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된 관계에서 지지받기
존과 크리스는 나와 영적인 길을 함께 가는 동지다. 나와 달리 영적 수련을 한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인도의 필요성에 대해선 모두가 같은 생각이다. 각자 선호하는 기도가 다르지만 평온을 비는 기도, 즉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용기, 그리고 그 둘을 구별할 지혜를 주소서"라는 기도는 모두 하고 있다. 크리스는 정원 일을 하면서 기도를 하고, 존은 골동품으로 가득 한 100년 된 집을 먼지 한 톨 없이 유지하면서 기도한다. 그리고 나는 다 알고 있듯 글을 쓰면서 기도한다. 우리는 모두 기도의 가치에 동의한다.
고요한 저녁 시간이 끝나갈 때쯤 존은, 토마토를 봉투 가득 담아주었다. 크리스는 고추를 수확한 후 나눠주겠다고 다시 한번 약속했다. "고마워요" 나는 두 사람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석양을 배경으로 길 옆을 달려가는 멋진 암사슴을 한 마리 봤다. 마지막까지 완벽한 저녁이었다.
<줄리아 카메론, 아티스트웨이_심화편>
[셋째 주 네 번째 미션]
인도의 메시지를 통해 지지를 얻는 방식을 앞서 연습했다. 이제 우리 주변의 존재와 적극적인 연결 관계를 만들어보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이 있는가? 손을 내밀면 맞잡아줄 친구나 지인은 있는가? 지금이 순간, 당신을 가장 잘 도와줄 사람이나 상황이 무엇일지 인도의 지혜를 청해보라. 그 연결에서 어떻게 지지를 얻을 것인지 계획을 세워보라.
오늘의 미션을 받고, 도움을 주지도 받지도 않으려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보았다. 이 세상을 혼자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까? 어찌 보면 겸손함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고, 어찌 보면 독립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한 번 더 생각해 보니, 도움을 요청하는 게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도움을 요청하기를 망설이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다.
나는 도움을 잘 요청하지 않고 도움을 요청받아도 상황에 따라 잘 거절하는 편이다. 내가 부탁한다면 상대방이 기쁜 마음으로 해 줄까? 내 부탁이 상대방에게 기쁨이 된다면 기꺼이 하겠지만, 부담으로 작용한다면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도와주는 사람이 가끔 있다. 미안하게도 그 손길이 한없이 반갑지는 않다. 이 사람에게 빚진 마음이 들어서 이 사람이 나중에 무슨 부탁을 하면 거절하기 쉽지 않겠구나 싶다. 무턱대고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할 수 있겠는데... 귀찮아서 그러는 건가? 게으른 건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아 또 얄미운 내가 나온다.)
도움을 받았다면 '고마워, 나중에 꼭 갚을게, 잊지 않을게' 등의 인사와 초심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반대로 도움을 주었다면 도움을 준 사실을 잊으려고 노력한다. 시간이 지나 누군가가 내가 도와준 일을 언급해도 '내가 그랬었나? 그랬구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잊어버린다.
솔직한 마음으로, 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내가 도움을 잘 요청하지는 않을 지라도)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적었으면 좋겠다. 쉽게 요청하기보다는 혼자 해 보고 도저히 안 될 때 요청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 또한 그 사람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나에게 부탁했다는 것을 알면 기쁜 마음으로 해 줄 것이다. 귀찮은 마음에, 나에게 떠넘기기 위해 부탁했다면 그건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걸 수락하는 건 호구되는 지름길이다.
엄마에게도 쉽게 부탁하지 않는다. 첫째를 키우던 시절엔 엄마에게 자주 도움을 요청했다. 아이가 아파서 일주일가량 어린이집에 못 갈 상황이 되면 멀리 있는 친정 엄마에게 올라와 달라고 부탁했다. 엄마도 기쁜 마음으로 올라와 주셨다. 엄마는 딸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즐거워하셨고, 딸이 고맙다며 내려가실 때 손에 꼭 쥐어드리는 봉투도 반가워하셨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엄마는 내가 부탁하지 않을 때도 자주 올라오셨고, 우리 집으로 형제들을 모두 모이게 하거나(내 허락 없이), 친구를 초대하기도 했다. 내가 싫은 내색을 보이면, "준비는 엄마가 하는데 뭐가 불만이냐."라고 말씀하셨다. 명절에 시댁 내려가고 없는 우리 집에 오빠네를 불러서 명절을 보내겠다고 했을 때, 난 참을 수 없었다. 엄마와 크게 싸웠다. 엄마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셋째를 키우면서는 엄마에게 아무것도 부탁하지 않는다. 조리원에 못 가게 되었을 때, 친정 엄마가 산후조리를 해 주려고 했지만 서둘러 산후도우미를 구한 뒤 괜찮다고 했다. 셋째가 아파서 어린이집에 못 갈 때도, 방학이어서 쉬어야 할 때도 남편과 내가 감당했다.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하고 나머지는 셋째가 받아들이도록 했다. 몸은 불편했지만 그게 마음이 편했다.
가끔 전화로 아이들 안부를 물어보시는 엄마에게 아이들 잘 지내고 있다, 잘 크고 있다고 말씀드릴 뿐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첫째와 둘째는 할머니와 라포르(rapport)가 형성돼 있는데, 셋째는 할머니를 많이 낯설어한다는 것이다. 1년에 3~4번밖에 못 보는지라 어쩔 수 없는 듯하다.
도움을 주고받으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최소한으로만 주고받으며 쿨한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난 아무래도 전자는 힘들 듯하다. 이게 내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