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으니 모든 경험의 수치가 십 단위에서 이십 단위에 머물러서 가끔 깜짝 놀라곤 해. 남편과의 시간도 그렇더라고. 남편을 안 지는 23년이 되었고,결혼한지는 17년이넘었어. 적고 보니 우리가 벌써? 이러면서 또 놀란다.이렇게 오랜 시간을 같이했는데, 남편을 보는 내 눈이 한결같았을까? 설마.... 남편을 보는 내 시선은 처해진 환경에 따라 바뀌곤 했어. 항상 뜨거울 수는 없잖아. 완만한 파도를 타든 가파른 파도를 타든 했겠지? 둘이던 우리가 다섯이 되었으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겠어.
처음에 이 남자는 내 인생의 전부였고 사랑하는 사람이자 모든 것을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이었지.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난 뒤 우리의 관계는 바뀌었어. 남편이 갑자기 하숙생이 되었거든. 밤늦게 들어와서 자고 일어나서 밥 먹고 나가는 하숙생. 난 아이를 키우면서 하숙생 밥도 챙겨 주는 하숙집 아줌마가 되었지. 그전까지는 내가 밤늦게까지 이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는데, 아이가 태어난 뒤부터 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삶을 살아야 했어. 남편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삶을 그대로 유지한 채 말이야. 내 인생의 전부였던 사람이 우리 집의 하숙생이 되었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아이를 낳고 나니 평일 저녁과 주말이 없는 삶을 사는 남편이 밉기만 했어. 육아 동지가 되어도 모자랄 판에 하숙생 역할만 하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속이 터졌어. 왜 필요할 때 항상 없는 거야? 속상한 마음은 미움으로 바뀌었고 미움이 커질수록 이런 생각도 들었지. '이럴 거면 나 혼자 애 키우는 게 훨씬 낫겠어. 애는 나 혼자서도 충분히 키울 수 있어.' 우리 가족에게 변화가 찾아오기 전까지 이 마음은 변함이 없었어.
이제 육아에서 해방됐다고 생각할 무렵 난 갑자기 셋째를 갖겠다고 했고, 셋째가 배 속에서 잘 자라고 있을 때 남편은 직장을 그만두었어. 내가 그렇게 부러워했던 여느 가족들처럼 우리는 평일 저녁과 주말을 같이 보내는 가족이 된 거지. 이런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남편에게 변화가 찾아왔어. 남편의 눈에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거든. 나도 셋째를 임신하면서부터 혼자서 완벽하게 하려고 했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했어.
셋째 초록이 육아를 함께하면서 남편은 아이 목욕시키기, 안고 재우기 등을 해 보기 시작했어. 또 초록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면서 아이의 언어로 대화하는 법을 하나씩 배우기도 했지. 매일 아침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고 버티는 초록이를 어르고 달래서 겨우 어린이집에 보낸 뒤 나에게 전화해서 하소연할 때도 많았어.
'오늘은 11시 30분에 겨우 보냈어, 오늘은 업고 갔어, 오늘은 자꾸 어린이집 반대편으로 가자고 해서 안고 갔어' 등등... 남편의 하소연을 들을 때마다 "그 힘든 걸 나는 쭉 해 왔어. 맑음이 푸름이 둘을 챙겨서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까지 했단 말이야." 하고 말하고 싶을 때도 있었으나, 오늘도 고생했다며 남편의 마음을 토닥여 주었지. 이런 시간이 쌓이면서 우리는 끈끈한 동지애를 느끼는 육아 파트너가 된 것 같아.
집안일 이야기도 해 볼까? 남편이 설거지 담당을 한 지는 4년 정도 됐어. 처음에 남편은 분명히 설거지를 해 놓고 출근했는데, 왜 퇴근해서 돌아오면 싱크대 가득 그릇이 쌓여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어. 5인 가족이 세끼를 먹는다고 생각해 봐. 그릇이 몇 개가 나오는지. 그릇을 하나씩만 써도 15개의 그릇이 나와. 그리고 우리가 세끼만 먹어? 간식도 먹고 음료도 마시니 그릇이 얼마나 많이 나오겠어. 나는 딱 계산이 되는데, 남편은 이런 게 계산이 안 되는 거야. '왜?'라는 물음표만 던질 뿐이었지.
