단순했습니다. “소개서를 봤으니, 이제는 미팅까지 가자.” 잠재고객을 미팅을 통해 MQL로 전환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잠재고객이 미팅 요청을 할 정도로 관심도가 높아지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해봤습니다. 사실 소개서를 다운 받은 고객이더라도 소개서를 보고 흥미가 떨어진 고객들도 있을 수도 있잖아요? 이들을 발라내고, 관심 있는 고객에게는 소개서엔 없는 정보를 제공해보기로 했습니다.
방식은 마케팅 자동화 툴을 활용한 이메일 발송 방식을 택했습니다. 다만 톤을 신중하게 잡았습니다. 단순 홍보 메일처럼 보이면 역효과가 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세일즈 매니저가 직접 보내는 듯한 포맷으로, 가볍지만 정보성 있는 메시지를 설계했습니다. 직접적으로 요청할 때의 부담을 최소화하되 흥미로운 정보는 계속 던지기로 한 셈입니다.
활용 노하우 → 성공 사례 → 한정 프로모션. 이렇게 세 개의 정보를 담아 세 차례 이메일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성공사례 메일부터는 미팅으로 넘길 수 있는 장치를 스리슬쩍 끼워두었습니다. '매체 설명'이라는 이름으로 고객과 대면/비대면 미팅을 자연스럽게 유도한 것이죠. 세 번째 메일에서는 한정 프로모션이라는 훨씬 더 공격적으로 고객 문의를 유도한 아이템을 제공해 잠재고객을 움직여보기로 했어요.
모두가 메일을 열어보고, 메일 안에 있는 링크를 클릭해준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그렇지만 우리의 고객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관심이 없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메일만 보내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서, 어떤 행동을 한 사람에게 어떤 메일을 보내야할까를 고민하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메일은 고객 모두가 동일한 시점에 받지만, 이후의 메일은 고객 행동에 따라 조금씩 다른 패턴으로 발송하는 계획을 세웠어요.
첫 번째 메일(활용 노하우) : 소개서 다운로드 고객
두 번째 메일(성공사례) : 1번 메일 열람 고객
세 번째 메일(한정 프로모션) : 1,2번 메일 내 콘텐츠 URL 클릭한 고객
미열람 시 동일한 메일 1회 재발송 후 종료
두 번째 메일에서 매체설명회 신청 안내를 받고, 마지막 메일에서 프로모션 안내를 하긴 하지만 단순히 고객들의 응답만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묵묵부답인 고객들이 훨씬 더 많거든요. 그렇지만 약간의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고객들은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영업 팀과 함께 두드려보기로 했어요.
세 번째 메일을 받은 고객은 사실 1,2번 메일을 모두 열어보고, 그 안에 있는 URL까지 눌러 콘텐츠를 확인할 정도의 관심은 남아있는 고객이라고 보았습니다. 또 1,2번 메일에서 콘텐츠를 여러차례 열어본 고객도 관심도가 높다고 판단했죠. 이렇게 콘텐츠 반응이 활발한 고객을 ‘고관심 고객’ MQL로 정의하고 영업 팀의 영업 활동을 요청할 수 있는 시나리오로 설계를 했습니다.
계획은 그럴듯했는데,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못해 당황스러웠습니다. 3개월간 지켜본 결과, MQL의 비율은 1%에 불과했어요. 고객이 매체설명이나 문의를 먼저 요청하는 비율는 더더욱 낮았구요. 콘텐츠가 문제일까, 메시지가 별로였을까 고민하던 중, 그러다 뜻밖의 지점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어느 날 제 메일로 모르는 분께 메일이 왔는데, 살펴보니 제가 몇 주 전 살펴본 콘텐츠를 만든 회사의 세일즈 매니저분이셨어요. 제가 콘텐츠를 보고 난 이후 몇 주 뒤에 영업 활동을 진행하신거죠. 사실 그때는 이미 제 흥미가 많이 떨어져있던 터라, 미팅 니즈도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제가 실패한 원인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무엇을 보내느냐’가 아니라 ‘언제 보내느냐’였습니다.
제가 세운 가설의 전제는 이랬습니다. “소개서를 본 고객은 내부 논의를 거칠 테니 시간이 좀 필요할 거야.” 그래서 저희는 메일 발송 간격을 영업일 기준 5일로 잡았고, 마지막 메일은 무려 3주 가까이 뒤에야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관심이 가장 뜨거운 시점은 다운로드 직후였고, 저희는 그 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던 거죠.
문제를 발견한 뒤, 발송 주기를 과감히 줄였습니다. 다운로드 다음날 바로 첫 메일을 보내고, 이후 메일도 2일 이상 간격을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성과는 생각보다 많이 달라졌습니다. 영업 팀에게 넘길 수 있을 정도의 MQL 비율은 8%까지 올라갔어요. 세일즈 매니저분들이 전해주는 후기에서도 변화가 느껴졌어요. "예전에는 콜드콜을 하면 '네? 어디시라고요?' 라는 반응이었는데 요새는 그런 반응들은 없는 것 같아요." 절대 수치는 여전히 작지만, 이전과 비교했을 때 고객 반응률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관심이 식기 전에 다가가는 것, 그 단순한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든 겁니다.
또 메시지에서 '미팅'이라는 단어 대신 '커피챗'이라는 가벼운 단어로 변경해 고객의 부담을 조금 더 줄인 것도 의외의 효과를 만들었습니다. 워딩을 바꾼 후로 고객이 직접 미팅이나 매체설명을 요청하는 비율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늘었어요. 세일즈 매니저분들이 MQL을 대상으로 영업 활동을 진행할 때에도 반응이 더 높아졌다는 후기도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수치가 크다고는 할 수 없으니, 또 다른 방식의 실험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높일 수 있는 성과의 최대치가 어디인지를 산정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소개서 다운로드 고객’에 집중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DB를 더 정교하게 나누어 실험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마케팅 자동화 툴을 더 적극적으로 쓰기 위해 세그먼트를 더 세밀하게 나누어 시나리오를 만들어볼 수도 있겠죠. 리드 너쳐링의 최종 목적은 결국 매출이고, 그 과정에서 마케팅과 세일즈의 협업은 더 긴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언젠가 이 실험들이 쌓여, 훨씬 재밌는 결과를 들고 다시 글을 쓸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