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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Apr 09. 2023

[공개 일기] 일요일: 신나는 모래놀이

이번 주말에는 이틀 내내 모래놀이를 했어. 이틀 내내!!!!!!!!

왜냐면 모래놀이세트를 하나 장만했거든. 지난주에 아무 준비 없이 공원에 갔는데, 공원 모래놀이터에 초록이 눈에 딱 들어온 모래놀잇감이 있었어. 모래놀이용 작은 웨건이었는데 누군가 놀다가 잠깐 둔 것 같았어. 초록이는 주인이 오면 허락받고 한 번 만져 볼 생각으로 계속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주인이 오지 않는 거야. 그렇다고 그냥 갈 초록이가 아니지. 조심스럽게 웨건을 잠깐 끌어 보더니 엄마에게 와서 이거 자기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내가 보기에도 자동차를 좋아하는 초록이가 좋아할 만한 놀잇감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폭풍 검색을 해서 하나 주문을 한 거야.


모래놀이세트가 목요일에 우리 집에 '똭!' 도착했어. 목욕할 때 하나씩 꺼내 써보긴 했지만, 이걸로 얼마나 모래놀이를 해 보고 싶었겠어. 주말이 오기만을 하루하루 기다렸지. 드디어 토요일, 초록이는 눈을 뜨자마자 모래놀이하러 가자고 하더라.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서둘러 짐을 챙겨 한강으로 갔어. 한강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를 할 수 있거든.


한강놀이터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는 거야. 사실 초록이는 혼자 연습을 좀 했거든. 이걸 가지고 놀이터에 가면 누군가가 같이 놀아도 되냐고 물을 것을 대비해서 말이지. "엉 놀아도 돼!" 이 말을 준비하고 갔는데, 아무도 없네! 준비한 말을 써먹지도 못하고 우리 둘이서 사이좋게 땅을 파고 길을 내고 물을 뿌려 케이크도 만들며 놀았어.



조금 시간이 흐르니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놀이터 가까이에 텐트를 치고는 놀이터로 오는 거야. 모래놀이세트를 들고. 어머나 이 가족은 모래놀이세트에 덤프트럭까지 가지고 왔어. 덤프트럭은 초록이가 정말 좋아하는 자동차란 말이야.


초록이는 그 가족들 앞에 가서 "나 이거 만져 봐도 돼?" 하고 물었지. 4살 아이는 냉정하게 "안 돼!"라고 했어. 몇 번을 물었지만 대답은 똑같았지. 그 말을 듣고 초록이는 주변을 계속 맴돌다가 그 아이가 잠깐 자리를 뜨자 덤프트럭을 슬쩍슬쩍 만져봤지. 아... 이럴 땐 참 안타까워.


나중에는 그 아이 옆에서 같이 모래놀이도 하고 그 아이의 엄마에게 초코 과자도 하나 얻어먹었어. 아이의 부모님이 참 다정하더라고. 다행이지?


토요일에 1차는 한강 모래놀이터, 2차는 식물원의 모래놀이터에 가려고 했는데, 낮잠을 길게 자는 바람에 1차로만 만족해야 했어. 글쎄 낮잠을 6시까지 자 버린 거야. 대단하지? 전날 잠을 설친 데다가 오전에 찬바람을 맞으며 놀았더니 피곤했나 봐.


일요일인 오늘, 든든하게 아점을 먹고 식물원 모래놀이터로 향했어. 동네 형과 그곳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거든. 오늘은 토요일보다 햇살이 더 눈부셨고, 볕도 따뜻했어. 어제 춥길래 오늘 외출할 때 추위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고 왔는데, 오늘은 더위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는 날이었어. 그늘 한 점 없는 모래놀이터는 눈이 부셨거든. 선글라스를 챙겨 오지 않은 게 너무 후회가 되었지. 우산을 쓰고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니 부럽기도 했어. 아.. 다음엔 나도 우산에다 선글라스, 모자까지 챙겨 오리라 마음을 먹었지.


날씨가 어떻든 아이들은 신났어. 우리의 모래놀이세트와 동네 형의 모래놀이세트가 합쳐지니 완벽한 놀잇감이 됐거든. 형은 우리 것을 가지고 놀고, 우리는 형 것을 가지고 놀았지. 가지고 놀아도 되냐고 물어보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아. 맘 편히 실컷 놀았어.


