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 ‘나들이’ (GV) @ 테일탱고

관객과의 대화 5.13 / 진행 김아영 (테일탱고 대표)

by 노D


5월 13일, 저의 두 번째 단편영화 나들이의 첫 상영회를 베리어프리 서점 테일탱고에서 가졌습니다. 좌석을 가득 채워주신 관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전체 진행과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이끌어주신 김아영 대표님께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영화에 출연해주셨고, 상영회 이후 미니 콘서트를 통해 특별한 순간을 선사해주신 노아윤, 이찬희, 주태중 싱어송라이터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은 상영회 당시 나누었던 관객과의 대화(GV) 내용입니다.


Q1.

감독님, 안녕하세요. 따뜻한 이야기와 감미로운 음악이 어우러진 영화 <나들이> 잘 봤습니다. 우선 감독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영화에 대한 소개, 기획 의도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지극히 ‘소비자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자, 동시에 수집가로 살아갑니다. 단순한 소비를 넘어서 나누고 순환시키는 삶을 지향합니다. 만들어내고, 되팔고, 되도록이면 나누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노래를 만들고, 글을 쓰고, 영화를 찍습니다. 그것이 꼭 제 것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도록 장을 기획하고 마련합니다. 그렇게 저는 창작과 기획 사이 어딘가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사람입니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처음에는 ‘포크(Folk)’라는 제목을 떠올렸습니다. 사람들을 뜻하는 단어이자, 어쩌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을 암시할 수 있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싶었죠.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공간에 잠시 나들이를 온 존재들이 아닐까요? 수많은 ‘나’들이 이곳에서 서로를 관찰하고 만나고, 또 헤어지며, 무언가를 남기고 가져가는 일을 반복합니다. 그런 반복적인 삶의 장면들을 하나의 상징으로 표현하고자, 영화는 ‘한 채의 집’과 ‘산책’으로 그 모든 흐름을 담아내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처음 구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당시 영화 관련 수업을 들으며 받은 피드백 중 하나가 인상 깊었는데, “타자가 가진 이야기를 편집하고 엮어내는 일도 충분히 창작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에 영감을 받아, 처음엔 극영화의 형식을 생각했던 기획을 점차 다큐멘터리적 ‘기록’으로 옮겨가게 되었죠. 초기에는 모든 이야기를 제가 직접 써서 배포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면 오히려 자연스러움이 사라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편집 과정에서 제가 집중한 건, 각자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서로를 비추고 교차하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들 사이에서 노래들이 어떤 방식으로 겹쳐지는지를 탐색하는 일이었어요. 그렇게 여러 조각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조심스럽고도 유연하게 엮어내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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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누군가의 집을 배경으로 세 명의 뮤지션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말하고 노래하는 구조로 영화가 구성되어 있는데요, ‘음악’과 ‘대화’라는 두 가지 언어를 어떻게 균형 있게 담아내려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음악과 대화, 어느 쪽이 먼저인지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결국 ‘어떤 이야기가 존재하느냐’ 그리고 ‘그 이야기가 어떻게 전달되느냐’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야기가 있다는 건, 전달하는 사람이 있고, 듣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고—그 사이에는 그 이야기를 건네는 방식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반응만이 존재하죠. 저는 그런 긴장감 속에서 탄생하는 ‘순수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대화는 대화대로, 음악은 음악대로의 역할이 있습니다. 다만 제가 바라는 것은, 그 둘이 연결되는 지점에서 어떤 ‘동질감’이 생겼으면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 안에서 자기 자신의 조각을 발견하고, 그것을 다시 자신의 언어로 바깥으로 흘려보낼 수 있다면—그건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연대에 가까운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은 본래 사람을 ‘듣게 만드는 힘’을 가진 예술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반대로, 이야기 자체를 음악처럼 ‘유심히 듣는가’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결국 제 작업의 중심은 ‘이야기’에 있고, 음악은 그 이야기들이 풀어내지 못하는 감정의 틈, 혹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공간들을 메우는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이야기와 음악은 그렇게 서로의 결을 보완하며 흐릅니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아주 잠깐이라도 서로에게 ‘겹쳐지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Q3.

