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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몽 Feb 26. 2024

슬리핑 버스 타고 국경 넘기

동남아시아_싱가포르&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아줌마가 말했다.

      

“싱가포르에 여행 왔어요?”

“네. 여행자예요.”

“그럼 주롱 새 공원이랑 보타닉가든에 꼭 가봐요.”

“아.. 거기 좋나요??”

“싱가포르에 자랑이지요.” 

"아.. 네네.."

    

배낭 하나 달랑 매고 공항에서 싱가포르 도심으로 들어가는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여행객 티가 났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추천해 주셨다. 당황스러웠다. 찌는 듯한 더위와 습함과 아줌마의 깜빡이 없이 들어온 추천 습격을 들으며 정신없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여행을 갔다.

    

싱가포르는 경유지로 처음 방문했는데 그때는 스탑오버로 시티투어를 하는 짧은 여행이었다. 그때 좋은 인상으로 남아 좀 더 긴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게다가 주변에 있는 나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가 싱가포르보다 물가가 싸다는 이유로 비행기에 아웃을 쿠알라룸푸르로 잡으면서 한 번에 두 나라를 여행하게 되었다.     


왼쪽 카야 토스트 아침세트 / 오른쪽 피시볼 (아침으로 먹는 로컬식)

어느 나라를 가든 현지식을 먹어보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방문한다. 그 나라의 문화와 생활을 체험하는 것이 재미있고, 현지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서도 어김없이 현지식을 먹으러 갔다. 


아침에 숙소를 나와 현지인들이 아침 식사로 먹는 ‘카야 토스트’ 세트를 시켰다. 로컬들이 간단히 먹는 아침 식사에는 그릴에 구워 바삭한 카야 토스트에 카야잼이 나오고, 거기에 달걀 반숙(후추가 들어간), 코피(Kopi)가 나온다. 


코피는 로컬들이 먹는 싱가포르 커피로 엄청 진한 드립이다. 달걀을 반숙으로 먹지 않고, 코피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래도 카야 토스트는 한국에 와서도 생각날 정도로 맛있었다. 굳이 체험해 보고 싶다면 카야 토스트만 먹는 것도 추천한다. 


먹거리에 이어 볼거리로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멀라이언 상이 있는 공원, 싱가포르 미술관, 싱가포르 리버 크루즈(유람선을 타며 싱가포르 강을 따라 클라키, 보트키, 마리나 베이 샌즈까지 40분 정도 투어. 완전 강추), 보타닉 가든, 센토사섬을 구경했다.     


싱가포르 미술관 (2012)
센토사 섬
왼쪽 싱가포르 리버 크루즈(야경)/ 오른쪽 보타닉 가든

 

국경을 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비행기, 기차, 버스 등이 있다. 2박 3일 싱가포르 여행을 끝내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한국에 있는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 그래서 국경을 넘어야 한다. 돈이 별로 없는 배낭 여행객이라 알아보다가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서 '슬리핑 버스'를 선택했다.      


슬리핑 버스는 밤에 출발하며 버스에서 잠을 자고, 아침이 되면 도착하는 구조를 가졌다. 아침에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에 도착해서 1박 숙박비를 절약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불가능했던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보는 신기한 매력에 슬리핑 버스 티켓을 구매하게 했다.      


저녁 7시. 저녁을 간단히 해결하고, 슬리핑 버스에 배낭과 몸을 실었다. 아침에 도착한다는 일정을 확인하고,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은 채 잠이 들었다. 그러다 버스가 멈추더니 어느 터미널 같은 곳으로 여권과 가방을 들고 가라는 버스 운전자의 안내를 받았다. 아무래도 국경을 넘는 검문소인 것 같다. 긴장되었다. 여기서 걸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다행히 내가 생각했던 극적인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새벽이라 사람도 별로 없고, 공항 검색대보다 육지에서 국경을 넘는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이후 말레이시아로 넘어가 이미 들어와 있던 버스에 탑승하고 한참을 달렸다. 


왼쪽 쿠알라룸푸르 시내/  오른쪽 말레이시아 전통 가옥 '로얄출란호텔' 말레이시아에서 묵었던 숙소

여행이 내 맘대로 착착되면 좋겠지만, 여행이란 언제나 변수의 변수다. 새벽 5시. 거리는 가로등도 별로 없고 깜깜하다. 버스 터미널도 아닌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곳에 도착하더니 내리란다. 어리둥절했다. 사람들이 짐을 챙기더니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도착지에 도착했단다. 여기가 어딘데!? 눈물 날 뻔.


익숙한 듯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렸고, 어딘가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이 당시에는 핸드폰 지도맵이 없던 때라 길을 물어물어 가야 했다. 어리둥절하던 내가 불쌍했는지 어떤 남성이 어디를 가냐고 물었다. 지하철역으로 간다고 하니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었고, 홀연히 자기 갈길을 가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우여곡절 끝에 지하철 역에 도착했다. 문이 열린 편의점에 들어가 직원에게 지하철 첫차 시간을 물어봤다. 1시간은 기다려야 다닌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꼼짝없이 편의점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냥 있기에는 눈치가 보이니 음료수를 하나 구매해 좁은 편의점 구석에 자리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있는데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한국말로 된 음악이었다. 게다가 잡지 진열칸에는 한국 남자 아이돌이 메인 표지에 실린 게 보였다. 괜스레 반가웠고, 안심이 되었다. 이게 뭐라고. 그때 아이돌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고마웠어요~ 그렇게 겨우 첫차를 타면서 말레이시아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후에도 말레이시아에서 만나기로 했던 친구가 한국에서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다음날 오게 되었고, 계획한  말라카 여행이 날아갔다. 아...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구나. 그러니까 여행이지!!


쿠알라룸푸르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한국에서 버스나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봤는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경험하지 못하는 일이다. 한국을 반도라고 부르는데 내 생각에는 섬나라에 가깝다. 육지를 통해서 다른 나라로 이동할 방법이 없다. 육지에 붙어 있지만, 육지가 아닌 나라이다.      


섬나라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육로로 국경을 넘는 일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시아로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은 경험은 한국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낯설지만, 재밌었다. 언젠가 한국에서도 육로를 통해 버스를 타고 세계여행을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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