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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Apr 23. 2023

[공개 일기] 일요일: 기침아 그만!

목요일 저녁부터 초록이가 간간이 기침을 했어. 가벼운 기침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 그래도 혹시 몰라 자기 전에 집에 있는 코프시럽을 먹였어. 금요일 아침에 보니 괜찮아진 것 같았어. 이 약만으로도 차도가 보이는 듯해서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지. 그렇게 금요일을 보냈는데, 토요일 아침 상태를 보니 조금 불안했어. 목요일보다 기침이 잦아졌는데, 집에 있는 기침약은 몇 봉 남지 않았고, 주말 동안 초록이 상태가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었거든. 아침을 먹자마자 소아과에 갔어. 선생님은 청진기로 초록이를 진찰하시더니 소리가 좋지는 않지만 상태가 나쁘지 않으니 지켜보자며 항생제가 없는 약을 처방해 주셨어.


초록이 상태는 점심때부터 바뀌기 시작했어. 점심 약을 먹었는데 기침이 줄어들기는커녕 쉴 새 없이 기침을 하는 거야. '소아과에 다녀와서 다행이다. 밤에 응급실에 갈 뻔했다' 하며 가슴을 쓸었는데, 저녁 약을 먹어도 기침이 잡히지 않는 거야. 앙.... 초록이의 기침은 밤새 계속됐어. 잠깐 잠이 들었다가 기침 때문에 깨고 또 잠들었다가 깼어. 점점 그 간격이 짧아졌지. 그러다 초록이 기침이 멈추지 않았고, 초록이는 기침이 너무 심해서 토할 것 같다며 큰소리로 울었어. 이 울음은 쉽게 달래지지 않았어. 안고 겨우 달래서 누였는데 이번에는 초록이가 화장실에 간다고 일어나서는 불을 다 켜고 화장실에 가는 거야. 기침할 때마다 목을 촉촉하게 해 준다고 물을 먹였더니 이게 또 잠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줄이야. 몇 번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더니 마지막 화장실을 다녀온 후 잠을 완전히 깨버렸어. 안 되겠다 싶어 우리 둘은 거실로 나왔어. 이렇게 일요일을 시작했네.


난 매일 아침 '혼자 보내는 시간'을 가져야 하루 에너지가 생기는 사람이야. 근데 오늘은 초록이와 아침을, 아니 새벽을 같이 시작했네. 혼자만의 시간 없이 말이야. 거기다 주말엔 남편의 도시락을 2개나 싸야 해. 난 초록이를 업고 틈틈이 아침 준비와 도시락  준비를 했어. 그러다 밝은 에너지가 하나도 없는 상태로 남편 얼굴을 맞이했어. 남편은 일어나 교재 작업을 하더니 아침을 달라고 하는 거야. 슬슬 짜증이 났어. 난 내 시간을 하나도 못 보내고 있는데, 남편은 일어나자마자 자기 시간을 보내고 나에게 아침도 달라고 하니 말이야. 그래도 꾹 참고 남편 아침을 차려줬지. 남편은 밥을 다 먹더니 커피를 준비하더라고. 내 것도 같이 준비하려고 나에게 커피 마셨냐고 물어보는데, 말이 예쁘게 나오지 않았어. "지금 내가 커피를 마셨을 것 같아? 이 시간까지 쉬지도 못했는데." 남편은 뜬금없는 표정이었지. 나를 생각해서 물어봤는데, 오히려 짜증 가득한 말만 돌아오니 말이야. 그래도 남편은 내 것까지 커피를 준비해서 식탁에 놓아 줬어. 고맙다고 해야 하나?


커피 덕분에 조금 살아나긴 했어. 초록이 아침을 먹이고 나도 식탁에 앉아 커피를 한잔 마셨거든. 아주 짧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어. 초록이는 밥을 먹더니 기침 때문에 또 토할 것 같다고 울었고 나는 초록이를 업고 또 거실을 걸었지. "엄마 손은 약손 초록이 감기 다 나아라." 이렇게 노래를 부르며 말이야. 노래를 부르며 생각이 들었어. 어제 소아과에서 타 온 약이 차도가 없으니 오늘 밤도 힘들 게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서둘러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소아과를 알아봤어. 다행히 1시까지 진료를 보는 소아과가 있어서 서둘러 갔지. 10시 조금 넘어서 도착했을까? 깜짝 놀랐어. 대기 번호가 74번인 거야. 거기다 더 깜짝 놀란 건 초록이를 마지막으로 접수가 마감됐다는 거야. 1시까지 진료인데, 지금 대기 인원만 진료해도 아마 1시가 넘을지도 몰라. 정말 다행이었어. 초록이까지는 진료를 해 준다니 말이야.


제일 마지막 순번이니 난 2시간 30분 넘게 기다려야 진료가 가능했어. 커피숍에 잠깐 가 있을까 하다가 초록이의 기침이 심상치 않으니 민폐가 될 것 같아 그냥 대기실에 머물렀어. 초록이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잘 움직이려고 하지 않더라고. 1시간이 지났을까? 내가 답답해서 안 되겠는 거야. 초록이도 열이 오르는지 힘들어했어. 이마를 짚어 보니 뜨끈뜨끈해. 그래서 일단 나왔어. 병원 주변을 자전거 타고 싱싱 돌았지. 길가에 피어 있는 민들레도 하나씩 관찰하고 파란 하늘도 보면서 자전거를 타고 났더니 살 것 같았어. 이렇게 30~40분을 돌아다니고 다시 병원에 들어갔어. 또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지만 그래도 괜찮았어.


병원에 앉아 있으니 접수가 마감돼서 돌아가는 분들이 많이 보였어. 열이 나는데 어떡하냐며 하소연을 하는 분도 계시고, 소아과가 폐과된다고 하더니만 이렇게 잘되는데 어떻게 폐과가 되냐며 뭐라 뭐라 하시는 분도 계셨어. 그분 마음도 이해가 됐어. 나도 조금만 늦었으면 오늘 소아과 진료를 못 봤을 테니까. 오늘 밤에 아마 응급실에 가야 했을지도 몰라. 그곳에서 피 검사 한다고 자지러지게 우는 초록이를 봐야 했을지도 모르지... 아... 싫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초록이는 거실 매트에 눕더니 바로 잠이 들었어. 밤새 잠을 못 잔데다가 병원에서 오랜 시간 보냈으니 얼마나 피곤했겠어. 근데 조금 후 기침을 하면서 깼어. 기침만 아니었다면 푹 잤을 텐데... 점심은 일단 건너뛰고 어서 약을 먹여 재워야 했어. 해열제, 기침 시럽, 항생제, 항히스타민제 등을 모두 약병에 넣었더니 약병이 가득 찼어. 초록이는 처음에 약이 쓰다며 안 먹겠다고 버티더니 기침을 심하게 하더니만 약 먹어야겠다며 입을 벌리더라. 5살도 자기 상태를 아는 거지. 이 많은 약을 한 번에 먹이고 초록이를 재웠어. 다행히 초록이는 지금까지 3시간 넘게 푹 자고 있어. 약이 효과가 있나 봐. 정말 다행이야. 오늘밤엔 나도 초록이도 푹 잘 수 있을지도 몰라.


피곤할 텐데, 초록이 잘 때 같이 자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냐고? 그러게... 그래야 하는데, 오늘 보내지 못한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고파서 잠을 잘 수가 없네.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을 이렇게 글을 쓰며 채워 봐.


Photo by CDC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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