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일기] 토요일: '태명'이 사전에 없다고?
어제는 하루종일 수천 개의 표제어가 있는 엑셀 파일을 봤어. 이 파일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는 미등재어 목록이야. 이 목록을 볼 때는 손과 눈과 머리가 바빠져. 손으로는 끊임없이 <표준> 사전과 <우리말샘>을 검색해 보고 99년 이전에 출판된 다른 사전, <고려대한국어사전>, <연세한국어사전> 등을 찾아본 뒤 마지막으로 뉴스 쓰임 등을 검색해 보지. 눈은 손이 하는 대로 따라가. 엑셀 파일을 봤다, 사전을 봤다, 뉴스 페이지를 봤다 해. 바쁘지? 그러면서 머리로는 계속 생각하지?
'이런 게 없었다고? 이걸 등재할 거면 이 계열 어휘도 같이 검토해야겠군. 이건 규범성 논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건 논의가 좀 더 필요해. 이건 요즘은 잘 안 쓰는 말인데 굳이 넣을 필요가 있을까? 이건 이미 <표준>에 등재되어 있는데, 표기를 잘못 생각해서 올렸군.'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가지.
그러다가 'ㅌ' 부분을 검토하는데, '태명'이 들어가 있는 거야. "태명? 태명이 왜 여기에 들어가 있지? 이미 <표준> 사전에 등재되어 있을 텐데?" 하며 표준 사전을 검색해 봤어. 어머나... 정말 없는 거야? 이럴 수가. 너무나 익숙한 말인데, 2004년 조카가 배 속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태명을 물어봤는데... 맑음이를 임신했던 2008년에 사람들은 제일 먼저 태명을 물어봤는데... 이게 <표준> 사전에 없다고? 너무 신기했어.(<우리말샘>에는 2016년부터 등재돼 있던 표제어야.)
다른 사전을 검색해 봤는데, 99년 이전에 출판된 사전에도, 그 이후에 출판된 사전에도 모두 '태명'이라는 표제어가 없었어. '태담'도 물론 없었지. '우리만 놓친 게 아니었네?' 하며 뉴스 쓰임을 검색해 봤어. 한자어니까 당연히 뉴스라이브러리 등에서 검색이 될 줄 알았는데, 하나도 나오지 않는 거야. 뉴스를 오래된 순으로 검색해 보니 2005년쯤부터 그 쓰임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 신기하지 않아? '태명'이라는 말이 아주 오래전부터 써오던 말이 아니라는 거.
'태명'에 비해 '태담'은 1999년 뉴스에서부터 쓰임이 보이기 시작했어. '태명'보다는 '태담'이 뉴스에 먼저 등장한 거지. '태교'를 중시했던 민족이라서 그랬을까? 그렇더라도 '태명', '태담'이라는 말이 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는 게 참 신선하게 다가왔어.(나 지금 내 얼굴에 침 뱉는 말 하고 있는 거지?)
수천 개 표제어 목록을 하나씩 검토하는 일은 사실 피곤해. 그러다 이런 걸 하나 발견하면 갑자기 일이 재밌어져. 일할 맛이 나. 말의 역사를 파헤치고, 그 쓰임을 검토하면서 그 단어에 애정을 갖게 되지. 예전에 사전팀 선생님들과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인생의 단어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어. 다들 자신만의 단어가 하나씩 있었어. 그 단어의 뜻풀이를 수정하기 위해 혹은 그 단어를 등재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던 단어인 거지.
내 인생의 단어는 '길고양이'야. 길고양이가 <표준> 사전에 2021년에 등재되었거든. 이걸 등재하기 위해 교과서, 법령, 문학 작품, 뉴스 쓰임 등을 전체적으로 검토했고, 뉴스에서 아나운서의 발음까지 찾아서 모두 들었어. 사람들은 "사전에 '길고양이'가 등재되었네."라고 한 문장으로 말하겠지만, 이 단어를 올리기 위해 어마어마한 자료를 수집하고 검토한다는 걸 사람들은 모르겠지? 이 설은 다음에 올리도록 할게.
연휴의 시작이야~~~ 모두 즐거운 연휴 보내길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