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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Apr 26. 2023

[공개 일기] 수요일: 병원 진료는 힘들어

초록이 기침이 좀 좋아졌냐고? 응. 다행히 약효가 있는지 기침이 많이 잦아들었어. 자기 전에 폭풍 기침을 하며 토할 것 같다고 울기도 하지만, 이 정도가 어디야. 밤에 1~2번 정도만 깨고 잘 자거든.


일요일에 타온 약은 수요일까지 먹으면 끝나더라고. 아직 초록이 감기가 다 낫지 않아서 수요일에 가서 진찰을 받은 뒤 약을 더 받아 와야 하는데, 이 병원이 수요일에는 야간 진료를 안 하는 거야. 그래서 어제 하원하자마자 가방만 집에 놓아두고 병원으로 향했어. 저녁을 먹고 갈까 망설였지만 저녁 먹고 정리하다 보면 9시가 넘을 수 있어서 바로 병원으로 향했지.  병원은 수요일을 제외한 평일에 저녁 9시까지 진료를 하거든.


가방을 놓으려고 집에 들어갔더니 맑음이가 간식을 챙겨 먹고 있었어. 푸름이는 피곤했는지 자고 있더라고. 난 내 가방에 있는 튀김소보로를 맑음이에게 주며 먹으라고 했지. 이 말을 초록이가 듣더니 "나도 빵!" 하며 신발을 벗고 식탁으로 가는 거야. 어떡해 먹여야지. 빵을 먹고 신발을 신고 엘리베이터를 탔어. 근데 퍼뜩 내가 마스크를 안 하고 있다는 걸 인지한 거야.


"초록아 어떡하지? 엄마 마스크 안 했다." 초록이는 이 말을 듣더니 다시 우리 층 버튼을 눌렀어. 울 초록이는 척하면 척이야. 마스크를 집어 들고 신발을 신는데, 냉장고에 수박을 썰어놓았다는 사실을 또 깨달았어. 아이들이 며칠 전부터 수박이 먹고 싶다고 했었거든. 요즘 과일가게에 하우스 수박이 보이길래 하나 사서 썰어 놓았지. 맑음이에게 수박도 챙겨 먹고 학원에 가라고 말한 뒤 신발을 신으려고 하는데, 초록이가 "나도 수박!" 하며 또 신발을 벗고 식탁으로 가는 거야. 맞아... 울 초록이 수박 귀신이야. 너무나 먹고 싶은 수박이 가까이에 있는데 어찌 그냥 떠날 수 있겠어.


수박을 마구마구 입에 욱여넣은 뒤 우리는 병원으로 향했어. 이제 우리를 방해할 건 하나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초록이가 씽씽이를 병원 반대 방향으로 타고 가는 거야.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저기 건너편 자동차 병원에 Jeep 차가 있으니 보고 가야 한대. 휴... 자동차를 보려는 초록이의 의지를 꺾을 수 없으니 난 또 초록이를 따라 달렸어. '우리 병원에 언제 가???????'


자동차 수리점 앞에 있는 Jeep 차를 요리 보고 조리 보고 바닥까지 관찰한 뒤에서야 깨꿍이 발이 떨어지는 거야. 그래 이제 됐어. 우리 병원에 가는 거야!!! 씽씽 씽씽이를 타고 달려서 병원에 도착했는데... 음... 상황은 일요일과 비슷했어. 사람이 정말 많더라고. 대기 번호 42번. 휴... 일요일 70번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42번이면 9시쯤에나 진료를 받을 수 있겠더라고. 내 예상대로 우리 다음에 온 사람까지만 접수를 받고 접수가 마감됐어.


우린 2시간 가까이 병원에 꼼짝 못하고 있어야 했지. 빵이랑 수박을 안 먹고 왔으면 어쩔 뻔했어. 먹고 오길 정말 잘했다 생각했지. 간당간당 접수 마감 전에 도착해서 더더더 다행이다 생각하며 대기실에 앉아 있었어. 그런데 우리 옆에 앉아 있는 형제 두 명이 초록이가 좋아하는 자동차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있는 거야. 초록이는 그 아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뒤 자동차에서 눈을 떼지 못했지. 자동차를 만지고 싶어서 손을 간질간질하는 게 보였어. 어떡해... 그 아이들은 싫다고 저리 가라고 하고 초록이는 같이 놀자고 하고. 한동안 소란스러웠어.


초록이가 그곳에 떡 버티고 있어서 그 아이 엄마도 난감했지. 내가 데리고 가면 또 가고 내가 데리고 가면 또 가고. 할 수 없이 그 아이 엄마가 아이들에게 자동차 가지고 같이 노는 거라고, 형아도 만져 보게 해야 한다고 했지. 난 아니라고 죄송하다고 하고. 3살, 4살 아이에게 양보와 배려를 기대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기에 난 계속 괜찮다고 했어. 다행히 한 아이가 초록이에게 자동차를 빌려주었어. 정말 다행이었어. 초록이는 그 자동차를 가지고 한참 놀았지.