출연진 캐스팅 과정이나, 함께 작업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번 작업에 함께한 친구들은, 제가 공연을 기획하면서 알게 된 소중한 사람들이에요. 작년 한 해 동안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고, 마침 다음 영화를 구상하던 시기였던 터라, 자연스럽게 ‘이 친구들과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촬영을 하루 앞둔 날, 한 친구에게서 몸이 안 좋다는 연락이 왔고, 조금 뒤에 또 다른 친구에게서도 똑같은 연락이 왔어요. 사실 아픈 건 큰 문제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이 둘은 늘 거의 동시에 아프더라고요. 전생에 사랑한 연인이라도 된 듯, 한 명이 아프면 덩달아 아픈 모습이 웃기고도 애틋하게 느껴졌습니다. 또, 다른 한 친구는 촬영 전날에 입술 문신을 하고 와서, 그날 촬영 내내 제 시선은 자꾸만 그의 입술로 향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첫날 촬영이 끝난 밤, 셋이 옷장에서 새벽 두세 시까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더라고요. 그 장면까지 담았더라면 정말 귀엽고 진한 순간들을 포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결국 핵심은 이것인 것 같아요—우리는 정말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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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엔딩 장면에서는 집주인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세 명의 방문자들은 각자의 길을 떠나는 모습이 담겨 있죠. 그 장면을 보고 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요, 감독님께서는 그 순간을 어떻게 그리고 싶으셨는지, 어떤 감정이나 분위기를 담고 싶으셨는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나 이야기에는 늘 여러 결이 존재하지만, 유독 ‘잘 이별하는 이야기’에 더 끌리는 것 같아요. 흔히 좋은 시작이 있어야 좋은 끝이 있다고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정직하고 솔직한 끝맺음에서 더 깊어진 새로운 시작을 마주하는 경험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하나의 메타포로 본다면, 결국은 ‘집주인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집주인은 홀로 나들이를 떠나고, 그 길 위에서 마주하는 풍경 속에서 오래도록 눌러두고 지나쳐온 이야기들이 불쑥불쑥 떠오르는 거죠.


문학을 예로 들면, 문학은 작가라는 존재 안에 깃든 수많은 타자들을 만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 역시 그런 의미에서 매우 문학적인 시도였어요. 하나의 집 안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오가고, 누군가가 남기고 간 이야기의 자리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얹어봅니다. 그 이야기꾼들이 다시 각자의 집으로, 혹은 또 다른 타자의 공간으로 들어가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퍼뜨리는 거죠. 그러니까 저는 그 짧은 ‘나들이’—혹은 만남의 경험을 통해 이미 확장된 나로 존재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영화에서 만난 세 명의 친구들을 통해, 저의 집(혹은 저의 세계)은 이제 결코 그들을 만나기 전의 모습으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지만, 그 이별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이야기들이 맺어지고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죠. 마치 돌림노래처럼요. 관계와 관계가 교차하는 그 리듬 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를 확장시켜 갑니다.


결국 인간은 관계 바깥에서 자신을 정의할 수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나’라는 이야기를 말한다는 건, 내가 누구를 만나왔는지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니까요. 그러니 이 영화는 단순히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만난 사람들을 매개로 한 ‘우리’의 이야기이고, 그 관계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작은 우주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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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본 관객들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돌아가길 바라시는지 궁금합니다.


부족한 영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언제나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 특별한 것들보다는 너무 당연해서 쉽게 지나치는 것들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처럼, 때로는 ‘70년대에 살았으면 참 잘 살았겠다’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늘 조금은 뒤처져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어쩌면 그 감각이 지금을 더 선명하게 바라보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정보와 콘텐츠가 ‘바다’가 아니라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그 속에서 정말 진솔하고, 일상적인 것들이 점점 더 간과되고 있는 건 아닐까—그런 고민을 자주 합니다. 이건 단순히 콘텐츠의 과잉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어떤 것에 ‘귀 기울이는 태도’ 자체가 희미해진 시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극 콘텐츠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가공되지 않은, 혹은 만들어지지 않은 삶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고 싶은 거예요. 창작의 의존성을 벗어나 본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더 창작적인 태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고민은 어쩌면 역설적이에요. 일주일에 세 번은 극장에 가고, 잠들기 전까지 음악을 듣고, 가방 속에는 늘 책이 들어 있는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피부와 피부가 맞닿고, 이산화탄소가 이산화탄소와 섞이는 체험이야말로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만나 이야기 나누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일 말이죠.


요즘은 ‘보편적인 것’이 오히려 더 희귀해진 시대인 것 같아요. 모두가 특별하고, 개성 있고, 독특하려 애쓰는 가운데, 저는 그런 충동이 사람들을 오히려 더 고립되게 만든다고 느낍니다—예술을 하는 사람들까지도요. 그래서 저는 동질성과 유대, 그리고 연결을 다시 이야기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감각과 일상 안에서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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