그런 거 있잖아. 결혼 전에는 엄마가 차려준 밥상에 먹을 게 없다고 투정을 부렸는데, 결혼 후에는 엄마가 차려준 밥상이 달리 보이던 기억 없어? 난 이제 식탁 위에 놓인 음식을 보면 이 음식을 만든 사람의 수고로움이 보이거든. 어떤 음식을 만들지 계획하고 시장을 봐서 재료를 다듬고 조리를 하는 과정까지가 모두 보여. 근데 이 남자는 식탁 위의 음식이 맛있는지 맛없는지만 보이는 거지. 결혼 전의 나처럼. 이랬던 남자가 이제 집안일의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을 볼 줄 아는 남자가 돼 가고 있어.
남편과 동지애가 생기면서 내 자만심도 줄어들고 있어. 아이는 나 혼자서도 키울 수 있다고 자만했는데, 두 아이가 사춘기가 되니 이 말이 쏙 들어갔지 뭐야. 요즘 남편은 아이들과 나 사이에 큰 스파크가 나는 걸 막아 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 아이들은 엄마가 편한 건지 나에게 감정 섞인 말을 거르지 않고 막 하거든. 근데 아빠에게는 그러지 않아.
최근의 일이야. 푸름이 발가락 주변에 염증이 생겼는데 한 달이 지나도 낫지 않는 거야. 처음 소아과에 갔을 때 약을 바를 필요가 없다고 해서 그냥 두었는데, 오래돼도 낫지 않으니 슬슬 걱정이 됐어. 푸름이에게 피부과에 가 보자고 했더니 귀찮은지 병원에 안 가겠다고 버티는 거야. 이럴 땐 내가 아무리 설득해도 답이 없어. "제 몸은 제가 제일 잘 알아요. 제 몸은 제가 알아서 해요." 이 말을 하면서 딱 버티는 푸름이에게 "신체발부수지부모다. 네 몸은 너만의 것이 아니다." 이런 말이 먹힐 리가 없잖아.
이런 날이면 퇴근한 남편을 붙잡고 하소연을 해. '푸름이가 있잖아.... 이러쿵저러쿵....' 그럼 남편은 푸름이 방에 들어가서 푸름이와 대화를 하지. "이거 피부과 가야겠다. 내일 아빠랑 병원 가자." 남편이 이 말만 했을 뿐인데 다음 날 푸름이는 아빠와 병원 갈 준비를 하는 거야.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남편이 없었으면 푸름이와 병원에 갈 수 있었을까? 갈 수는 있었겠지만 쉽지 않았겠지?
육아 동지 남편이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 내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해 주고, 하소연도 들어주고, 해결책도 제공해 주는 동지가 있어서 말이야. "당신 필요 없어. 아이는 나 혼자서도 잘 키울 수 있어." 이제 이런 말 절대 못하지.
어젯밤엔 남편이 초록이를 계속 업고 있는 거야. 피곤하다면서 왜 잘 놀고 있는 애를 업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업어 줄 수 있을 때 업어 줘야지 더 크면 무거워서 업어 주기 힘들어."라고 말하는 거 있지. 그러면서 행복한 표정을 짓는데, 이 남자 육아 나이 다 먹었네 하는 생각이 들더라. 예전에는 자기 몸 피곤한 것만 생각하던 남자였는데, 이제는 아이 커 가는 걸 아쉬워하는 남자가 돼 버렸어.
요즘 남편을 보는 내 시선이 파도의 꼭대기에 있는지도 모르겠어. 언제 또 아래로 뚝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내 시선이 다시 올라올 거라는 걸 알기에 걱정하지 않아. 우리가 함께한 시간만큼 파도의 수도 많아졌지만, 항상 내려간 뒤에는 올라올 거라는 걸 알고 올라온 뒤에는 내려갈 거라는 걸 알아. 이 파도가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걸 무엇보다 확신하지. 이게 같이 보낸 시간의 힘인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