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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Mar 25. 2023

[공개 일기] 토요일: 첫 주말 책모임

오늘은 첫 주말 책모임이 있는 날이야. 책모임 멤버 중 한 명이 취직을 해서 평일 점심 책모임에 참석하기 어려웠거든. 그래서 3주는 평일에 하고 마지막 주는 토요일 아침에 책모임을 하기로 했어.


아침부터 바빴어. 남편 도시락 싸서 보내고 아이들 밥을 준비해 놓은 다음, 빨래를 널고 나도 출근 준비하듯 준비하고 나갔어. 에너지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내가 발제자여서 책모임에 더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었어. 초록이가 모임을 방해하지 않게 신경 쓰면서 말이야. 나 잘할 수 있을까?


울 초록이는 신나서 엄마를 따라갔지. 10시 30분에 책모임이 시작됐어. 오늘 책은 <곰의 부탁>인데, 이 책은 경계에 선 청소년들을 공감의 눈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주는 책이야.


우리는 보통 경계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청소년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도 하잖아. 생각이 없네, 고생을 덜 해 봤네, 공부를 하네, 자기 멋대로네 등등... 근데 이 책을 읽으면 조금은 그 시선이 달라질지도 몰라. 이 아이들이 많이 힘들었겠다, 이 아이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이 선 위로 올라가기 위해 엄청난 용기를 낸 거구나, 선 위에 서는 행위를 계속 증명해 보이며 살아야 해서 힘들겠구나 하는 등등의 생각을 하게 돼.


오늘 책모임에서는 여러 이야기를 나눴어. 아이의 성교육에서부터, 콘돔을 선물해 줄 것이냐 말 것이냐, 내 아이의 성정체성, 사랑이란 무엇일까? 여성이란 무엇일까? 난민의 삶은 어떨까? 배달 노동자의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을 나눴어.


이 책은 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중 하나인 <12시 5분 전> 이야기만 해 볼게. 이 단편 속에 은비라는 여자친구가 나와. 사촌언니가 선물해 준 콘돔을 지갑에 넣고 다녔는데, 그걸 남자친구에게 들킨 거야. 근데 콘돔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 행위는 안전한 사랑을 위한 거고 나를 지키는 거잖아. 이걸 위해 은비는 여러 설명을 해야 하지. 조금 웃겨. 내가 안전한 사랑을 할 준비를 하겠다는데... 나를 지키겠다는데... 그걸 왜 타인에게 계속 증명을 해야 하는지. 더 황당한 건 콘돔을 지갑에 넣고 다녔다는 것 때문에 남자친구와 헤어져.


우리 사회는 아직 여자가 콘돔을 갖고 다니는 것에 대해서 좋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는 것 같아. 오늘도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와 여자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생각이 갈렸어. 여자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대부분 아이에게 콘돔을 선물해 주지는 못하겠다고 하더라. 대신 여자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이런 얘기를 했어. '내 아이가 콘돔을 가지고 다닐 수 없다면, 콘돔 없이는 사랑 행위를 할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게 하자.' 이거 괜찮지? 여자친구가 이렇게 말하는데 거부하는 남자친구가 있을까? 이게 통하지 않는 사이라면 그건 좀 생각을 해 봐야 하는 것 같아.


평일 책 모임은 보통 1시간 30분 정도 하는데, 오늘은 무려 3시간 30분이나 책 이야기를 나눴어. 울 초록이가 잘 버텨 줬냐고?? 아니지... 5살 아이가 3시간 30분을 버틴다는 건 불가능하지. 책 모임 장소에 들어가기 전에 여러 규칙들을 알려 주었지만, 대부분 지키지 않았어. ㅜㅜ 멤버들이 잘 이해해 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3시간 30분 동안 초록이 신경 쓰며 책 이야기 나누는 데 집중했더니 집에 와서는 파김치가 돼 버렸어. 너무 피곤한 거야.(그래도 울 초록이는 좋았나 봐. 내일도 이모 만나러 가는 거냐고 묻네.)


집에 오자마자 서둘러 점심을 먹고 초록이와 침대로 직행했어. 꿀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7시야..... 저녁인 거지. 정말 피곤했나 봐. 하루가 다 가버렸네. ㅜㅜ 그래도 에너지를 충전해서 정말 다행이야. 밤에는 또 필사 모임 톡대화가 기다리고 있거든. 이곳에서 내 에너지를 또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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