근데 그 아이 엄마가 아이들과 병원 복도로 나가더니 갑자기 돌아와서 아이 아빠를 부르는 거야. 뭔가 하고 보니 초록이 씽씽이를 아이가 타고 싶어 해서 잠깐 태우더니 아빠를 불러 이거 애들에게 사 주는 게 어떠냐고 물어보더라고. 이걸 놓칠 초록이가 아니지. 자기 거라며 가져가면 안 된다고 말하는 거야. 어머나... 아까 그 아이가 자동차를 빌려줘서 잘 놀았으면서 자기 것은 또 양보하려고 하지 않는 초록이 너!!!!! 그러면 안 되지~~~ 나는 아까 그 엄마처럼 교육에 들어갔어. 초록이는 이 상황을 받아들였고 그 아이는 아빠와 씽씽이를 끌고 병원 복도를 돌아다녔어.


이렇게 시간이 흘렀어. 책도 읽고, 물도 마시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했는데도 시간이 참 안 가더라.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야. 도대체 언제 돼." 이러면서 초록이는 짜증을 냈지. '그러게 언제쯤 진료를 받을 수 있을까?' 하염없이 모니터의 진료 대기표만 바라봤어. 배고 고프고, 피곤도 몰려오고... 휴...


드디어 초록이 진료 순서가 왔어. 진료를 받으러 들어가는데 갑자기 초록이가 안 들어가겠다며 버티는 거야. 코로나 검사 하는 줄 알고. 아니라고 코는 절대 안 볼 테니까 걱정 말라고 했는데도 무서웠나 봐. 진료 보는 내내 초록이는 울었고, 약국까지 가는 길에도 울었어. 약국에서는 울음을 그쳤는데, 그건 바로... 그곳에 자동차가 있었기 때문이야. 아이들 눈높이에 진열해 둔 아이들 미끼 상품이 초록이 눈에 딱 들어온 거지. 마침 한 아이 엄마가 자동차를 하나 사서 아이에게 안겨 주었어. 초록이는 그걸 보며 기대를 했지. 이 자동차를 사달라고 조르면 우리 엄마도 사줄지도 모른다고. 초록이는 4종류의 자동차 중 하나를 골라서 나에게 사달라고 했어.


과연 내가 사 줬을까? 난 이런 부분엔 아주 단호한 엄마라 절대 사주지 않았지. 그랬더니 약국에서 대성통곡을 하는 거야. ' 엄마는 안 사주는 거냐. 다른 엄마는 사주는데, 엄마는 이런 것도 안 사주는 나쁜 엄마다.' 솔직히 사주고 싶기도 했어. 오늘 병원에서 오랜 시간 대기하느라 고생했으니 작은 보상으로 사줄까 싶었지. 근데 이번에 사주면 병원에 올 때마다 자동차를 하나씩 사달라고 할 텐데 그럴 때마다 나는 계속 싸우거나 계속 사주거나 둘 중 하나를 해야 할 것 같았어. 나중에 아빠랑 오면 사달라고 하자라고 달랬더니 도대체 아빠는 언제 오냐며 또 대성통곡을 하는 거야. 아~ 힘들다.


마침내 기다리던 약이 나왔고 우리는 약국을 서둘러 빠져나갔어. 초록이는 가는 내내 울었지. 나는 계속 나쁜 엄마라는 말을 들어야 했어. 대화가 될 때쯤 집에 있는 큰 자동차 10개 정리한 뒤에 아빠한테 사달라고 하자고 제안했더니 초록이가 망설이는 거야. 작은 자동차를 10개 정리하면 안 되겠냐고 다시 묻는 거지. 그 모습이 귀여웠지만 난 또 단호한 엄마가 됐어. 큰 자동차 10개를 정리할 정도로 갖고 싶은 자동차라면 아빠가 사줄지도 모른다고 말했어. 그 이후에는 초록이가 더 이상 조르지 않았어. 대신 내 등에 척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지. 난 초록이를 업고 초록이가 먹고 싶다는 어묵국을 끓였어. 후다닥 저녁을 먹고 나니 10시가 넘었더라고. 얼른 씻긴 뒤 재우려고 방에 들어가는데 아까 자고 있던 푸름이가 일어나서는 냉장고에서 수박을 꺼내는 거야. 울 초록이 또 가만있겠어?


"초록아 자기 전에 수박 많이 먹으면 자다가 쉬할 수 있어."

초록이는 입 안 가득 수박을 넣더니 이렇게 말하는 거야.

"나 수박이 맛있어서요."


Photo by Floh Keitgen on unsplash


이렇게 초록이는 자기 전까지 수박을 가득 먹고 잤어. 이렇게 화요일 하루가 마감되었어. 다행히 12시 전에 마감되었지. 정말 다행이야. 12시 전에 눈을 감을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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