형의 엄마도 최고였어. 아이들을 데리고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글쎄 모래 속에다가 보물을 숨겨놓은 거야. 아이들은 깔깔 웃으며 모래 속에서 보물을 찾았지. 얼마나 신나 했는지 몰라.

이걸로 끝이 아니었어. 구덩이를 파서 아이들을 묻어 주고, 멋진 자동차 성도 만들어 주더라고. 아이들에게 장난치는 모습도 얼마나 재밌었는지 몰라.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도망갔다가 돌아와서는 그 엄마에게 웃으며 장난을 걸기도 했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같이 노는 그 엄마를 보며 많은 걸 배우고 깨달았어. 놀아 주는 것과 같이 노는 것의 차이를 알았다고 할까?


주변 아이들이 우리 쪽으로 와서 같이 놀기도 했어. 나는 가만 앉아서 우리 쪽으로 오는 아이들을 관찰했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한 팀이 돼서 노는 아이도 있고, 같이 놀아도 되는지 물어보고 노는 아이도 있었어. 둘 다 사랑스럽지. 어떤 아이는 우리 놀잇감을 들고 그냥 가려고 하는 거야. 그 아이에게 여기서 같이 노는 건 되지만 가져가는 건 안 된다고 말해 주었어. 그랬더니 그냥 가더라. 잠깐 빌려 달라고 말했으면 빌려 줄 수도 있었는데, 그건 아닌 듯했어.


당돌한 어떤 아이는 내 옆에 있는 커피를 들고 가려고 했어. 아직 다 마시지 않은 커피를 왜 들고 가려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물을 받으려고 한 거래. 모래놀이를 하려면 물을 퍼 나를 도구가 필요하거든. 그 마음을 알기에 커피를 원샷하고는 그 아이에게 줬어. 어떤 아이는 자기 놀잇감을 잔뜩 들고 와서는 "나 이거 있다!" 하며 자랑했어. 우리는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멋지다!"라고 답해 주었지. 그랬더니 우리 앞에서 놀잇감을 하나씩 설명해 주는 거야. 할머니 할아버지가 집에 가야 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계속 버티면서 말이야. 아이들의 세계 참 재밌지?


아~ 잊을 수 없는 한 아이가 있었어. 2021년 12월 생이어서 우리 나이로 3살이지만 2살처럼 보이는 한 아이였어. 그 아이는 모래놀이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우리가 먹고 있는 꼬깔콘에만 관심이 있었어. 아빠가 말리는 데도 우리에게 와서는 꼬깔콘을 줄 때까지 안 가는 거야. 어떻게 안 줄 수가 있겠어. 봉지째 안겨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데 말이야. 아빠의 허락을 받고 꼬깔콘을 입에 넣어 줬어. 아이는 꼬깔콘 하나를 입에 넣고 아빠 쪽으로 갔다가 입에 있는 꼬깔콘이 사라지면 또 와서는 하나를 먹고 가는 거야.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는지 몰라. 이런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사랑스러워. 꼬깔콘을 향한 그 진지한 눈빛이 아직도 어른거린다.


5시가 넘어가니 그늘 한 점 없던 놀이터가 그늘로 바뀌었어. 바람도 차가워졌지. 신발을 벗고 놀았는데, 양말과 바지는 이미 젖은 모래로 범벅이 돼 있었어. 초록이 감기가 다 낫지 않은 상태라 걱정이 돼서 서둘러 놀잇감을 챙겼어. 초록이는 더 놀고 싶다고 버텼지. 좀 더 놀게 한다고 해서 초록이가 만족하며 집에 갈 것 같지도 않았고, 이대로 놀다가는 초록이 감기가 더 심해질 것 같아서 초록이를 달래서 집으로 향했어.


집에 와서 목욕을 마치고 저녁을 먹이니 초록이 눈이 스르륵 감기는 거야. 8시도 안 됐는데 말이야. 오늘 정말 신나게 놀았나 봐. 매일 밤마다 책을 더 읽어 달라고 조르는 초록이인데, 오늘은 책 한 권을 다 읽기도 전에 잠이 들었어. 


초록이가 잠들면 집이 고요해져. 일찍 잠든 초록이 덕분에 난 오랜만에 저녁 자유시간이 생겼어. 따뜻한 차를 한잔 마시고 얼굴에 마스크팩을 붙인 뒤 노트북을 켰어. 조용히 글을 쓰는 이 시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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