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_파리_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
예술가는 어떤 존재일까? 왜 예술을 창작하고 싶은 걸까? 예술가의 도시라고 알려진 파리는 유명한 예술가들이 사랑하고, 모였던 곳이다. 그러나 나에게 파리는 영국 여행을 가는 김에 가까우니까 가는 1+1이나 덤과 같은 장소였다. 파리에 대한 환상이나 판타지는 별로 없었다.
파리 공항 출입국 직원도 내 얼굴을 보지도 않고, 여권에서 아무 장이나 펼쳐서 도장을 찍어 주었다. 일하기 싫어하며 휴가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는 얘기만 들었는지 이 정도로 불친절한 곳이라니 놀라웠다. 한국의 서비스를 생각하면 바로 민원신고받을 감이다.
파리는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바토뮤슈 노트르담 대성당, 개선문등 손가락으로 꼽기도 힘들 만큼 봐야 하는 예술품들이 도시이다. 뮤지엄패스가 있을 정도이며 모두 보려면 한 달도 모자란다. 그러나 나는 어쩌다가 일주일이나 머물게 된 파리에서 여행자가 아닌 생활자로 살아보기로 했다.
룩상부리크 공원에 놓인 녹색 의자에 신발을 벗고 발을 뻗으며 일광욕을 하고, 한국에서도 가보지 않았던 이케아를 놀러 가고, 심지어 신자도 아니면서 노트르담 대성당의 미사를 찾아갔다. 여행자라면 하지 않을 것들을 했던 것 같다. 그때는 예술가들이 파리를 사랑한 이유를 생활자의 일상을 통해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유명하지 않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다. 사진의 아버지로 유명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이다.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었지만, 이름을 들어본 작가여서 궁금해서 찾아갔다. 그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줄 알고 찾아갔는데 전혀 다른 사진작가의 전시가 전시되고 있었다.
2016년에 우연히 찾아가서 보게 된 사진 전시회는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파격적이면서, 난해함을 선사한 ‘프란체스카 우드먼’(Francesca Woodman 1958~1981)의 ON BEING ANGEL 사진전을 보았다. 아마도 그녀를 만났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우드먼은 22세에 건물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으며, 8년 동안 남긴 사진이 그녀의 작품 전부다. 우드먼의 예술가 경력은 모두 사후에 인정받았고, 오늘날 전시되는 모든 사진은 그녀가 학생이었을 때 창작된 작품들로 알려졌다.
우드먼의 작품 활동에 주요 오브제는 자신의 신체로 형상의 경계를 허무는 데 초점을 맞춘 작품을 수없이 창작한 작가이다. 작품에서 인간의 형상에 대한 강박적 집착을 보였고, 그 형상의 견고함과 존재, 대표성을 무너뜨리기 작업을 했다.
작품에 벌거벗은 여성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것은 여성적 경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다. 이를 보고 누군가는 누드화라며 저속한 작품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우드먼의 사진은 매우 개인적이고 실험적이며 추상적이고 즉흥적인 느낌에 가까운 작품이다.
우드먼은 초현실주의의 가능성을 확대시킴으로써 위대한 현대 사진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한다. 초현실주의는 1920년대 프랑스에서 시작된 예술 운동으로, 초현실적이고 이성의 굴레에서 벗어난 세계를 추구하는 사조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마음속에 가라앉은 것이 표면으로 떠오를 수 있는 정신 상태를 갈망했다.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가 말한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계획할 수 없지만 그 작품이 자유롭게 자라날 수 있게는 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했다.
이런 사상에 영향을 받은 우드만은 불균형의 형태와 무질서한 배열 방식, 아무렇게나 자른 사진으로 형식주의 사진의 논리와 미학을 비난했고, 본질을 은폐하는 사진의 프레임을 왜곡된 리얼리티의 생산지로써 폭로했다. 또한 그녀는 관람객 스스로 사진을 시각적으로 체험하게 하고, 매체의 재료적 한계를 뛰어넘어 설치 중심과 관람객 참여 중심의 전시방식을 선사했다. 이로 인해 형식주의사진의 제의적 가치 추구에 도전했다.
우드먼의 마지막 일기에는 “이것이 내가 예술가로 살아온 이유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보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의 언어를 발명해 왔다.... 그들에게 무언가 다른 것을 보여 주기 위해....”라며 자신의 예술 세계관을 보여주는 글을 남겼다.
우드먼은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내 다른 것을 보여 주고 싶은 예술가였다. 여전히 그녀는 자신의 사진 작품 속에서 현대의 사람들에게 영원으로 존재한다.
파리에서 만난 미국 사진작가 우드먼은 나에게 예술가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전시회에서 처음 만난 그녀는 여행을 가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숨겨진 보석을 찾은 느낌이다. 그녀와 만난 건 우연이었지만, 인상적으로 남았다.
예술은 감상자에게 어떤 감정을 전달한다. 공통된 사실이나 진리 도출이 불가능한 분야가 예술이다.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을 뿐이다. 씁쓸한 일이다.
예술가는 자신의 언어로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 재미있는 세계를 만들어 소통하고 싶어 한다. 작품은 자신과 동일시되기도 하고, 자신이 보았던 것을 자신만의 색으로 다르게 보여 주기 위해 창작을 한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에서도 자기만의 시선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탐험하는 존재. 그게 예술가가 아닐까.
참고자료
-<불꽃으로 살다>, 케이트 브라이언, 김성환 옮김, 디자인하우스, 2022.
-<서양미술사>, 에른스트 곰브리치, 백승길, 이종숭 옮김, 예경,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